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5천여 명 충북도민의 뜻, 이대로 사라지나?
충북도, “주민청구 조례안 세 가지, 상위법 위반 논란 있다”
운동본부, “반노동·비민주 행정…도지사퇴진·총파업도 불사”
타·시도 생활임금 조례는 대부분 의원발의로…큰 진통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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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는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청구 조례 원안 사수, 생활임금 ·노동안전 조례제정을 촉구했다.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는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청구 조례 원안 사수, 생활임금 ·노동안전 조례제정을 촉구했다.

 

충북지역 시민·노동단체가 도민 1만51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충북도에 제출한 ‘생활임금·노동안전 조례제정을 위한 주민청구 조례안’이 각하될 위기에 처했다. 충북도가 이미 지난 3월 24일 주민청구 조례안에 대해 조례·규칙심의회 심의·의결한 결과 ‘수리’됐다고 알려왔지만 최근 상위법에 위반된다며 다시 조례·규칙심의회 심의를 하겠다고 통보해왔기 때문.

실무부서인 충북도 경제통상국 일자리정책과는 최근 주민청구 조례안이 상위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주장, 각하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치행정과에서는 주민청구 조례안에 위법성이 명백하지 않으니 도의회에 부의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한 반면, 일자리정책과에서는 위법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청구 조례안은 오는 20일 오전 9시 40분에 열리는 조례·규칙심의회에서 그 운명이 결정될 예정이다.

 

상위법 위반한다는 세 가지는 무엇?

충북도 경제통상국 일자리정책과에서 제기한 상위법 위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생활임금 조례안 제 8조 제2항은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지방계약법) 제6조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즉 ‘도지사는 충청북도와 위탁·용역·조달 등의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당사자와 생활임금 적용에 관한 내용을 계약으로 체결할 수 있으며, 생활임금 적용기업을 우대할 수 있다’(생활임금 조례안 제 8조 제2항)는 조항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약당사자에게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이나 조건을 정할 수 없도록 한다’(지방계약법 제6조)는 규정을 위반할 수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충북도 일자리정책과 관계자는 “현행법상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이상만 주면 되지만 생활임금 조례가 제정되면 법률에 위임이 없음에도 사업주는 생활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이것은 지방계약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법무혁신담당관의 관계자도 “생활임금 조례가 제정되면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플러스알파를 지급해야 하는데 이를 의무화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등 상위법령에 이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충북도가 문제 삼는 두 번째는 ‘도지사는 생활임금 운영상황에 대한 지도·감독 활동을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는 생활임금 조례안 제8조 제3항이다. 즉 생활임금 조례안에 따르면 충북도지사는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제대로 지급했는지 지도·감독을 해야 하는데 이는 법률상에 위임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현재로선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지도·감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일자리정책과 관계자는 “이 조례안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법 제22조(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에 따라 위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어서 근거 없는 지도·감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은 노동안전 조례안이다. 충북도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노동안전 조례안은 조례제정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지방자치법 제 11조 제 5호에 따르면 ‘근로기준·측량단위 등 전국적으로 기준이 통일하고 조정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사무에 해당하는 국가사무는 지방자치단체가 처리할 수 없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제정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 직후 충북도 행정부지사와의 면담을 요청하며 기다리고 있다.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 직후 충북도 행정부지사와의 면담을 요청하며 기다리고 있다.

 

“도지사 퇴진운동과 지역총파업 투쟁도 불사할 것”

충북도의 이와 같은 의견에 시민·노동단체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더욱이 주민청구 조례안 요건이 충족돼 도의회에 부의하는 절차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서 받은 통보여서 시민·노동단체는 충북도가 지방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외면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비정규직운동본부)는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충북도 의견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우선 생활임금 조례안 제 8조 제2항은 권고사항을 정한 것에 불과하고 생활임금 적용에 관한 내용을 계약을 체결할 것인지 여부는 순전히 계약당사자간 자유의사에 맡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생활임금 적용에 대하여 법적 강제력을 토대로 의무를 부과, 강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상대자에게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이나 조건을 정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 지방계약법 6조 위반이 아니라는 얘기다.

생활임금 조례안 제 8조 제 3항 또한 계약당사자간 자유로운 합치로 생활임금 적용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 한하여 지도·감독을 규정한 것이기 때문에, 지방자치법 제22조를 위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동안전 조례안 또한 충북도에서는 ‘국가사무’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사업장에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조례제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정규직운동본부는 이 세 가지 사항 외에도 또다시 열리는 충북도의 조례·규칙심의회 개최는 명백히 부당하고 지방자치법 제15조 제9항에 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문에서 비정규직운동본부는 “이미 조례규칙심의회 심의 결과로 수리 통보까지 해놓고 또다시 심의회를 열어 주민청구 조례안에 대한 수리 통보 결정을 번복하고 각하시키겠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방자치법 등 관련 법령 어디에도 이미 수리된 주민청구 조례안을 다시 심의할 수 있다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명백하게 부당한 행정절차이며 과도한 행정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진희 비정규직운동본부 공동대표는 “노동자의 권리보호와 삶의 개선을 위한 지방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외면하는 반노동·비민주 행정”이라며 “생활임금·노동안전조례가 짓밟힌다면 이시종 도지사 퇴진운동과 지역총파업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20일 열리는 조례·규칙심의회 취소와 ‘생활임금·노동안전 조례제정을 위한 주민청구 조례안’ 원안통과를 강력 주장했다.

선지현 공동대표도 “지방자치의 참된 뜻은 주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충북도는 불법적인 절차를 앞세워서 도민의 뜻을 지우려고 한다. 너무나 분노한다. 원안을 사수하고 심의회가 취소될 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월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소속 회원들이 도민 1만5100여명이 서명한 서명지를 충북도 자치행정과에 제출하기 위해 나르고 있는 모습.
지난 2월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소속 회원들이 도민 1만5100여명이 서명한 서명지를 충북도 자치행정과에 제출하기 위해 나르고 있는 모습.

 

멀고도 먼 주민청구 조례안

충북도에서 노동(생활임금)조례에 대한 논의는 201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북지역 시민·노동단체는 2018년 10월 충북도의회 산업경제위원회와 간담회를 시작으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보장 제도 및 정책마련을 위한 토론회’, 1만 명 서명 등을 통해 노동조례 제정을 촉구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상정되지 못했다.

이후 1인 시위와 성명발표 등 비판이 이어졌고 그 결과 2019년 5월 충북도의회 산업경제위가 ‘충북도 근로자 권리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안’과 ‘충북도 비정규직 근로자 권리보호 및 지원조례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또다시 ‘누더기 조례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조례 대상 범위’와 ‘노동자권익보장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됐고 ‘노동조사관제도’도 삭제됐기 때문. 이어 2019년 11월에는 이시종 충북도지사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생활임금 조례 상정이 연기됐었다.

이에 민주노총충북지역본부를 비롯해 비정규직운동본부는 2020년 초부터 ‘생활임금 조례와 노동안전 조례’ 주민운동을 시작, 조례 주민청구 서명운동을 벌였고 지난 2월 15일 도민 1만 5100여명이 서명한 주민청구 조례안을 충북도에 제출하기에 이른다. 이어 3월 24일에는 충북도 조례·규칙심의회로부터 ‘수리’ 통보를 받았고 60일 안에 도의회에 부의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부의 기한 열흘을 앞두고 비정규직운동본부는 다시 심의해야 한다는 공문을 받게 된 것이다.

생활임금 조례는 소득양극화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우선 지자체만이라도 국가가 정한 최저임금보다 10∼20%가량 높게 재산정해 적용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제도는 현재 17개 광역시·도 중 14개 광역시·도를 비롯해 100여개가 넘는 기초단체에서 실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광역시·도에서는 어떻게 상위법 위반 논란 없이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했을까? 또 조례제정 시 충북과 같은 진통을 겪었을까?

관계자들에 따르면 생활임금 조례가 제정된 14개 시·도 중 12개 시·도의 생활임금 조례는 의원발의로 제정됐다. 또 2개 시·도는 집행부(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제정됐다. 의원 발의는 주민발의 조례안과 달리 의회에 통과될 때까지 심의가 없고, 의결된 이후 이뤄지기 때문에 큰 진통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의원발의 조례는 의회의 권한으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에 저촉되는 조항이 있다하더라도 통과될 수 있다. 집행부에서 반대를 하더라도 의결이 될 수 있다. 또 의결이 된 이후에 이뤄지는 심의는 정치적인 판단이 가미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원발의 조례는 문제가 되면 조항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있지만, 주민발의 조례안은 수정권한이 없다. 주민발의 조례안은 각하든지 수리든지 둘 중 하나만 택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계다“라며 ”충북에서 생활임금·노동안전 조례가 제정되려면 의원발의로 접근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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