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의 편집인

지난 3월 20일. 나무와 풀포기마다 새 생명의 싹을 틔워 내고 있던 남녘 산하는 봄의 문턱에서 생동하고 있었다. 리뷰 직원들도 오랜 기대감에 설레였다. ‘마침내 전국체전 성공개최와 평화통일 기원 마라톤 대회를 북녘 땅 금강산에서 개최하는구나!’

하지만 마라톤 참가자들과 함께 나선 ‘금강산 길’은 생각보다 가깝고도 멀었고, 이질적이어서 충격이었다. 강원도 고성 동해선 남북 출입사무소에 도착한 우리는 되돌아올 때 찾아가는 것이라지만 핸드폰과 특정 배율 이상의 카메라 등을 자진 신고 후 ‘압수’당했다. 이제 전혀 체제가 다른 북쪽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현대아산 버스로 갈아탄 뒤 북쪽 비무장지대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뿌연 흙먼지를 어지럽게 뿜어내며 털털 달리는 버스의 차창 밖으로 펼쳐진 북녘 산하는 우리의 시선을 와락 붙잡았다. 얼마나 보고 싶은, 두 동강난 산하의 잃어버린 반쪽이던가!

하지만 한시간쯤 계속된 금강산 가는 길은 너무 생경해 전혀 다른 시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군사목적의 화공작전 생채기인지, 땔감용으로 남획된 때문인지 거대한 붉은 속살을 드러낸 북의 산하는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로 황량했다.

논이 특히 그랬는데, 관개용 수로 등 기반시설은 물론 흙조차 기름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것이 60∼70년대 가난에 찌든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북녘 동포들의 모습과 꼭 닮았다. 논 한가운데 사방형으로 성글게 엮은 볏짚이 빙 둘러 쳐져 있는 낯선 광경이 나타나자 현대아산 소속 안내조장은 “저게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북한의 경제난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합니다. 저건 영농철을 앞두고 설치한 못자리 판입니다. 남한처럼 비닐이 흔하지 않으니까 바람 한줌이라도 막자고 볏짚으로 벽을 친 겁니다.”

금강산 자락 온정리 마을에서도 남쪽의 60∼70년대 모습이 화석처럼 발견됐다. 지어진 지 오래 돼 빛바랜 회색 기와지붕에 석회빛깔로 감춰진 흙벽의, 판박은 듯 한결같은 모양새의 건물들은 남쪽 사람 시각엔 단일색조의 획일성으로 다가왔다. 그래선지 금강산의 기암괴석 곳곳에 어마어마한 크기로 새겨진 ‘사상도 문화도 기술도 주체의 부름에 따라’ ‘우리 식대로 살자’는 글귀는 피폐한 북한의 산하와 ‘인민’들의 모습과 대비되며 허망하기까지 했다. 다같이 잘살자는 이념과 사상에 기초해 세워진 공산주의 정체(政體)가 정작 인민의 최소한의 삶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역설을 목도한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달 여. 그때의 기억과 잔상이 채 지워지기 전이었던 까닭일 까. TV를 통해 날아든 룡천역 폭발 참사현장의 광경이 너무도 아프게 다가왔다. 특히 사고 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신음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눈을 감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불감당의 통증을 던져줬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남한 사회에서 보수 진보를 불문하고, 정부와 민간부문 할 것 없이 앞다퉈 우리와 똑같은 원형질을 나눠 가진 북녘 동포를 돕기 위한 온정이 밀물처럼 일고 있는 것을 목격하며 오랜만에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고 있다. 우린 이번 일을 통해서 남북간에 공동체 의식을 재확인하는, 천금보다 소중한 가치를 일궈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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