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명기 남해보물섬고 교장.
백명기 남해보물섬고 교장.

 

남 앞에 서면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 학생이 입학했습니다. 초·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을 겪었고, 여러 가지 이유로 누군가와 말을 나누는 게 어려운 학생이었습니다.

학기말 학생, 교사, 학부모 앞에서 그동안의 활동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었습니다. 힘겹게 준비한 PPT 화면 앞에서 말없이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했고, 여러 선생님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으며, 고민을 나누는 친구가 적어도 한 명은 있었기에 충분히 발표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그날 무대에서 묵묵히 서 있었습니다.

모든 학생을 내보내고 교사들만 남아서 말없이 이십여 분을 기다린 끝에 가까스로 발표를 들었습니다. 기뻐하는 선생님들과 기념촬영을 했고, 그날 이후 그 학생이 발표를 머뭇거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졸업 때까지 학교와 마을 여기저기를 다니며 놀랍도록 멋진 사진을 찍어서 수다스러운 발표에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입학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졸업 후 지방의 전문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근무했던 대안학교에서 겪은 일이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대안학교에서 참 흔한 일입니다.

저는 스포츠 경기를 좋아합니다. 응원하는 팀의 선수들이 열정을 다해 자신을 단련하고, 최선의 경지에 이르러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모습에서 감동합니다. 근육과 관절 곳곳에 붙어있는 테이프와 힘겨운 표정, 숨 가쁜 호흡 속에서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 일어서서 멋진 경기를 펼쳐 줄 때면 정말 놀랍고 고맙습니다.

그러나 제가 불편하게 여기는 지점은 팀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감독이 각 포지션에 경쟁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현재 최고로 잘하는 선수가 뛰어야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으니까요. 포지션 경쟁에서 이겨낸 선수가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이면에 경쟁에서 탈락한 선수는 경기에 나설 수도 없고 결국 도태되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경쟁은 어쩌면 스포츠의 본질적 요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은 스포츠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사회가 쌓아온 지식을 전달하여 그 사회를 유지하고 새롭게 가꾸어가는 역할과 함께 모든 인간이 그 사회에게서 받아야 할 양분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능력에 따른 차별보다는, 차이에 따른 배려에 좀 더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상은 경쟁의 원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뛰어난 과학자 한 명이 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은 엘리트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담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경쟁교육의 정당성을 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유치원부터 슬금슬금 시작되는 경쟁교육과 입시교육에 내몰린 학생들은 계속 사회로부터 끊임없는 평가와 시험성적으로 등급이 매겨집니다. 그 속에서 불리한 경제 여건, 부족한 환경, 또는 선천적 요인 등 다양한 조건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자존감을 잃어가거나 배움의 현장에서 밀려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학교 현장이 경쟁적이고 입시 위주의 환경에만 갇혀 있고, 방과 후에도 학원에 가서 시험 준비와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면, 자유롭고 창의적인 배움을 추구하는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서두에 언급한 학생처럼 서서히 잃어가는 자신감과 커가는 주변 어른들의 실망감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람은 누구나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말을 학교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동안 수많은 대안학교는 그런 질문 속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물론 그 질문 속에는 진정한 배움은 경쟁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주장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교육방식을 바꾸기 어려운 일반 학교와 달리 대안학교는, 경쟁하지 않고 서로 돕고 협력하며 배우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시도하여, 경쟁에서 상처받은 학생들이 회복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어 보는 학교입니다. 그래서 경쟁교육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가던 학생들이, 또는 암기와 입시교육에 순응하지 않는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할 공간으로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학생은 대학보다는 당장 살기 위해서, 성적에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기 위해서 대안학교를 선택합니다. 졸업 후 진로로 대학을 선택하든 그렇지 않든,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어 살 힘을 얻어갑니다. 그래서 대안학교마다 놀라운 졸업생들의 사례가 전설과도 같이 떠도는 것입니다.

지난 5년간 개교를 준비해 온 단재고는 경쟁과 입시에 찌들어 무한 경쟁의 쳇바퀴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에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미래형 대안학교로서 미래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학교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학교의 시설과 교육과정을 구성해나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전국의 수많은 학교를 오가며, 연구와 고민을 해온 교사들이 오랜 기간을 거쳐 준비하며, 교육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학교의 상을 고민한 끝에 준비된 학교여서 많은 대안학교 관계자들의 부러움을 샀고, 그만큼 단재고가 어떻게 한국의 미래형 대안학교의 새로운 모델이 될지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충북교육청에서 단재고의 교육과정을 전면 수정하고, 개교를 늦춘다고 합니다. 단재고의 교육과정이 파격적이기에 교육청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나 교육청의 취지가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둔 대안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면 걱정이 됩니다. 본교를 방문한 분 중에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고, 학생자치를 활성화한 행복학교(경남의 혁신학교를 이렇게 부릅니다)와 남해보물섬고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저는 제일 먼저 입시로부터 자유로우냐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행복학교와 달리 남해보물섬고는 대안학교로서 입시로부터 자유로우므로 구성원들이 더욱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고, 좀 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도들이 분명 좋은 교육적 함의를 담고 있음을 보여왔기에 경남의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 김해금곡고, 남해보물섬고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재고의 비전이 흔들리게 된다는 건 충북 교육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에 큰 아픔이 될 것 같아 걱정됩니다. 충북교육청은 이런 점을 헤아려 단재고의 개교 일정을 원래대로 되돌려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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