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 연세대 삼민투 출신으로 DJ·반·안 거처 윤까지
위안부 비하발언 등으로 윤석열 정부 다문화비서관 자진사퇴
김 씨, 권영길→김대중→이인제→반기문→안철수→윤석열?

윤석열 정부 초대 다문화비서관으로 임명됐다 7일만에 자진사퇴한 김성회씨. 그는 전향한 운동권 출신으로 2017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지지했다. 사진은 김 씨가 주도한 반기문 지지를 위한 글로벌시민포럼 창립대회  장면(사진 충북인뉴스 DB)
윤석열 정부 초대 다문화비서관으로 임명됐다 7일만에 자진사퇴한 김성회씨. 그는 전향한 운동권 출신으로 2017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지지했다. 사진은 김 씨가 주도한 반기문 지지를 위한 글로벌시민포럼 창립대회  장면(사진 충북인뉴스 DB)
김성회 씨는 2017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팬클럽 반딧불이 중앙회장을 맡기도 했다.
김성회 씨는 2017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팬클럽 반딧불이 중앙회장을 맡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초대 종교다문화 비서관으로 임명됐던 김성회씨가 지난 13일 자진 사퇴했다.

김 씨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비하하고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혐오 발언이 알려지면서 임명 일주일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자진 사퇴했지만 뒤끝은 여전했다. 김 씨는 자진사퇴 하루 뒤인 14일 SNS에 “말 귀 못 알아먹고,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 편집해서 사람들을 오해하고 그릇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언론인들의 제일 큰 잘못”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조선 시대 절반의 여성이 성적 쾌락의 대상이었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진실”이라며 “자신의 잘못된 지난날을 반성하는 것은 자학이 아니라, 자기 발전과 성장의 밑거름”이라고 주장했다.

 

차별과 혐오발언 만큼 얼룩진 그의 인생

권영길에서 안철수까지, 대선마다 철새처럼 날아다녀

 

김 전 비서관은 화려한 운동권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05년 뉴라이트 운동에 관여하며 사상적으로 전향했지만 그 이전 까지는 운동권의 삶을 살았다.

또 1997년 대선 당시 국민승리21 권영길 후보 캠프 활동을 시작으로 이인제 전 국회의원의 대통령선거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선거 전문가다.

김 씨는 전향한 386 운동권으로 DJ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공무원을 지내고 3번의 대선을 치른 선거전문가였다.

'학생운동→노동운동→전국연합→권영길선거운동(1997)→청와대(1999)→벤처기업→이인제 의원실'→뉴라이트→선진통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은 이념의 양극단을 다 포함했다.

김 회장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82학번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대학생 시절 미 문화원 점거사건을 주도했던 삼민투(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 연세대학교 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연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1985년 4월 집시법 위반으로 처음 구속됐다.

1986년 5월 출감한 그는 곧장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다. 인터넷언론 레디앙에 따르면 김 회장은 인천과 수원등지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1987년 5월 위장취업이 들통 나 구속됐지만 2달만에 석방됐다.

석방도 잠시 그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또 다시 구속돼 1년여의 옥살이를 했다.

1990년 잠시 학교에 복학해 고시공부를 하던 그는 다시 운동단체의 상근 활동가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전국연합이란 단체에서 교육선전국장을 맡았다. 김 회장은 1997년 대통령 선거때는 권영길 국민승리21 대통령후보의 캠프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그렇게 운동단체의 활동가로 살던 그에게 변화가 온 것은 DJ 정부때였다. 1999년 6월 김 회장은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청와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김 회장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선거 경선 당시 예상을 깨고 이인제 캠프에 합류한다.

대부분의 운동권 출신들이 김근태 전 의원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캠프로 합류하는 분위기에서 이례적으로 이인제 캠프에 합류한 것이다.

김 회장은 이인제 캠프에 합류하게 된 것에 대해 인터넷 언론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이인제 의원처럼) 충청도 출신이고, 당시만 해도 이인제가 대세였다. 그러니 민주당 후보는 당연히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전향한 운동권…이승만·박정희가 높게 보여

2002년 이인제 캠프에서 경선 탈락이라는 쓴맛을 본 김 회장은 이후 정치적으로 급격하게 우향우 했다. 김 회장은 2007년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칭송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능동적인 산업화를 위해 국민적 힘을 모았다. 굉장한 것이다. 박정희의 국가동원 능력은 대단했다”고 말했다.

이승만에 대해서도 “이승만에 의해 토지개혁이 강도높게 이뤄졌다. 또 국민 너나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인제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던 김 회장은 이미 2005년 뉴라이트 창립에 직접 관여했다. 당시 충청리뷰의 보도에 따르면 김회장은 장일 전 자민련 국장과 함께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모체가 되는 ‘뉴라이트 충청포럼’을 결성했다.

이후 김 회장은 이인제 전 국회의원과 정치 인생을 같이한다. 그는 2002년에 이어 2007년 이인제 의원의 선거캠프에서도 중책을 맡았다. 이인제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뒤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 새누리당을 당을 갈아타는 동안 김 회장도 함께 했다.

김 회장 본인도 적극적인 정치행보를 걸었다. 비록 탈락했지만 2014년에는 새누리당 청원군 당원협의회장 공모에 응시하기도 했다.

2017년 대선에선 반기문 전 UN사무총의 품에 안겼다.

당시 반딧불이는 반기문 전 총장의 팬클럽 1호였다. 이밖에도 반존사(반기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사람들), 반사모연대 등 여러 팬클럽이 존재한다. 이중 반딧불이는 팬클럽 1호라는 상징성외에도 참여인원이나 전국조직 분포 등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당시 반딧불이 중앙회장을 김성회씨가 맡았다.

그것도 잠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중도에서 낙마하자 김 씨는 곧바로 안철수 지지를 선언했다.

정권 교체기마다 유력 대선후보에 붙었던 선거 전문가. 삼민투 위원장에서 전향한 뉴라이트 출신 김성회 전 비서관은 윤석열 정부와 함께 비상을 꿈궜지만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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