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고 정상개교 도민행동, 김누리 교수 초청 강연 열어
경쟁교육이 ‘자살률 1위’ 등 한국사회 많은 문제점 낳아
김누리 교수, 단재고는 교육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개혁 문제
“경쟁교육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일상 속 민주주의 실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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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교수 강연 리뷰]

 

김누리 교수.
김누리 교수.

 

“‘대학 입학시험 폐지’, ‘대학 서열체제 폐지’, ‘대학 등록금 폐지’ 이것이 한국교육이 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다소 파격적이고 당황스럽기까지 한 주장이다. 하지만 그의 강연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 ‘아동우울증 1위’, ‘불평등 1위’, 심지어 ‘불평등을 사랑하는 나라 1위’라는 오명을 쓴 것은 바로 ‘교육’ 때문이라고 단언하는 사람. 한국교육은 파시즘을 내면화시키는 교육이라고 촌철살인 사이다 발언을 하는 사람.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김누리 교수가 평일(5일) 저녁 청주 성안길에서 강연을 했다.

1시간 동안 이어진 그의 강연은 일말의 격식도, 꾸밈도 없었다. 대신 한국사회 문제의 핵심을 관통하는 직격이 있었다. 그의 강연에 관중들은 성찰했고, 환호했다. 또 늘 가지고 있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가슴속 뭉클한, 무언가를 솟구치게 했다.

우리사회 문제를 정확히 꿰뚫는 그의 분석과 시각은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 ‘해봤자 소용없지’라는 패배적인 생각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경쟁교육이 헬조선을 만든다’를 주제로 진행된 강의에서 김누리 교수는 우리사회에서 교육의 문제, 이른바 반교육(Anti Education)으로 우리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어 단재고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과정 미비’를 이유로 단재고 개교를 미루는 윤건영 충북교육감을 대놓고 비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재고 정상개교를 위해 충북도민들이 나서야 하고, 윤 교육감과 충북교육청을 설득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일단 그의 강연을 들어보자.

 

“한국사회는 정말로 신비로운 사회입니다. 훌륭한 민주주의를 이루고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한 나라이지만 거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교실에 있습니다. 한국 교실에서 아이들은 정상적인 인간이 되질 못합니다. 교육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이런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인간이 나빠집니다. 한국교육을 12년 동안 받으면 파시스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한국교육의 비판은 이미 새로울 것도 없지만, 파시스트라니… 이토록 맹렬하고 혹독한 비판을 받을 정도인가?

 

“교육의 목표는 잠재성을 발현시키는 것, 존엄성의 감수성을 강화시키는 것,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자유인을 길러내는 것, 성숙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목표는 고사하고 파시스트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교실에서는 아이들을 끊임 없이 경쟁하게 하고, 끊임 없이 우열을 나누게 하고,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가르칩니다. 경쟁, 우열, 지배 이것이야말로 파시스트의 핵심 원리입니다.”

 

여기까지 들으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할 것도 없을 것이다. 30~40년 전 학창시절, 고스란히 몸으로 겪었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옆 친구를 앞질렀다는 우월감. 더 많은 발언권, 더 많은 지배, 반대의 경우엔 패배감, 열등감, 굴욕감.

광장에서는 ‘민주주의’와 ‘불평등 타파’를 외치지만, 우리들 내면 저 깊은 곳에는 파시즘이 있다는 말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가 말한 경쟁, 우열, 지배 등 파시즘의 논리는 우리 삶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고 대물림되고 있으며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정당화되고 있다.

김누리 교수는 강의 내내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 ‘아동우울증 1위’, ‘불평등 1위’, ‘산업재해 1위’, 심지어 ‘불평등을 사랑하는 나라 1위’라는 오명을 쓴 것은 경쟁교육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강의를 들은 누구도 그의 주장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다면 이제라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김누리 교수는 단호하게 ‘정치화’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정치적 미숙아를 정치적 금치산자가 가르칠 것이냐며 이제는 정치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좌절하더라도 싸움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잘 진 싸움이야말로 역사의 궤적이 되기 때문이다.

 

 

김누리 교수의 이번 강연은 현재 충북교육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되돌아보게 했다. 단재고 뿐 아니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제천고교평준화, 학력을 높이기 위해 사교육업체와도 과감히 손을 잡겠다는 충북교육청.

단재고 정상개교를 위한 도민행동이 주최한 강연이라 당연히 단재고 설립을 주장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김 교수의 강의는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문득 얼마 전, 제천고교평준화 공청회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청회에서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경쟁이 없으면 후퇴하는 것 아닙니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앞서가는 엘리트가 우리나라 경제를 살렸고, 그래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그 덕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교실에서 경쟁, 우열, 지배 이 세 가지를 빼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생각하니 씁쓸하다. 그리고 내안에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경쟁, 우열, 지배의 관념은 과연 얼마나 되고 나의 행동과 인식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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