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자립센터에 최저임금도 안 되는 사업비 지급
자립센터 운영자 “근로기준법 지키려면 파산하고 전과자”

활동보조인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형식상 활동보조인을 고용하는 기관인 장애인자립생활센터도 난색을 표하고 있어 정부차원의 해결책을 마련해야한다는 지적이다.

▲ 도내 장애인자립재활센터들이 정부의 예산 지원 부족으로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활동보조인들에게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사진은 직지장애인자립재활센터에서 중증장애인들이 식사하는 모습.

김 씨가 고용돼 있던 D자립생활센터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위반 사항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에서 해야 될 것들도 잘 알고 있고, 우리가 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만 보건복지부가 책정한 서비스단가를 넘어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센터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주어진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푸념했다.

관계자의 설명은 사실이었다. D센터의 2011년 결산내역을 확인한 결과, 센터는 2011년 활동보조사업으로 보건복지부와 청주시청 등에서 총 12억 7038만 4000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중 활동보조인 급여 및 4대 보험료, 퇴직적립금으로 11억 1607만 8000원을 지출했다.

이 밖에 활동보조연계업무를 하는 사무실 직원 1.5명의 급여와 퇴직적립금, 4대 보험료로 1965만 1000원을 지출했다. 또 사무실임차료, 재세공과금, 장애인차량운영 등 운영비로 3626만 1000원을 지출했고, 장애인자립 홈 체험사업, 김장나눔사업 등 장애인 관련사업으로 8400여만원을 지출했다. 지출과 수입이 거의 같았다. 상근직원 2명의 연봉도 각각 1584만원과 1384만원에 불과했다.

▲ 활동보조인 김 씨를 고용한 장애인자립센터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지 않고 급여를 지급하고, 4대보험 등을 납입할 경우 김 씨 1명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207만 8330원이지만 보건복지부에서 지원하는 비용은 176만 9900원에 불과하다.

센터 관계자는 “이렇게 쥐어짜서 운영하고 있지만, 근로기준법을 다 지키려면 운영비를 제외하고도 연간 4억원 이상의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해명했다.

인근 직지자립생활센터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종일 소장(56세·뇌병변1급)은 “만약 활동보조인들이 근로기준법대로 임금을 지급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한다면, 센터는 파산하고 나는 전과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설계한 부실한 활동보조 서비스 단가로 인해 활동보조인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서게 됐고, 수년간 장애인 인권을 위해 활동한 관계자들이 전과자로 내몰리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시행하는 제도에서 불법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센터 운영진도,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도 보건복지부의 활동보조서비스 단가가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불안정한 고용구조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수가개선·고용형태 변경 ‘대안’

D센터 관계자는 “현재 보건복지부 서비스단가가 기본급 8300원이고 심야시간과 휴일에는 9300원이다. 근로기준법을 적용한다면 심야 혹은 유일에는 50% 가산된 1만 2450원이 되는 것이 상식”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더 심한 것은 충청북도는 무조건 8300원”이라고 지적했다.

활동보조인이 가입한 노동조합인 공공운수노조돌봄지부 김태윤 사무국장도 “현재 단가는 최저임금 4580원을 적용해도 미달되는 금액”이라며 “정부가 앞장서서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모두 “활동보조서비스 단가가 현실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활동보조인이 맘 놓고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고용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저임금도 모자라 일거리가 있을지 없을지 매일같이 불안에 떨어야 하는 직업을 누가 선택하겠냐. 활동보조인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활동보조인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고임금은 아니더라도 고정적인 급여가 보장되는 월급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망사항을 말했다.

돌봄지부 김태윤 사무국장은 “대기업이 1조, 2조 투자해도 일자리는 200~300개 밖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활동보조서비스는 장애이용당사자 2명당 1명의 일자리가 생긴다. 충북에만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9000여명이나 된다”며 “양질의 일자리 문제로 접근해도 사회적으로 손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활동보조인연대와 공공운수노조돌봄지부는 “월급제 전환, 복지부 직접고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편 청주노동인권센터와 충북참여연대사회인권위원회는 활동보조인 노동권 문제와 관련해 본격적인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노동인권센터 김현이 사무차장은 “지금까지 400여명의 활동보조인을 대상으로 노동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마쳤으며, 12월중으로 활동보조인 노동권 개선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파주 장애남매 화재사건…누나 끝내 숨져>

▲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진행된 고 박지우 양 장례식.
10월 29일 파주시에서 부모가 일하러 간 사이에 발생한 화재로 의식불명에 빠졌던 장애인 남매 가운데 누나인 박지우 양이 지난 7일 오후 끝내 숨졌다.

사고 발생 후 국민들이 성금까지 모금하며 남매의 쾌유를 빌었지만 끝내 화마의 벽을 넘지 못했다.
또 지우 양의 남동생(11세)도 11일 담당의사로부터 ‘뇌사판정’을 받아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고 박지우 양의 장례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파주시 장애인 부모회의 주관하에 9일 오전 11시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진행됐다.

이와 관련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성명을 통해 “박지우 양의 죽음은 단순한 화재사고의 사건이 아니라 장애아동을 위한 지역사회 돌봄지원 체계가 부재했기 때문에 발생한 인재(人災)”라며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으로 인해 발생된 사회적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장애인에 대한 지역적, 사회적 돌봄지원 대책을 마련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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