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김수정
성공회대 NGO대학원 재학

어쩌면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지칭되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이 아티카의 성인 인구 중 80~90%에 해당하는 여성, 노예, 거류민, 그리고 시민의 필수요건인 순수혈통의 조건을 달성하지 못한 이들 모두를 철저히 배제했다니 인민이 통치한다는 민주정의 본질과는 괴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 일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아감벤에서, 바디우, 벤사이드, 브라운, 낭시, 랑시에르, 로스, 지젝까지 대표적인 현대사상가들이 진단하는 민주주의 모순과 역설, 그리고 그 가능성들이 깊은 천착을 바탕으로 설파되고 있다. 플라톤의 국가권력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온갖 석학의 이론을 아우르며 분석되는 민주주의는 일반독자가 읽기에 당연히 쉽지 않다.

그럼에도 평범한 독자인 내가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설렁설렁 넘어가더라도, 어느 부분에선가 답답한 속을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한 부분에서 절실히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웬디 브라운의 “오늘날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자이다…”라는 논문에서 이야기 하는 “민주주의란 말은 누구나,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싣는 텅 빈 기표이다”라는 문장이 주는 절대적 공감이 그렇다.

“민주주의의 (피상적이긴 해도) 가장 중요한 아이콘인 ‘자유’ 선거는 정치자금을 마련하는 스펙터클에서부터 표적 유권자 ‘동원’에 이르기까지 마케팅과 경영의 서커스가 되고 있다. 투표를 전자제품 브랜드 선택과 마찬가지로 보는 세련된 선거 마케팅 전략에 시민들이 놀아나면서, 정치적 삶은 점차 미디어와 광고의 성공으로 환원된다.

민주주의적 원리보다는 브랜드를 홍보하고 기업 미디어를 좌우하는 데 능숙한 홍보 전문가들에 의해 포장되는 것은 후보자만이 아니다. 각 정파의 정책이나 의제 역시 공공재라기보다는 마치 소비재인 양 판매된다. 대학의 정치학과가 경영대학과 경제학과에서 교수진을 끌어와 날로 팽창하듯이, 정부내에 CEO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도 하등 놀랍지 않다”라고 분석하는 선거의 현실은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선거판을 정확히 묘사했다 하더라도 손색이 없다.

▲ 제목: 민주주의는 죽었는가지은이: 조르조 아감벤, 알랭 바디우 등 옮긴이: 김상운, 양창렬, 홍철기출판사: 난장
보고서가 아니라 발제문으로 생각하라

각각의 논문에서는 민주주의의 실체가 낱낱이 해부된다. 누군가는 민주주의의 전복을 꿈꾸기도 한다. 그/녀들의 가차없는 해부는 각양각색이고 때로는 모순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현 상태를 직시하고자 함은 민주주의가 정치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논쟁들의 지지대가 되는 축 노릇을 여전히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프랑스어판 편집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책의 기획자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죽었다고 선언된 민주주의가 사실 무엇인지, 민주주의의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민주주의는 어떤 주체를 만들고 있으며 또 어떤 주체를 기다리는지 등의 물음과 대면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이 ‘보고서’가 아니라 ‘발제문’으로 간주되기를 당부한다.

나는 어느 때부턴가 거대담론이 지겹다. 일상의 곤궁함에 쫓겨 잊고 살기도 하고,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촛불집회에 참석하기도 하나 80년대 민주화에 대한 절실한 만큼 치열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그 외면과 지움의 흔적들은 가끔 정치적 사안에 따라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치솟는다. 분노는 이죽거림으로 표출되고, 냉소로 마무리짓는 게 습관이 되어간다.

만약 당신들 누군가 나와 같은 지병을 앓고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책 속에서 민주주의의 훼손을 만나게 되면 일상의 나는 정말 민주주의자인가 자문해보길 권하고 싶다. 민주의 영역은 정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삶에 있어 스스로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은 민주적 과정을 필연으로 요구한다. 책이 어렵다면 덮어도 좋다.

맘에 드는 소제목을 골라 읽어도 좋다. 지금 이해가 되지 않으면 훗날 언젠가 읽어도 좋다. 가끔 민주주의가 무엇일까 회의가 들거든 그때 다시 빼 읽어도 좋다. 책속의 저자들은 그때마다 죽창같은 날카로움으로 당신의 심장을 후벼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민주주의는 절대 선(善)이다. 그것이 유린되든, 파편화되어 억압의 도구로 사용되든 민주주의라는 명제는 언제나 절대적 신의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내 신앙을 무참하게 찌르고 들어온 죽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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