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석은 선거포상금을 받았지만 어머니와의 관계회복에는 실패
지혜엄마의 밥값은 오래 전부터 꾸어 온 꿈의 기회비용이었을까

이 ‘소설’은 한 시민이 목격한 장면을 토대로 쓴 ‘기사’다. ‘선거가 밥을 주는 시대 2’ 이후 2개월 정도가 지난 때늦은 연재다. 소설의 사건은 한 시민의 구술에 근거해 재구성됐고 기자가 방청한 실제 피의자의 재판 이야기가 중심이다. 인물의 대사에는 살을 붙였고 일부 허구의 사건들이 전개된다. 실화에 기초하지만 ‘픽션’이 살을 더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도내 모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에 적발돼 청주지검에 넘어갔다. 소설 속 지혜엄마에게는 벌금형이 구형됐고 현 시점(17일) 기준으로 판결은 나지 않았다. 다시 주지하면 소설 속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이다. <편집자>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실험이 실패한 것이다. 지혜엄마와의 대화가 담긴 녹취파일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홍길동 사무실의 이국장과 통화에서는 그 어떤 진전도 없었다.
한숨만 나왔다. 준석은 ‘합의’를 원했던 것일까. 아니다. 준석은 지혜엄마와의 관계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를 통화를 끝내고 나서야 준석은 알게 됐다.

“바보같은….”
준석은 홍의원실 관계자의 통화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누워버렸다. 시퍼렇게 날이 선 하늘이었다. 하늘은 가을하늘보다도 높고 시푸르렀다.
‘어떻게 봄 하늘이 이렇게 파랗지’하는 감상에 젖어들 무렵 문득 자신이 초라해졌다. 준석은 이국장이 자신을 지역구민에 높인 지지율로 당선된 국회의원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협박해 돈을 뜯으려 하는 인물로 치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숨을 고르며 생각해 보니 ‘협박’을 ‘물음’으로 돈에 관한 문제만 뺀다면 썩 틀린 말도 아니었다. 또 지혜엄마와 홍의원실과의 관계, 그것은 준석이 묻는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것을 말해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7월, 선거가 끝나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준석은 선거포상금을 받았다. 적지 않은 돈이었다. 준석의 기분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엄마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선거포상금도 ‘네 알아서 해라’며 받기를 거부했다. 무엇보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준석의 진술내용을 엄마가 알게 된 후 이들 모자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당신 아들이 다 이야기했다. 인정하시라’
이 말에 앞에서 준석엄마는 다리에 힘이 빠져버렸다. 의자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아마 주저앉아버렸을 것이다. 준석엄마는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준석도 힘이 빠져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선관위에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힘도 준석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서현엄마도 조사를 받았다. 지혜엄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지혜엄마였다. 음식 값을 결제하고 사람을 모은 사람이 그이였기 때문이다. 조사과정에서 지혜엄마는 준석이 참석한 식사이외에도 다른 2건의 식사제공 혐의가 추가됐다. 이 또한 능력일지 모른다.

오랫동안 학원강사를 한 지혜엄마는 아는 사람이 많았다. 재경엄마, 보미엄마, 현아엄마, 효성엄마 등등 오랫동안 봐왔지만 정작 이름은 모르는, 자식의 이름을 통해 누군지 알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그 지인들은 지혜엄마의 힘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수 있는 힘이었다. 끼니때마다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그것도 다른 사람들로 식당을 채울 수 있는 평범치만은 않은 능력을 가진 게 지혜엄마였다.
지혜엄마는 그 힘을 지키고자 했다. 선관위의 조사에 앞서 준석엄마와 서현엄마에게도 일러두었다. ‘모든 것은 자신이 했다’것을 주지시켰다. 실제로도 그랬지만 그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했다. 또 도리로도 그래야했다.

자발적. 조사과정에서 지혜엄마는 ‘자발적’으로 식사제공을 했다고 말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홍길동 의원을 돕기 위해 나섰다는 것이다. 그것은 변명이 아니었다. 자발적 선택이었다.
선거가 시작되기 전부터 지혜엄마의 계산은 끝나있었다. 선거가 처음도 아니고 장사도 처음이 아니었다. 그깟 밥값이 문제가 아니었다. 장사꾼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기 마련이다. 지혜엄마의 가슴 속에는 10년 전부터 키워온 꿈이 있었다.

2012년 7월 XX일.
준석은 법원에 왔다. 지혜엄마가 재판 받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었다. 청주지법 대법정에는 오전부터 이런저런 재판들이 진행 중이었다.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판사와는 다르게 밑의 풍경은 바쁘게 움직였다. 방청 온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재판이 시작되고 끝나고 사람이 나가고 들어오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 속에서 지혜엄마는 미동이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준석도 그런 지혜엄마에게 눈길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심드렁하게 재판을 지켜봤다.

“한정자 씨.”
지혜엄마의 이름이 불렸다. 그의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재판은 시작되었고 준석은 고쳐 앉았다. 지혜엄마는 본적지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지혜엄마는 자신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했다. 다만 다른 이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 했다. 금방 끝이 날 재판이었다.

“한정자 씨, 정당에 가입한 사실이 있습니까.”
판사가 지혜엄마에게 물었다.
“네. 있습니다.”
“혹시 정치에 뜻이 있으신가요.”
“네. 있습니다.”

뻔한 재판이 다른 일로 재미있어졌다. 지혜엄마의 답변이 이어졌다.
“10년 전부터 봉사활동을 하면서 꿈을 키워왔습니다. 또한 서원2동의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주민들에게 보다 이익이 되는 일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청주시의회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간 해왔습니다.”

준석은 적지 않게 놀랐다. 무언가 의문이 풀리는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었다. 고민은 다시 시작됐다.
자발적으로 낸 밥값은 결국 지혜엄마의 계산이 바탕이 된 걸까. 사전에 교감이 있던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지혜엄마에게 밥값은 투자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 꿈을 홍 의원실은 알았을까.
“아, 그러세요.”

판사도 잠시 흥미로운 듯 지혜엄마를 쳐다보다 이내 눈길을 거두었다.
검사는 지혜엄마에게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벌금 300만원은 밥값보다 약할까. 판사는 다음 재판일정을 1주일 후에 있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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