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된 도시, 서울 성미산마을의 아주 특별한 교육․소비
1994년 공동육아로 출발…학교․가게 등 주민참여로 운영

해발 66M. 높은 빌딩과 고층아파트만도 못한 높이의 산 주변에는 ‘마을사람들’이 산다. 이곳 주민들은 출자를 통해 공동으로 육아와 교육, 소비 등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수도 서울에서 ‘마을’이라는 이미지는 쉽게 겹쳐지지 않는다. 마을커뮤니티가 주목받으며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성미산마을은 지도상에는 존재하지는 않는다. 따로 ‘성미산마을’이라는 행정구역이 있는 것도 아니며 특별한 안내표지판도 없다. 성미산마을에서 가까운 지하철 망원역에 내려 마을의 위치를 물으면 알지 못한다고 답하는 사람도 많다.

▲ 성미산마을에 위치한 대안학교 성미산학교는 정부의 지원이 없다. 제재도 없다. 농장학교를 지향하는 성미산학교의 학생들은 강원도 평창으로 200일간 머물려 자연을 배운다.

성미산마을은 마포구 성산1동과 망원동, 연남동, 서교동을 범주로 한다. 자전거도로로 1㎞ 내외 정도다. 이 주변 거주자가 아니어도 멀리 김포시과 노원구에서 이곳까지 와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성산1동 주민이어도 이곳 커뮤니티와 교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성미산마을의 시작은 육아고민에서 출발했다. 그때가 1994년이다. 파편화된 삶, 실종된 공동체로 상징되는 도시 속에서 공동육아로 시작된 커뮤니티가 벌써 18년이 넘은 것이다.

한 지붕 아홉 가족, ‘소행주’와 학교

이들은 공동육아를 통해 나의 아이와 이웃의 아이를 함께 돌보고자 했다. 뜻을 같이 하는 주민들이 나서 돈을 모았다. 나아가 운영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1년 후 공동육아 형태의 어린이집이 하나 더 생겨났다. 2002년에도 2003년에도 하나씩 생겨났다. 현재 전국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어린이집은 50여개, 그 중 4개가 성미산마을에 있다. 이곳 어린이집 아이들은 성미산으로 나들이를 가고 텃밭을 일구며 자연을 배운다. 식단도 유기농식품으로 구성된다. 또 3~7세사이의 아이들을 ‘가족모둠’으로 묶어 이기적이지 않게 자라도록 한다는 것이 성미산을 안내하는 사람의 말이다.

성미산마을에 특별한 빌라가 있다. 지난 해 입주한 소행주가 그것이다.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의 줄임말인 소행주에는 9가족이 산다. 한 지붕 아래 9가족인 셈이다. 이곳 아이들은 내집, 네집 구분 없이 드나들며 살고 있다.

▲ 성미산마을의 어린이집은 공동육아를 목적으로 세워졌다. 그 때가 1994년이다. 이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성미산마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보통 빌라나 아파트의 경우 평수와 구조가 같지만 소행주는 각기 다르다. 건물을 지은 이도 마을주민이다. 마을주민이 시공사가 됐다. 건물을 설계할 당시부터 입주예정자들이 설계에 참여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담아냈다.

2층에는 입주민과 마을주민을 위한 공동공간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곳에서는 반상회가 열리기도 하며 같이 영화를 보거나 술을 나누기도 한다. 또한 방과후학교가 입주해 있어 학교가 끝난 아이들을 맡고 있다. 또한 소행주에는 밀랍으로 초를 만들고 천연비누 등을 생산하는 공방도 입주해있다.

성미산마을에는 성미산학교가 있다. 성미산학교는 대안학교로서 정부의 지원은 없지만 간섭도 없다. 성미산학교에는 현재 12학년 17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교사의 수는 40명에 달한다. 10%정도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인데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성미산학교에는 운동장이 없고 기숙사도 없다. 학교 가운데 중앙정원, ‘중정’이 있어 광장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 옆에는 매점과 유사한 미니샵이 있다. 4학년부터 현금을 통해 물건구입이 가능하고 1~3학년은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 이용이 가능하다.

“대학진학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진로를 선택할 수 있게끔 하고 있어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지키는 학교, 성미산학교는 생태학교를 지향하고 있다. 동시에 농장학교이기도 하다. 이곳 아이들은 학기 중 200일 간 강원도 평창으로 내려가 모내기를 하는 등 농사를 짓는다. 평창의 한 폐교를 마을에서 매입해 아이들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가져갈 수 있는 짐은 옷과 책, 기타정도다. 초기 50일만 머물렀으나 100일을 거쳐, 200일로 늘어났다. 최소한 200일은 돼야 농작물의 생장을 지켜보고 체험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아이들도 부모 곁을 떠나기 싫어하는 하지만 돌아오면 단단해진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이곳 아이들은 입시문제에서 자유롭다.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드물다. 다닌다고 해도 예체능학원의 비중이 높으며 아이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학원은 택견학원이다.
성미산학교의 경우 정부의 지원이 없어 주민들의 내는 돈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학교에 입학하려면 기부금을 내야 한다. 때문에 ‘귀족학교’라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 성미산학교 내 중앙정원의 모습이다. 성미산학교에는 운동장이 없는 대신 중앙정원이 있어 그 기능을 대신한다. 한쪽에는 흙이 놓여져 있고 반대쪽에는 도서관이 위치해있다.

싸움으로 단단해지는 공동체

성미산마을 주민들은 두 번의 싸움을 통해 단단해졌다. 첫 번째 싸움은 지난 2003년에 있었다. 마을의 중심인 성미산이 개발위기에 놓인 것이다. 서울시가 당시 성미산에 배수지를 만들겠다며 나섰고 주민들은 ‘자연숲’을 지키자며 일어섰다. 낮에는 엄마들이 산을 지켰고 밤에는 퇴근한 아빠들이 나왔다. 아이들 역시 이 과정을 함께하며 산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했다. 결국 승리는 주민들의 것이었고 공동체는 단단해지게 됐다.

“성미산이 잘리는 것뿐만 아니라 바로 인접해 있는 공립 성산초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과 위화감도 걱정됐다”
한 번의 싸움은 패배였다. 성미산에는 사유지와 시유지가 섞여있는데 이 사유지에 한 사립재단이 사립초등학교를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산허리가 잘려나갔고 주민들은 이를 지켜보았다. 이 초등학교는 오는 9월 개교를 앞두고 있다.
성미산마을에는 주민들이 출자한 가게들이 많다. 모두들 주민들의 필요에 있어 제안됐고 참여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유기농식품을 판매하는 두레생협과 카페 작은나무, 되살림가게, 성미산밥상 등이 그것. 되살림가게에는 ‘두루’라는 지역화폐가 사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마을극장, 공동주택 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다. 과거에는 주민들이 10명이 모여 차 2대를 구입해 나눠 쓰는 ‘카쉐어링’을 하기도 했으며 마을카센터가 운영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운영의 어려움으로 중단됐다. 또한 합창단과 연극 등 동호회도 조직돼 있다.

사람과 마을의 관계자는 성미산마을 커뮤니티의 힘을 “수평적 구조”를 뽑았다. 자율에 의한 주민참여가 지금껏 마을을 이끌어 온 힘이라는 것. 현재 몇몇 마을사람들이 이제 귀촌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평창에 땅을 사고 귀촌을 준비하고 있는 것. 그곳에서 2번째 ‘성미산마을’이 이뤄질 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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