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현 작가 ‘玄 갤러리’ 오픈, 사진예술 지역거점 꿈꾼다

아담한 사진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사직동 분수대 인근 건물 3층에 스튜디오를 겸해 작은 갤러리 공간이 꾸며졌다. 조일현(53) 사진작가의 ‘玄 갤러리’. 오는 19일 개관식을 갖고 조 작가의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그의 일생의 화두이기도 한 ‘화엄의 바다’를 주제로 바다의 생명을 작가의 시각으로 해석한 사진작품들이 전시된다. 그가 사진예술로 사람들과 만나고 좀 더 깊은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평소의 바람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다.


조 작가는 그간 ‘화엄의 바다’ ‘우주의 소리’ ‘삭적(削迹)’을 주제로 세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화엄의 바다’는 2004년 서울 인사동의 김영섭 사진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 이후 10년 만에 다시 꺼낸 주제다. ‘화엄’은 수행으로 덕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조 작가의 ‘바다’는 시화호와 새만금을 겪은 서해다.

그는 “1990년 초 삶의 방향을 잃고 정처없이 길을 떠돌던 때에 시화호를 만났다. 인간에 의해 가둬지고 파헤쳐진 바다와 갯벌을 보고 그곳에서 3년을 보냈다”며 “사람들이 발길을 돌린 죽은 바다, 쓰레기더미가 된 바다에도 생명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버려진 갯벌에서 잠을 자며 시화호의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을 사진에 담았다. 그의 손에서 시화호는 불타는 바다와 반짝이는 보석을 품은 바다로 표현됐다. 시화호를 아름다운 생명의 바다로 본 작가의 시선에 대해 권희돈 교수는 전시 비평글에서 “생태환경이 파괴된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도 다큐멘터리식의 표현방식을 취하지 않고, 환상적인 표현방식을 선택해 그의 예술적 신념을 집약적으로 드러냈다”고 평했다.

지역 민주화현장 사진으로 기록

문명 비판의 의식이 투영된 조 작가의 작품세계의 시작은 1980년대 민중사진을 찍어 온 그의 이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재에 맞서 온몸으로 혹은 펜과 붓으로 저항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고자 한 시기에 조 작가는 카메라를 들었다. 시위현장마다 그가 있었다. 현장 가까이 혹은 한가운데서 그가 붙잡은 순간들은 이후 청주지역 민주화운동의 기록이자 증거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항쟁의 기록자로 그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조 작가는 시화호의 생명력을 그려낸 ‘화엄의 바다’ 전시 이후, 80년대에 자신이 포착한 시간들을 해체하는 시도를 했다. 지난 2007년 민주화운동 20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에 그는 ‘삭적(削迹)’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삭적(削迹)’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어휘로 ‘수레바퀴의 흔적을 지운다’는 뜻이라고 했다. 전투경찰과 청년시위대가 대치하는 사진은 불에 그슬려진 작품으로, 폭력과 항거의 현장들은 분절된 화면으로 걸렸다. 이 전시를 통해 자신의 역사이기도 한 80년대의 시간들을 예술로 재해석하면서 스스로를 넘어서는 계기로 삼은 것으로 보였다.

조 작가는 충북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학창시절부터 민중사진을 찍은 것에는 윤구병·유초하 교수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진짜 철학공부는 90년대 초반 삶의 근원을 찾아 길을 떠나면서 시작됐다”는 그는 20여 년 간 불교철학에서 삶의 근거를 찾았다. 그의 작품세계가 ‘화엄’이나 ‘삭적’과 같은 난해하다고 느껴지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도 그가 오로지 사진을 자신의 표현도구로 삼았기 때문이다. 얼핏 스님인줄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만큼 그는 불교에 심취해 있다.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 공부한다고 하지만 구도자의 모습도 엿보인다.


사진 속 피사체는 ‘삶과 죽음’

그는 청소년기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유난스러운 방황기를 보내고 대학에 들어가 선물로 받은 카메라가 그를 붙잡았다. 사진도 독학으로 배웠다. 무리를 해서 고가의 카메라를 구입하면서까지 사진에 몰입한 것은 렌즈 너머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무엇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독립된 사진갤러리를 찾기 어려운 지역에서 조 작가가 사진예술과 대중의 접점을 찾아 손을 내밀었다. 일스튜디오와 현갤러리. 예술인의 삶이 여전히 녹록치 않은 때에 전업사진작가의 길을 가는 것이 순탄치 않아 보이지만, 그가 10년 만에 ‘화엄의 바다’를 주제로 전시를 열면서 갤러리를 오픈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인 것으로 느껴졌다.

이곳에서 그는 ‘청년 사진학교’를 열 계획이다. “사진예술에 대해 토론하고 실험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조 작가는 자신의 작품 활동에 대한 의지도 새롭게 다졌다. 1년에 6회 이상 개인전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가족사진을 의뢰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생활을 위해 가끔 찍는 가족사진도 최선을 다해 작품사진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말에서 예술인의 생존에 대한 고민이 엿보였다. 한 해를 보내는 때에 ‘삶과 죽음이 둘일 수 없는 화엄의 바다’ 사진전 포스터가 SNS에 올려졌다. 조 작가가 보내는 초대장이자, ‘삭적’과 ‘화엄’을 새겨 넣은 송구영신의 연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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