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송 현 (신우기획 대표)

길에서 어린이들을 만나 도서관으로 놀러오라고 하면, 한결같은 대답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만이 아니라 요즘은 초등학교에 갓들어간 어린 꼬마들이 그 모양이다. “왜 시간이 없니?”하고 물으면 답도 똑같다. “학원가야 돼요.”
도서관에 자주 오던 아이들도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얼굴 보기가 힘들어진다. 어쩌다 길에서 만나 물어보면 모두가 학원 가서 시간이 없다고 한다.

요즘은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모두 학원에서 산다.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학원으로 가서 메뚜기처럼 이 학원, 저 학원을 옮겨다니다가 저녁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을 먹고 다시 학원으로 나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어린이들도 많다. 고학년부터 차츰차츰 아래 학년으로 내려오더니 결국 초등학교 대부분 어린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아이를 학원으로 내모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대부분 “학력이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 정말 어린이들의 학력수준은 높아지고 있는가? 이 대목에서는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잘 이해를 못하고 있는 듯하다.

종종 언론에서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내용의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나는 좀 의아스러웠다.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학력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학부모들의 말에 대해 더 이상 답을 못하고 있었던 터이고, 학생들이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는데, 학습능력은 그래도 좀 낳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전 초등학생인 딸아이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육순을 넘긴 노선생님은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높이는 것이 교사로서의 책임이라는 또렷한 소신을 갖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교육만 제대로 받아도 학습목표를 충분히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고 설명하던 선생님은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학원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아이들이 학원을 많이 다니는 것이 아이들의 학습능력향상에는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 대목에서 귀가 쫑긋 섰고, 계속 이야기를 청하였다.

한 어머니가 상담을 하러 왔다고 한다. 아이의 수학실력을 높이기 위해 오래전부터 수학학원을 계속 보내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수학성적이 오르지 않으니 그 고충을 상담하러 온 것이다.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자세히 물어보니 아이는 학원에서 늘 선행학습으로 수학을 배웠고, 6학년인 지금은 학원에서 중학교 과정의 수학을 배우고 있다고 하였다. 선생님은 먼저 학부모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그 아이에게는 중학교 과정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다시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한다.

학교에서 가르쳐보면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의 수학개념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집에서는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학원에 보내 아이를 고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아이들중에 그런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아이의 학습능력 정도를 무시한 채 경쟁에서 앞서야겠다는 학부모의 얄팍한 욕심이 아이를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세계로 내몰은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학교수업시간에도 집중을 못하고, 딴짓을 하다가는 결국 학교공부마저 공염불로 만들어버리게 되고, 아이의 학습능력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웃음을 잃고 어디론가 자꾸 끌려간다. 태엽을 단 인형처럼 자기 생각도 없이 어디론가 쫓겨 다닌다. 왜 가는 지도 모르고 떠밀려서 간다. 골목에는 어린이들이 없다. 놀고 싶어도 함께 놀 친구들이 없어 친구를 찾아 학원으로 간다. 아이들이 모두 학원 교실에 빼곡이 갇혀 있다. 그 속에서 학습능력을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아듣지도 못하는 선행학습으로 미리 공부하고 싶은 의욕을 꺾어버리면서. 5월을 맞으며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다가오는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낼까 한 두 번은 생각할 것이다. 우리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조금만 더 시간을 내고 눈높이를 낮춰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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