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매그나칩 노동자 故김진기씨 산재인정을 가를 보고서 ‘요원’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완료 보고서 작성 중, 검토단계 복잡”

지난해 5월 백혈병으로 사망한 故 김진기씨의 죽음이 산재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역학조사가 유족이 산재신청서를 제출한지 10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진행 중에 있다. 지난 4월 청주시 상당구 성안길 주변에서 ‘반도체, 전자산업 사망노동자 산재인정과 건강권 확보를 위한 추모문화제’가 진행될 무렵 매그나칩 작업환경에 대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가 진행된 바 있지만 그 후 3개월이 지난 아직까지 조사는 진행과정에 있는 것이다.

숨진 김씨의 유족은 지난 해 9월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에 산재신청서를 접수한 바 있다. 김씨는 임플란트 공정에서 14년간 장비의 유지보수 일을 했다. 임플란트 공정의 작업환경은 방사선과 함께 비소와 맹독성 가스인 포스틴에 노출된다. 유족에 따르면 이 공정에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지난 2009년까지 마스크조차 지급되지 않는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일을 해왔다.

숨진 김씨는 지난 2008년 갑상선기능저하증이 발병해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2010년 건강검진에서 백혈구 수치의 이상증가가 발견된 바 있다. 이어 같은 해 6월 만성골수단핵구성 백혈병 확진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4월에는 유전자 변이가 진행되는 등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고 골수이식까지 받았지만 끝내 김씨는 사망했다.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에 산재를 신청한 때는 지난 해 9월, 그 후 역학조사에 들어가기까지 약 6개월여가 걸리는 등 그동안의 과정 또한 순탄치는 않았다. 산재신청 당시 대책위 차원에서 유족 측은 “자신들이 추천하는 전문가의 조사 참여를 요구했으나 배제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키이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이종란 노무사는 “유족 측이 추천하는 전문가의 역학조사 참여는 불허된 반면 사측의 자문위원이었던 인사가 현재 역학조사단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실시하는 역학조사의 경우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업주 또는 노동자의 요구가 있을 시 역학 조사에 그 대표자를 입회시킬 수 있다. 이 노무사에 따르면 역학조사단을 꾸리는 과정에서 고용노동부 청주지청이 중재를 했고 이 과정에서 매그나칩이 추천한 인사가 들어가게 됐다는 것이다.

▲ 매그나칩에서 일하다가 지난 5월 사망한 故김진기씨의 유족인 임진숙씨. 임씨는 지난 해 9월 숨진 남편의 산재신청을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에 제출했다. 그 후 근로복지공단의 의뢰를 받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가 진행 중에 있지만 아직까지 결과발표는 이뤄지지 못했다.

현장조사는 벌써 완료

이 노무사는 “아직도 역학조사가 진행되는 지루한 과정에 있다. 역학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인력부족이 조사지연의 이유라고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숨진 김씨뿐만 아니라 반도체 공장에 숨진 이들의 산재판정의 경우 작업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해 근로복지공단이 아닌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역학조사를 담당하고 있다.

이에 유계묵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업병연구센터 연구위원은 “현재 현장조사는 마무리된 상태”라며 “현재 보고서 작성 중에 있으며 관련 문헌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유 전문의원은 “조사단 중 산업의학전문의가 사직해 공석이라 보고서 작성이 늦어졌다. 1개월 이내에 완료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연구원 내 평가위원회의 수정 및 보완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답변했다.

김대성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업병연구센터 차장대우는 “보고서가 완성된다고 해도 전체회의와 분과별 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보고서 1건이 완성된다고 해서 매번 열리는 것이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개최된다. 또한 보고서의 상정기간도 있는 만큼 이번 달 내 전체회의가 열리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매그나칩 현장 역학조사 당시 조사단에 사측 인사가 참여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전했다. 이관계자는 “역학조사를 앞두고 전문가회의를 할 때 사측이 추천한 인사와 유족 측이 참여한 인사가 각각 참여했다”고 밝혔다.

한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보고서가 연구원 내 과정을 거쳐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에 보내진다고 해도 바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근로복지공단 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62명의 소리 없는 죽음에 귀를 기울인다면…
떠나간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사람냄새』,『먼지 없는 방』

넥(Neck)과 무빙(Moving), 런(Run), 베이(Bay)라는 용어를 아는가. 초중등학교 수준의 영어단어의 뜻을 묻는 게 아니다. 반도체산업 종사자가 아니라면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할 것이다. 넥은 다음 공정으로 가기 전 대기상태로 런이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하며, 런은 웨이퍼 25장을 1묶음으로 구성해 놓은 것을 말한다. 또 웨이퍼는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둥그런 판이다. 이렇게 하나의 용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용어 설명이 이어지기도 한다.

또 무빙은 교대근무 조별 웨이퍼 생산량 지수이며 베이는 여사원인 오퍼레이터들이 일하는 작업공간으로 하나의 공정을 진행하기 위한 작은방이라는 뜻이다.

여기 소리 없는 죽음이 있다. 2012년 3월까지 반도체 노동자의 권익 단체인 ‘반올림’에 제보된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수는 155명이고 그 중 62명이 소리 없이 숨져갔다.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등 반도체가 아닌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다 직업병을 얻은 이도 138명에 달하고 있다. 『사람냄새』와 『먼지 없는 방』, 이 책을 본다면 ‘첨단산업’ 반도체공장의 클린룸이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을까.
청주 매그나칩에서 일하다 숨진 故 김진기씨에서 미뤄보듯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다가 백혈병 등 병을 얻은 노동자들이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 또 법원과의 지루하고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하기란 쉽지 않다. 반도체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부산물과 사용하는 약품으로 인해 병을 얻었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해 내는 것은 온전히 노동자의 몫이다. 더욱이 그 대상이 초일류기업 삼성이라면….

지난 5월 출간된 『사람냄새』(보리출판사)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삼성이… 이렇게 큰 회사가, 사람이 몇 사람 죽었다고 서류를 이렇게 가짜로 올릴 것 같아요?” 이 말은 삼성 관계자의 말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 직원의 말이다. 근로복지공단 직원은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인 황상기 씨에게 그렇게 소리친다. 나아가 삼성에 공문을 보내 삼성 측 변호사를 지원을 받는다. 황씨 주변에서도 만류한다.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냐”고.

지난 5월 보리출판사에서 두 권의 책이 출간됐다. 『사람냄새』와 『먼지 없는 방』이 그것. 먼지 없는 방은 故황민웅 씨, 사람냄새는 故황유미 씨의 이야기다. 그리고 남겨진 황민웅 씨의 부인인 정애정 씨, 황유미 씨의 아버지인 황상기 씨의 이야기다. 한편 두 책은 보리출판사가 ‘평화 발자국’이란 이름으로 내고 있는 시리즈중 하나로 기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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