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동 138·142번지 이어 114번지 1669㎡도 조선신탁 명의
민씨 일가 조선신탁 상당산성 내 토지면적 5117㎡로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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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거두 민영휘 일가가 청주시 상당산성 내 수탈의 첨병에 섰던 ‘조선신탁주식회사’를 통해 현재까지 소유한 토지가 추가로 확인됐다. 사진은 일제강점기 시절 작성된 토지등기부가 수록된 청주시 토지대장
친일파 거두 민영휘 일가가 청주시 상당산성 내 수탈의 첨병에 섰던 ‘조선신탁주식회사’를 통해 현재까지 소유한 토지가 추가로 확인됐다. 사진은 일제강점기 시절 작성된 토지등기부가 수록된 청주시 토지대장
민영휘 일가가 조선신탁주식회사에 신탁해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는 충북 청주시 산성동 114번지 모습(붉은색 원안)
민영휘 일가가 조선신탁주식회사에 신탁해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는 충북 청주시 산성동 114번지 모습(붉은색 원안)

친일파 거두 민영휘 일가가 청주시 상당산성 내 수탈의 첨병에 섰던 ‘조선신탁주식회사’를 통해 현재까지 소유한 토지가 추가로 확인됐다.

본보가 <청산되지 않은 역사 친일파의 재산은 살아있다> 기획보도를 통해 찾아낸 상당산성 일대에 민영휘 일가가 조선신탁주식회사에 신탁한 토지는 지금까지 2필지 3448㎡.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138번지(지목 전, 면적 2317㎡)와 142번지(지목 대지, 면적 1131㎡)로 면적은 총 3448㎡에 달한다.

해당 토지의 소유자는 조선신탁주식회사. 1934년 11월 22일 신탁행위를 해 등기원인이 발생했고 이듬해인 1935년 9월 16일 등기가 접수됐다.

일제가 작성한 토지등기부등본에는 청주시 산성리 138번 번지와 142번지에 대한 최초 소유자로 ‘청주군 낭성면 산성리’로 기재돼 있다. 기재 년도는 소화(昭和) 5년, 즉 1930년이다.

다시 같은 해 소유자가 ‘산성리’에서 ‘청주군 낭성면’으로 변경된다.

그리고 다시 같은 해 3월 경성부 관훈동에 거주하는 안유풍(安遺豊)에 소유권이 이전됐다. 등기부상에 나타난 이전 사유는 ‘매매’(賣買)다.

민영휘 일가가 조선신탁주식회사에 신탁해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는 청주시 산성동 138, 142번지 모습
민영휘 일가가 조선신탁주식회사에 신탁해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는 청주시 산성동 138, 142번지 모습
청주시 산성동 138번지 토지등기부등본. 소유자가 조선신탁주식회사로 돼 있다.
청주시 산성동 138번지 토지등기부등본. 소유자가 조선신탁주식회사로 돼 있다.
청주시 산성동 142번지 토지등기부등본, 소유자가 조선신탁주식회사로 돼 있다.
청주시 산성동 142번지 토지등기부등본, 소유자가 조선신탁주식회사로 돼 있다.

새로운 토지 소유자가 된 안유풍은 누굴까? 대표적인 친일파 민영휘의 첩으로 ‘해주마마’로 불린 인물이다.

이 토지는 다시 1935년 조선신탁주식회사로 소유권이 이전된다. 토지등기부등본에는 이전 사유로 ‘신탁’이라고 기재돼 있다.

 

새롭게 발견된 산성동 114번지

 

새로이 발견된 민영휘 일가가 조선신탁주식회사에 신탁한 토지는 청주시 산성동 114번지로 지목은 ‘전’(밭)으로 돼 있다. 면적은 1669㎡다.

토지등기부 등본에 기재된 소유자는 조선신탁주식회사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4년 11월 22일 신탁행위가 이뤄졌고 1935년 9월 16일 등기가 이뤄졌다.

 청주시 산성동 114번지 토지등기부 등본. 소유자가 조선신탁주식회사로 돼 있다.
 청주시 산성동 114번지 토지등기부 등본. 소유자가 조선신탁주식회사로 돼 있다.

소유자로 등재된 조선신탁주식회사는 1932년 조선총독부와 조선의 매판 자본가들이 합작해 설립한 신탁회사다. 조선신탁회사에 참여한 대표적인 인물은 민영휘다. 그는 한일병합의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귀족 신분인 ‘자작’을 수여받았고 은사금까지 받았다.

영업 분야는 금전신탁, 토지 등 부동산 신탁, 유가증권 신탁 등 세 부분이다.

민영휘 일가가 추가로 산성동 114번지를 조선신탁주식회사에 신탁한 것이 확인되면서 이들이 상당산성 부지에 소유한 토지는 3448㎡에서 5117㎡로 늘어났다.

산성동 114번지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지목은 전으로 돼 있지만 밭으로 기능은 사라진지 오래다.

농작물 대신 이곳에 자리한 것은 규모가 매우 큰 묘가 자리잡고 있다. 이 묘는 최근 들어 관리가 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갈대가 우거져 있어 봉분과 석물 등을 뒤 덮고 있다.

이 묘의 주인은 누구일까?

바로 민영휘와 그의 첩 해주마마라 불린 안유풍 사이에서 낳은 첫째 아들 민대식 부부다.

민대식은 친일파 거두 민영휘의 아들답게 친일 반민족 행위에 적극 가담했다. 일제에 아부하기 위해 국방헌금을 납부하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부를 축적했다.

같은 친일 매국노 이완용의 아들 이항구와 함께 일제강점기 시절 골프를 즐겨 했다.

위 토지 소유자인 조선신탁주식회사의 취체(대표)역을 역임했다. 그의 아들 민병도는 동생 민천식의 양자로 입양됐다. 민병도는 휴양지로 알려진 남이섬의 설립자다.

민대식은 해방 후 구성된 반민특위의 조사대상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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