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국적 노동자 하랸 씨, “미등록 외국인도 의료보험 적용돼야”
아파도 치료 못 받는 외국인 노동자 위해 십시일반 모아 치료비 지원

[기획] 우리 곁에 이주노동자가 있다 ⓷

 

이주노동자 100만 시대. 언제부터인가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사회 산업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농업현장에서, 건설현장에서 그들은 오늘도 말없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없다면, 산업현장이 멈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도,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내국인의 산재사고가 줄어드는 반면, 외국인들의 산재사고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음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어찌된 일인지 들리지 않습니다.

충북인뉴스는 다시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들의 삶과 죽음, 눈물과 웃음을 알리고 이제라도 ‘건강한 동행’을 하자고 제안하려 합니다.

 

하랸 씨.
하랸 씨.

 

지난번 기사에서 보도한 스리랑카 국적의 시란 씨. 병원비와 약값이 무서워 당뇨 치료를 미루다 급기야 다리까지 절단한 외국인 노동자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이다 보니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그가 부담해야 할 치료비와 약값은 이미 수천만 원에 달한다.

혈혈단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시란 씨. 그래도 그를 물심양면 돕는 이들이 있어 시란 씨는 오늘도 힘을 얻는다.

바로 충북으로 이주해 농업, 제조업 등 각 산업현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같은 국적 스리랑카 노동자들이다. 같은 나라 사람이기에 느끼는 ‘연대감’도 있겠지만, 그들이 시란 씨에게서 느끼는 속마음은 한마디로 ‘동병상련’이다. 자신들 또한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시란 씨의 상황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충북에 거주하는 스리랑카 국적의 노동자들은 2500여 명으로 추산된다. 그들 중 미등록 외국인은 70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수시로 만나 어려운 사정을 나눈다. 서로 돕자는 취지다. 명절 즈음에는 공연을 기획해 향수를 달래기도 한다. 많이 모일 때는 300여 명을 훌쩍 넘을 때도 있다. 공동체를 형성하며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충북에 거주하는 스리랑카 국적의 노동자들은 수시로 만나 친목을 다진다. 명절 즈음에는 스리랑카 춤과 노래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기도 한다.
충북에 거주하는 스리랑카 국적의 노동자들은 수시로 만나 친목을 다진다. 명절 즈음에는 스리랑카 춤과 노래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기도 한다.

 

특히 이들은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제대로 못하는 같은 국적의 노동자들을 돕고 있다. 형편이 녹록치는 않지만 5만 원, 10만 원, 20만 원, 십시일반 모금을 해서 병원비에 보탠다. 시란 씨가 일전에 받은 수백만 원도 그렇게 모은 돈이다.

한국생활 20여년 째인 하랸(Harendra·43)씨는 모임을 적극 운영하고 있다. 어엿한 사업체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주변에는 어려움과 아픔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일을 하다 다치는 사람도 많고 죽는 사람도 너무 많아요. 머리의 피가 막혀서 왼쪽에 마비가 온 사람도 있고, 손이 잘린 사람도 있어요. 시란 씨 말고도 정말 많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요.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 적용이 안될 수도 있고 사장이 돈이 없으면 제대로 치료를 못 해주잖아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려운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돈이든, 집이든, 생필품이든 형편껏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놓았다. 그러나 250만 원 안팎의 급여를 받는 노동자들로선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하랸 씨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의료보험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임승차’가 아니라 정당하게 세금을 낼 테니 혜택을 보게 해달라는 얘기다.

 

“한국 사람과 똑같이 세금을 내고 똑같이 의료보험 지원을 받고 싶어요. 한국에서 5년 정도 산 사람에게는 한국사람들과 똑같이 세금을 부여하면 되잖아요. 농촌이나 건설현장에서는 이미 외국인들이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해요. 같이 사는 거잖아요.”

 

그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해 과감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외국인들이 없으면 산업현장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니 이제는 과감히 제도를 개선해 더불어 살아가자는 것이다.

하랸 씨는 “한국사람들이 과거에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많은 고생을 한 것처럼 현재 한국에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며 “이제는 더불어 살아가자”고 거듭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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