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 무산에도 4번 추진하는 명분은 오직 ‘당위성’

“3번의 무산은 ‘청원을 흡수한다’는 정복적 마인드를 교정하는 성찰의 시간이자 부작용을 예방하고 준비하는 시간”

“무엇보다도 청주청원통합의 유효기간은 ‘될 때까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번에는 꼭 통합에 성공해야 하는 명분”

사진으로 본 청주·청원 통합사
(사진=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손잡은 통합…멱살 잡힌 통합
민선5기 충북지사와 청주시장, 청원군수는 선거당시부터 합의한 시·군통합을 추진하겠다며 함께 손을 잡았다. 그러나 2005년 주민투표 당시의 주민반목은 몸싸움이 벌어질 정도로 극심했다. 여러모로 여건은 무르익었다. 이같은 반목은 이번 통합 추진과정에서도 드러났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크게 희석됐다.



정치와 통합… 그때 그 사람들
단체장들의 운명도 통합을 놓고 엇갈렸다. 왼쪽 사진의 오효진(우) 청원군수는 2005년 통합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서 한대수(좌) 청주시장과 손잡았았으나 통합에도, 재선에도 실패했다. 김재욱 전 군수는 청원시를 홍보한다며 주민들을 관광 보냈다가 충청리뷰에 찍힌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중도하차했다.


지역 간 갈등… 세대 간 대립
그동안의 갈등은 오히려 성숙의 과정이 될 것이다. 청원군 지역 내에서도 오창과 오송, 미원과 낭성 등 지역으로 갈렸고, 세대 간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특정지역이 낙후되는 문제는 청원군으로 남을 때 더욱 심각할 수 있다. 통합시가 오히려 청원 동부지역 균형발전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3은 한국인이 좋아하고 중히 여기면서도 극복해야 할 숫자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은 풍백·우사·운사 등 3명의 신하와 함께 천부인 3개를 받아서 3000명을 거느리고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일 360가지를 다스렸다. 곰이 웅녀로 변하는데도 7일이 3번, 즉 삼칠일이 걸렸다. 만세도 삼창이고, 내기도 삼세판이다. 이에 반해 극복해야할 숫자라는 의미는 최소한 3번은 해봐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3번 했으면 할 만큼 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청주·청원통합을 위한 시도도 할 만큼은 했다. 1차로 통합을 추진한 것은 1994년 정부 주도로, 세대주의 의견을 물었다. 청주시는 찬성이 많았지만 청원군은 찬성 34.3%, 반대 65.7%로 반대가 많았다. 도내에서 충주시와 중원군, 제천시와 제원군이 이때 통합되는 등 전국적으로 도농통합이 이뤄졌지만 청주와 청원, 전주와 완주는 무산됐다.

2차는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2005년이다. 도넛, 또는 계란프라이로 비유하는 환형구조로 인해 이미 생활권 통합이 이뤄진 상황에서 행정통합만 남았다는 여론에 의해 주민투표가 실시됐지만 청원지역의 표심은 찬성 46.5%, 반대 53.5%였다.

2009년의 삼세번은 정부가 주도하는 자율통합 지원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가 통합 인센티브라는 ‘당근’을 제시하며 절차도 청주시의회와 청원군의회, 충북도의회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으로 간소화했다. 그러나 결과는 지역 간의 정치적 반목을 확인하는 것일 뿐 지역민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청주시의회가 만장일치로 통합을 찬성한 반면 청원군의회는 전원 반대의견을 냈다. 도의회는 찬성이 22명으로 반대 8명보다 많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통합은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충북지사와 양 지역 시장·군수 후보 대부분이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후보 시절부터 통합 추진을 약속하며 동반 기자회견을 가졌던 민주당 후보 3인이 당선됐다.

이번에 무산돼도 또 추진될 통합

청주와 청원은 충북도와 함께 실무협의체를 꾸렸고, 인사교류에 나섰다. 공동연구용역을 실시했고 통합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들이 선정돼 하나 둘 시행에 들어갔다. 시내버스요금의 구간할증을 폐지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6월27일은 청원군 지역만을 대상으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날이다. 일각에서는 통합에 조직적으로 반대하며 ‘투표장에 가지말자’는 선동이 이뤄지고 있다. 투표당일이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은 만큼 ‘기준투표율 33.3%에 미달시켜 아예 뚜껑을 열지 못하도록 하자’는 전술이다. 청원군민의 22%가 청주로 통근·통학한다는 통계는 통합의 당위성을 보여주면서도 기준투표율의 벽이 높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수치다.

3번이나 무산됐던 것을 다시 추진한다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끌어당김이 있다는 것이다. 청주라는 지명이 처음 탄생한 것은 고려시대(940년)부터다. 청주목, 청주군, 청주면, 청주읍에 이르기까지 청주와 청원은 하나였다. 분리는 1946년 미군정법령에 의해 청주부와 청원군이 설치된데 따른 것이다. 앞서 언급한데로 ‘도넛형’이다 보니 공동의 생활문화권을 유지해 왔다.

삼세번 무산됐던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2009년 정부의 자율통합 지원계획에 따라 행안부가 주기로 했던 파격적인 인센티브는 어차피 ‘놓친 고기’다. 당시 행안부는 통합시에 2500억원의 인센티브와 4개 구청 청원 설치, 의원 동수 구성 등을 약속했었다.

그때 손 안에 들어왔던 고기가 자꾸 생각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3번의 무산은 ‘청원을 흡수한다’는 정복적인 마인드를 교정하는 성찰의 시간이자 통합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고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통합은 성장잠재력을 배가시킨다. 중복투자와 개발로 인한 낭비는 해소되고 효율성을 향상될 것이다. 대전에서 세종시, 통합시, 천안권은 하나의 발전축이 될 것이다.

공은 청원군민 앞으로 굴러갔다. 27일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무산된다해도 통합은 또 추진될 것이다. 청주청원통합의 유효기간은 ‘될 때까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번에 꼭 통합해야 하는 명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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