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윤희왕 씨, 낮엔 활동보조…새벽엔 신문배달
정부지침 때문에 최저임금도 빠듯…살기위해 투잡

▲ 고 윤희왕 분회장의 생전 모습(가운데 노란색 상의착용). 지난해 11월 14일 윤 씨는 청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주시장 면담을 요청했다.

“투잡, 쓰리잡은 기본이에요. 항상 피곤하고 지금도 자고 싶어요. 오늘도 아홉 시에 자야지 내일 새벽 한 시에 아르바이트를 나갈 수 있어요”라며 생계형 ‘투잡’에 나섰던 장애인활동보조인이 숨졌다.

▲ 고 윤희왕 분회장

장애인활동보조일과 새벽 신문배달 일을 하던 윤희왕(52)씨. 새벽 한 시에 찬공기를 마시며 집을 나섰던 그는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사인은 심근경색.

열악한 장애인활동보조인의 처우를 고발하며 지금도 자고 싶다던 윤 씨는 그 소박한 소망조차 이루지 못한 채 영원히 잠들었다.

6일 새벽 3시, 청주시 용암도 모 아파트 경비 A씨는 라이트를 켠 채 움직이지 않는 차량을 발견했다. 상당 시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자 이를 이상히 여긴 A씨는 차량으로 다가섰다. 차량안에는 한 중년남성이 운전대에 쓰러져 있었다. 차량 뒤 좌석에는 신문 뭉치가 놓여 있었다.

창문을 두드리고 인기척을 보냈지만 답이 없자 A씨는 119에 신고했다. 출동한 119 소방대원은 쓰러진 운전기사에 심폐소생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장애인의 벗으로 또 장애인활동보조인의 대변인으로 살았던 故 윤희왕 씨의 죽음은 이렇게 발견됐다.

숨진 윤 씨의 직업은 장애인활동보조인. 윤 씨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 이 일을 해왔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이동과 가사서비스를 제공해 장애인이 최소한의 기본권을 유지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이렇게 해서 그의 손에 쥐어지는 것은 월 100여만원. 2명의 자녀가 있는 그가 생계를 이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윤 씨는 부족한 수입을 ‘투잡’으로 메웠다. 그는 주간에는 활동보조인 일을 했고 새벽에 신문배달일을 했다. 신문 배달 일은 밤 1시부터 시작해 아침 5~6시 까지 해야 했다. 형편이 어려운 때에는 저녘 시간대에 파트타임 일도 추가로 해 하루 ‘쓰리잡’ 까지 했다.

윤 씨는 3년전 활동보조인의 열악한 처우에 대해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투잡, 쓰리잡은 기본이에요. 항상 피곤하고 지금도 자고 싶어요. 오늘도 아홉 시에 자야지 내일 새벽 한 시에 아르바이트를 나갈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처우개선 나섰던 활동가

윤 씨가 활동보조 일을 하며 다른 일을 겸해야 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활동보조인의 급여가 최저임금도 안될 정도로 매우 열악했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인의 급여는 보건복지부가 결정한다. 보건복지부는 매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수가를 결정하는데 이 범위 안에서 지급할 임금이 결정된다.

문제는 보건복지부가 결정한 수가가 현실적으로 근로기준법 상 최저임금과 법정수당을 지급할수 없을 정도로 적다는 것. 3 년 전 윤 씨의 월 급여는 80여만원에 불과 했을 정도다.

현재 보건복지부 ‘장애인활동지원사업안내지침’에는 근로기준법상 지급되어야 할 주휴수당,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무수당등에 대한 지급 지침이 제대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실제 대다수의 중계기관들이 법정 수당을 지급하지 못했다.

윤 씨는 투잡·쓰리잡 까지 하는 억척스런 가장인 동시에 주어진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활동가이기도 했다.

윤 씨는 2013년 2월 22일 전국 최초로 장애인활동보조인의 노조인 ‘공공서비스노조 돌봄지부 다사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분회를 출범시키며 분회장을 맡았다. 2015년 6월 30일에는 전국 최초(비영리단체 기준)로 다사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미지급된 3년간의 연차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설득해 냈다.

지난해 11월 14일 청주시장애인활동보조인협의회는 청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7년 장애인활동보조인의 임금이 체불되고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제공기관이 파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윤 씨는 기자회견을 한 단체의 대표이기도 했다.

 

윤 씨의 면담요청을 끝내 거부한 이승훈 청주시장

 

그는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는 2017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예산 수가를 2016년과 동일한 9000원으로 동결시킬 방침이다”며 “내년 최저임금 6470원을 기준으로 볼 때 이 금액으로는 장애인활동보조인의 임금 체불뿐만 아니라 제공기관마저 운영할 수 없을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청주시의 대책도 촉구했다. 윤 씨와 협의회는 “청주시에서만 현재 1500명이 넘는 활동보조인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다. 상시적으로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며 각종 근골격계 질환을 앓을 정도로 노동 강도가 심한 일터에서도 묵묵히 일하고 있다”며 “청주시 시정을 책임지고 있는 청주시장에게 장애인활동보조인의 수가인상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며 면담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현재 윤 씨가 면담요청을 한지 2달이 지났다. 하지만 윤 씨는 끝내 이승훈 시장을 만나지 못했다. 청주시장이 이들의 면담을 거부한 것이다.

윤 씨는 숨지기 몇일 전부터 동료들에게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다”고 말했다. 이후 윤 씨는 소화제를 먹고 통증을 달랬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 씨의 죽음이 알려지자 동료들과 장애인 인권운동단체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성명을 통해 “고인은 사망하기 전까지도 활동보조인의 권익을 대변하고자 헌신적으로 활동해 왔다”며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장애인의 벗이라는 자긍심과 활동보조인의 권익을 지켜내겠다는 희망은 고인의 원동력 이었다”며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어 “3년 전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야기 했던 고인의 말이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비정규노동자의 삶.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활동보조인의 노동환경. 고인의 죽음에서 한국사회의 잔인함을 발견한다는 것은 과한 비판일까?”라고 밝혔다.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투잡과 쓰리잡 까지 하며 억척스럽게 살았던 고 윤희왕 분회장.

그토록 간절히 만나고자 했던 이승훈 청주시장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척박한 노동조건만 남긴채 쓸쓸히 떠났다.

 

故 윤희왕 씨 약력

야간학교 늘푸른교실 졸업

전 희망재활원 근무

전 방송통신대학교 총학생회 복지국장

현 공공운수노조의료연대본부돌봄지부충북지회 다사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분회장

현 장애인평생교육시설 다사리학교 운영위원 / 현 다사리산악회 총무 / 현 노동당충북도당 대의원 / 현 다사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감사 / 현 청주활동보조인대표자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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