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책을 중심으로

 이동갑 충북교육발전소 상임대표

이동갑 충북교육발전소 상임대표.
이동갑 충북교육발전소 상임대표.

 

“정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릴 때, 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한 이들이 맨 먼저 고통 받는다(파커 J. 퍼머, 2012:5).”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대통령 선거도 벌써 꿈같은 옛일로 기억이 아스라하다. 뉴스를 듣고 보지 않으려고 피해 다녀도 새로운 정부를 인수하는 일에 양측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기사만은 피하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60만 명에 다다른다는 날에도 정치지도자들이 국민을 격려하고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볼썽사나운 갈등의 모습이라니 걱정이 크다. 1%가 채 못 되는 역대 최소차이로 대통령이 결정되었으니 진 쪽의 상실감과 비통함이 클 것이다. 이들에게는 충분한 애도 과정 필요하다.

하지만 이긴 쪽도 진 쪽도 대한민국 국민이며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투표를 했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 정치는 갈등과 혐오를 불러오고 나라를 혼란으로 이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거결과 지도를 보며 지역에 따른 붉은 색과 푸른색, 세대 간, 남녀 간의 차이를 보면 깊은 절망에 갈비뼈가 아팠다. 이 과정에서 가장 고통 받는 이는 우리 가운데 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한 연민과 배려가 필요하다. 하루빨리 일상을 회복하고 BTS의 나라,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회복하길 기도드린다.

이번 선거에서 특이한 사항 하나는 교육 분야에 뚜렷한 공약도 쟁점도 주목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자의 공약 중에서 기존의 판을 뒤흔드는 공약들이 있어 크게 우려되는 점을 살펴보게 된다.

윤석열 정부의 교육공약은 크게 공정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강조하면서 주기적으로 전수 학력평가와 정시 비율 확대를 약속하였다. 현 정부의 교육 기조에 반대되는 공약이다. 특히 자사고와 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과 고교학점제, 2022 개정 교육 과정 및 수능과 입시체제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전 정부와 반대되는 정책을 펼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2022년 7월 출범하자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도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연합뉴스, 김지연, 2022. 3. 10).

대입에 정시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얼핏 보기에는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시 자체가 학교 수업만 열심히 공부해서는 대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 문제다. 또한, 내신 성적을 관리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경제적 여건의 학생들과 지방의 학생들에게는 수시가 버팀목이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특히 고교 시절부터 사회적 계급화와 서열화를 부추기는 자사고와 외고·국제고 등의 확대는 부모의 경제력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생각하면 현대판 카스트 제도를 연습하는 것이 되지 않을지 우려가 된다. 가난한 집 아이가 열심히 혼자 공부해서 특목고를 입학할 수 있는가? 물론 빛 좋은 개살구 격인 장학제도의 혜택으로 우롱하려고 하지 마라. 이미 많은 혜택을 받은 아이들에게 국가는 또 얼마나 많은 세금으로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지 비교한다면 정의와 연민은 어디에 있는지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정시확대는 교육부가 2023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고교학점제’와도 정면으로 충돌할 것이다.

주기적 전시 학력평가는 사교육을 부추기고 온 나라를 경쟁교육과 줄 세우기를 강화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공교육 특히 의무교육 과정에의 상대평가는 독약이다. 진짜 학력은 입시성적이 아니다. 사회가 필요한 인재는 고시 합격생이 아니다. 세계는 이미 21세기와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역량으로 암기력이 아닌 의사소통능력(Communication), 협업능력(Collaboration), 비판적 사고능력(Critical Thinking), 창의력(Creativity)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20세기형 입학성적과 고시(공무원, 의사고시, 법관 고시 등) 성공을 인재상이라고 부르는 것에 깊이 절망한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자신을 양보하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인재이다. 나라가 어렵고 위태로울 때 한 몸을 바쳐 자신을 희생하던 독립운동가가 인재인지 친일로 동포를 괴롭히다가 해방 이후 변신을 거듭하여 사회지도층이 된 이들이 인재인지 착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단순비교는 위험하다. 핵심은 한 사회에 위기에 처했을 때 기꺼이 공공선을 위해 희생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인재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교육을 통해 기르려고 하는 인재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현재 우리 교육은 정치적 금치산자인 교사들에 의해 획일적인 파시스트를 양성하는 교육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고3학생은 출마하여 국회의원이 될 수 있고, 당선되면 출석 처리를 고민하는 현장에서 '정당에 가입하거나 후원하거나 정치적 의사를 표현만 하여도 그 직을 잃게 되는 정치적 금치산자들'에게 교육을 받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37012#home).

이제 대선이라는 파도는 지나갔지만, 더 큰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교육 수장을 선출하는 선거가 남아 있다. 윌리암 슬론 코핀은 “세 종류의 애국자가 있는데, 그중 둘은 나쁘고 하나는 좋은 것이다. 나쁜 애국자는 비판 없이 사랑만 하는 자들과 사랑 없이 비판만 하는 자들이다. 좋은 애국자는 자기 나라와 끊임없이 사랑 싸움한다”라고 말한다.

당신이 애국자인 것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내 애국의 결과 나라가 갈등과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을 본다면 잠시 멈추고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혹시 나쁜 애국자가 아닐까? 시민단체의 역할도 그러하여야 할 것이다. 비판 없이 사랑만 하거나 사랑 없이 비판만 해서는 안 된다. 비판하되 애정을 바탕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본령이다.

“상실에 직면하여 어떤 사람들은 더욱 비통함에 빠지고 위축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비심이 커지면서, 어둠과 슬픔의 에너지 안으로 스며드는 통찰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치유하고 타인의 아픔으로 손을 뻗친다(파커 J. 파머, 2012:116).”

부서지고 깨어져 주저앉아 울지만 말고 열린 마음으로 그 땅을 딛고 일어서 내일을 향해 가야 할 때가 왔다. 바닥을 딛고 서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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