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는 살아있다 ④] 찬반 엇갈리는 전두환·노태우 동상 존치 여부

충북도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는 통과할 것인가 

 

 >> 이전 기사 

  1. 범죄자 대통령은 이곳에서 위인이 된다 
  2. 전두환은 광주의 삶만 망가트린 게 아니다 
  3. 전두환이 민주화 운동을? 대통령은 어떻게 기록돼야 하나?

청남대에 세워진 전두환·노태우 동상을 두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금고형 이상을 받은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든 혜택을 박탈당한다. 이미 전두환·노태우는 과거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은 올해, 전두환 씨를 향한 매서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전두환 지우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상식 충북도의원이 지난 6월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을 발의하면서 충북 지역에도 논쟁에 불이 붙었다. 과연 청남대에서 전두환·노태우가 사라지는 날이 올까. - 편집자 주 

박문희 충북도의회 의장은 "의원 25명이 공동 발의해서 올라온 이 조례를 계속 통과시키지 못했던 부분 죄송하다"며 "토론회 통해 좋은 대안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 김다솜 기자
박문희 충북도의회 의장은 "의원 25명이 공동 발의해서 올라온 이 조례를 계속 통과시키지 못했던 부분 죄송하다"며 "토론회 통해 좋은 대안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 김다솜 기자

충북도의회가 발의한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 핵심은 금고 이상 형을 받은 대통령을 기념사업에서 제외하거나 중단·철회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충북도의회 행정문화위원회는 14일(수)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모았다. 

“동상을 철거하느냐, 마느냐 하는 찬반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중략) 철거가 목적인지 우리가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후손들에게, 청남대를 찾는 이들에게 역사를 바로 알게 하기 위해서 (동상을) 존치하면서 그분들의 과를 게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박문회 충북도의회 의장은 찬반으로 갈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 의장은 “이 문제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정리하는 게 도의회가 해야 할 일이자 의무라고 본다”며 “두 패로 나눠서 찬반을 논하기보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기 고민하고, 생각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독재자 미화 말라” vs “정치 이념 배제하라” 

토론회 좌장을 맡은 지용익 충북대 경영학부 겸임교수도 “찬반 공방을 벌여서 얻을 수 없는 게 없다”며 “대신 조례 제정 여부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는 논거 중심으로 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지선 5·18민주화항쟁 공동대표와 이재수 충북자유민주시민연합 대표가 찬반 대표자로 나섰다. 정 대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우선 청남대가 독재자를 미화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짚었다. 

정 대표는 “청남대는 역사 정의를 보여주는 올바른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며 “학살, 반란자를 미화하는 동상이 아니라 잘못까지 똑똑히 밝힐 수 있는 기록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독재자를 미화하는 기념 방식이 역사 정의까지 짓밟고 있다는 지적이다. 

충북도청 앞에서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 제정 찬반 의견을 개진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발생해왔다 ⓒ 김다솜 기자
충북도청 앞에서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 제정 찬반 의견을 개진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발생해왔다 ⓒ 김다솜 기자

문의면 주민들의 아픔도 언급했다. 전 씨가 문의면에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으로 대통령 별장 청남대를 지으면서 주민들의 고통도 상당했다는 설명이다. 당시 국민 관광지로 문의면이 선점됐으나 청남대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정 씨는 “그 일로 문의면은 유령도시가 됐고, 그 피해와 고통으로 제2의 광주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지적했다. 

“특정 이념에 따른 방향 설정과 실적 내기 위한 정치 행위로 보입니다. 개발 취지를 변질시키고, 향후 정치 투쟁 장소로 변질될 우려가 큰 문제라고 봅니다.” 

반면에 이재수 충북자유민주시민연합 대표는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면서 이념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정치 진영별로 평가가 다른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철거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동상 철거 찬반 여부만 오가진 않았다. 전두환 씨 동상을 유지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기록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청남대에서 대통령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왜곡된 부분은 바로 잡고, 공과를 떠나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평이다. 

“철거를 한다고 해서 노태우·전두환 대통령의 흔적이 지워지는 건 아니란 판단이 듭니다.” - 이광형 뉴스1 충북·세종본부 대표 

“저는 동상 철거를 안 해도 5·18 정신을 올바르게 이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철거해야만 (5·18 정신이) 깃드느냐? 그런 생각 안 해요. 표지석을 세워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알리면 됩니다.” - 배동석 문의면연합번영회장 

시민들이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 제정 관련 토론회를 청취하고 있다. 충북도는 의견 수렴을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으나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불분명하다  ⓒ 김다솜 기자
시민들이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 제정 관련 토론회를 청취하고 있다. 충북도는 의견 수렴을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으나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불분명하다 ⓒ 김다솜 기자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은 ‘구분 짓기’를 강조했다. 기억과 기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주체사상을 예로 들었다. 북한 김일성·김정은을 숭배하기 위해 주체사상을 배우는 게 아니라 알아야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란 설명을 덧붙였다. 

“공적 공간·사적 공간을 구별해서 봐야 합니다. 공적 공간으로 보면 당장 (동상을) 때려 부셔야죠. 청남대는 대통령 별장으로 사적 공간인데 지나치게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역사적 사실 관계는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청남대 전두환 동상 아래 있는 설명판 자료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12·12 쿠데타를 기록하고, 헌정 질서 파괴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남대는 공적 공간…“철거해야 한다” 

청남대는 공적 공간인가, 사적 공간인가를 두고 반박이 오갔다. 이혜정 청주YWCA 사무총장은 청남대를 ‘공적 공간’이라고 규정했다. 대통령 별장으로서 사생활을 보여준 곳이기도 하지만, 공적 기관으로서 기능을 이미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공화된 자원이 투입되고, 모든 사람이 향유하는 공간이란 의미에서 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그 공간을 향유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은 역사 인식을 배우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습득하게 됩니다.”

이 사무총장은 동상 철거 입장을 표명했다. 이 사무총장은 “역사의 아픔, 상처, 공과가 그대로 드러나는 게 상징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며 “청남대 두 전직 대통령 동상은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역사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최종예 씨(충북 흥덕구 운천동 거주)도 공감을 표했다. 최 씨는 “전두환·노태우 동상이 없어져도 청남대에 관광객이 안 올 거란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청남대에 있는 전두환, 노태우 동상은 너무 당당해요. 자국민을 그렇게 많이 죽여 놓고도 너무나도 당당하게 서 있어요. 과오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어요.” 

과거 충북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상식 도의원은 "역사 지우기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저는 역사를 지우자는 게 아니라 직전에 있는 현대사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라고 조례안의 의의를 설명했다 ⓒ 김다솜 기자
과거 충북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상식 도의원은 "역사 지우기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저는 역사를 지우자는 게 아니라 직전에 있는 현대사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라고 조례안의 의의를 설명했다 ⓒ 김다솜 기자

충북도의회에서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이상식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동상이 가지는 의미가 역사적 유물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동상이 관광 목적물이 될 수 없고 개인 기념관에 있는 관광 부수물일 뿐”이라며 “5·18 학살과 문의면 주민의 삶을 빼앗은 사람에 대한 동상은 존치해선 안 된다”고 입장을 고수했다. 

동상 철거에 의견을 보탠 이들은 사회적 의미에 주목했다. 동상은 그 사람의 업적이나 인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지기 때문에 청남대에 전두환·노태우 동상이 남아 있는 건 옳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조례안 제정은 바람직한가 

박 교수는 본인이 2013년 청남대 대통령 동상 건립을 반대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당시 박 교수는 동상과 관련해 철거 논의가 일어날 수 있으니 올바른 관광 자원이 아니라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지금처럼 동상이 문제가 된 이유를 지방자치단체의 ‘마스터플랜 부재’에서 찾았다. 즉흥적인 판단과 결정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혜정 청주YWCA 사무총장은 ‘조례안’이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반면에 이재수 충북자유민주시민연합 대표는 제 기능에 맞지 않는 조례안이 나왔다고 내다봤다.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의 법률적 쟁점이 남아 있었다. 

지난 6월 29일 발의된 '충청북도 전직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에는 기념사업 범위와 제외사항을 규정하고,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 김다솜 기자
지난 6월 29일 발의된 '충청북도 전직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에는 기념사업 범위와 제외사항을 규정하고,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 김다솜 기자
  • 동상 철거하지 않는 것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위반인가
  • 동상 철거를 목적으로 한 발의가 공익적 관점에서 가능한가
  • 조례 제정 없이 동상 설치·철거 가능한가 

윤지영 변호사는 세 가지 사항에 대해 법률적 검토 의견을 밝혔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고형 이상이 확정되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윤 변호사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입법 취지에 반하는 것과 별개로 기념사업 추진 자체는 명백한 위반이라 볼 수 없다”고 발언했다. 

조례 제정은 충북도의회 권한과 의무로 남겨 뒀다. 의회에서 자유롭게 기념사업 관련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례안 제정 없이 동상 설치·철거가 가능한 지도 지방자치단체 재량으로 봤다. 관광진흥법에 따라 관광지 조성은 지방자치단체 권한이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은 전체 도의원(31명)의 80%(25명)가 공동 발의했다. 이미 도의회 의견 수렴은 동상 철거로 마무리될 듯했으나 찬반 논란이 일면서 토론회를 열게 됐다. 충북도의회는 이번 토론회를 통해 분출된 의견을 조례안 제정에 참고하겠다는 입장이다. 충북도의원은 간담회를 거쳐 조례 제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