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반도체산업 직업병 문제 폭발 도화선 될까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 진위 논쟁으로 종결 우려

SK하이닉스로부터 반도체 장비의 ‘세정업무’를 도급받아 운영하는 에이스세미콘에 지난 5월부터 약 한 달간 근무했던 박모씨. 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에 따르면 박씨는 평소에 건강했던 자신이 회사에서 근무한 지 한 달 만에 온몸에 붉은 발진이 일어나는 피부병이 발생해 더 큰 병이 생길까 두려워 일을 그만두었다.

입사한지 1주일 후부터 속이 메스껍고 구토와 어지럼증이 시작되었다. 그 다음 주에는 온 몸이 가렵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려운 면적이 커졌고 온 몸에 발진이 퍼지기 시작했다. 진료를 받은 결과 ‘중독성 피부발진’이란 진단을 받았다며 청주노동인권센터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 피해자 박씨는 일을 시작한 후 온 몸에 발진이 퍼지기 시작했고 진료를 받은 결과 ‘중독성 피부발진’이란 진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지난 달 20일 근로복지공단 청주지사를 상대로 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급여및 휴업급여’를 접수했다. 박씨가 청주시 우암동 소재 모의원에서 발급받은 진단서 병명에는 ‘중독성 피부발진’과 ‘상세불명의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으로 기재되어 있다.

조노무사는 “박씨가 입사한 지난 5월 5일부터 퇴사한 6월 10일까지 박씨 자신이 담당한 작업은 반도체장비를 세정하는 작업이었으며 자신을 포함한 ‘54명의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세장작업을 하기 위해 배관을 뜯고 세척을 했는데 작업 할 때마다 역한 냄새들을 맡았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또 보호구는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 마스크를 착용한 것이 전부였고, 작업장 한편에 진열된 다른 안전장구에 대한 사용법도, 사용교육과 사용지시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 특히 “안전교육과 같은 절차는 일체 없었다”고 조 노무사는 전했다.

“안전교육은 고사하고, SK하이닉스의 관계자나 사내하청업체의 책임자 어느 누구도 세정실 안으로 들어와 안전점검을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누구 말이 진실인가

지난 9일 청주노동인권센터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이하 반올림)은 “위험천만한 반도체 작업환경에서 일하다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인정하고,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 대한 조사를 즉각 실시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조 노무사는 “박씨의 주장이 구체적이고 이와 유사한 병력이 없는 상태였다”며 박씨가 진술한 바에 따르면 ‘인체에 치명적인 여러 화학물질, 즉 포르핀, 아르신, 보론과 같은 독가스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작업환경, 세정작업 과정중의 불산과 같은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작업환경’을 감안하면 “다른 발병원인을 찾을수 없는 명백한 산업재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회사 측의 입장은 명쾌하다. 지난 16일 김종태 SK하이닉스 청주총무팀장과 박종화 에이스세미콘 소장은 “박씨는 교육생 신분이다. 2주간은 사무실 등지에서 이론교육만을 진행했고, 작업장을 관찰하는 기간이었다. 우리 현장에서는 3개월 교육과정을 마치고 자체 시험에 합격해야 비로소 직접 작업공정에 투입되는 구조다”라고 박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한마디로 박씨는 ‘세정작업공정’에 투입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입사 1개월도 안된 사람을 작업장에 투입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조그만 장비하나가 기본 1000만원에서 3000만원 이상의 제품들이다. 고가의 장비를 미숙련자가 맡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장비를 분해 하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에서 12개월 정도의 숙련도를 필요로 한다. 입사 1개월이면 장비와 약품의 명칭조차도 모르는 상황이다”는 것이다. 즉 박씨의 주장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조 노무사는 “회사 측의 주장을 이해할수 없다”고 반박한다. 조노무사는 근거로 박씨가 재해발생경위서를 작성할 때 “작업공정을 아주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직접 작업을 하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진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팀장과 박소장은 이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이쪽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반올림’과 청주노동인권센터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서면을 대리 작성하는 과정에서 박씨의 진술을 유도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박소장은 “작업장 안내, OTL 교육과정에서 세정실에 출입한 사실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스핀, 아르신, 보론’과 같은 물질은 ‘IMPLANT Area’에서 사용되는 부분으로 업무장소가 박씨와 상관없으므로 이것 또한 거짓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회사 측의 주장은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치명적인 유해성분인 포르핀, 아르신, 보론과 같은 물질이 사용된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여러 위험요인들이 있지만, 직접노출, 간접노출 둘 다 매우 중요하다”며, “회사 측의 주장처럼 박씨가 실제로 작업을 하지 않았다하더라도 출입자체만으로 업무상 재해의 연관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이렇게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박씨와 회사, 둘 중의 하나는 무조건 거짓말을 하는 형국으로 상황이 흘렀다. 이종란 노무사의 주장처럼 ‘실제 세정작업을 수행했는가’는 이 사안의 본질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주장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상황에서 ‘누가 과연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가 문제가 되어버렸다.

과연 24세의 청년의 주장과 국내굴지의 거대기업 SK하이닉스와 하청업체의 주장 중 어떤 것이 진실일까. 진실은 분명히 있다. 박씨가 근무했던 ‘세정룸’에는 2대의 CCTV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산업보안을 철통으로 알고, 10여 곳의 보안시스템을 통과해야만 접근할 수 있는 세정룸. CCTV 녹화필름은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한편 피해자 박씨는 기자의 취재를 위한 7월 15일과 16일, 17일, 이 세 번의 ‘취재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불가피하게 박씨의 법률대리인인 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의 의견을 대신 들었다.

이 와중에 17일 오전과 오후 피해자 박씨와 박종화 에이스세미콘 소장이 만남이 이루어졌다. 둘의 대화결과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박소장은 “회사의 주장에 박씨가 일부 인정했지만 산재건과 관련해서는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 시간 뒤 박소장은 “박씨가 자신의 오해로 이번 산재신청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모든 사안을 종료하기로 했다”는 합의사실을 전해왔다. ‘금전적 합의가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과연 ‘작업공정에 참여했는지의 여부’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에 대해 어떤 오해가 있었을까. 거짓말 공방에, 이해되지 않는 마무리, 의문만 더해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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