"총살현장서 그들은, 대한민국 만세 불렀다"
상태바
"총살현장서 그들은, 대한민국 만세 불렀다"
  • 충청리뷰
  • 승인 1999.12.18 11: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실미도특수부대 소대장 김일영씨(가명)
--당시 부대 상황과 유일하게 살아 남은 경위는.
"초기에는 부식등 보급지원이 최상급이었다. 하지만 작전도 없고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버려진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았다. 겨율 연료가 없어서 나무를 직접 때기도 했따. 외출, 외박, 편지도 없이 작은 섬에 고립돼 4년간을 지낸다고 생각해 보라. 훈련대원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나는 하루전날 육지로 나갔다가 집안일 때문에 귀대를 못하고 외박을 하는 바람에 부대난동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 훈련의 내용과 성과는 어느 정도였는가.
"그때 김신조 간첩단의 무장행군 능력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았고 섬안에 평양시가지를 축소시킨 모형을 만들어 도상훈련을 실시했다. 사격술은 사건 당시 무장탈취한 달리는 버스안에서 따라오는 교통순경의 이마를 정화하게 맞출 정도였으니까, 짐작 할 만 할 것이다. 그들이 막다른 상황에서 자폭을 택한 것도 이미 훈련과정에 익힌 것이었다.

- 무장탈영의 동기와 걸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직업군인으로써 4년간 그들과 함께 자고 먹는 생활을 했었다. 인간적인 친근감도 충분히 느꼈고 당시 희망없는 나날에 대한 축적된 불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물론 무고한 살상극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이지만 생존자 4명도 총살형장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죽을 정도로 교육을 통한 정신무장은 확고한 상태였다. 불행한 시대의 이름없는 희생자가 바로 그들이다”

- 사망자, 총살자 시신은 유가족에 인도됐는가, 현역 기간병 피해자의 사후처리는.
“훈련대원들은 가명을 쓰고 철저하 게 자기신분을 노출 안시켰다. 또한 사회에서 범법행위를 저지른 전력이 있고(살인혐의자까지 있었다) 하다보니 이미 가족들은 오래전에 실종된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실미도 경비를 맡은 현역병 가운데 총상을 입고 5명이 살아남았다.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대로 정부 차원의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