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숙 씨, 무거운 질통을 벗고 약사보살이 되다
삼충상회 박만영 씨, 마을안내자로 역사 들려줘

수동의 빛과 그림자
11년 전 사진 속 주인공들은

모세혈관처럼 굽이굽이 이어지던 수동의 골목길은 이제 뚝뚝 흐름이 끊어졌다. 두 사람만 함께 걸어도 가득 찼던 골목길에는 대형차들이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닦였다. 비행기를 타고 온 해외관광객들은 청주에서 이 동네를 가장 먼저 찾는다.

피란민촌의 흔적과 역사를 간직한 이 곳 달동네가 한류관광지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2008년 충북민예총이 골목길의 숨은 가치를 발견하고 예술가들이 담벼락에 벽화를 그린 게 첫 사건의 시작이었다. 70년대 풍경을 안고 있는 이곳이 한류 관광지가 된 데는 몇 편의 드라마 덕분(?)이었다.

2008년 벽화프로젝트 이후 2009년 드라마 카인과 아벨, 2010년 제빵왕 김탁구, 2011년 영광의 재인이 촬영됐다. 이제 청주시는 수동 표충사 인근 7170㎡에 62억7512만원을 들여 한옥 17동을 건립할 예정이다. 수동에 한옥마을이 건설되는 것이다. 충청리뷰는 2001년 당시 본보 육성준 기자가 촬영한 주인공들을 찾아 수동의 살아있는 역사를 들어봤다. 사진 속 주인공들 가운데는 안타깝게도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치매에 걸려 행적이 묘연한 이들도 있었다. /편집자 주

▲ 수암골이 관광지가 되면서 달동네 수동의 지도가 바뀌었다. 사진/육성준 기자

“친구 집에 안 쓰는 텔레비전 있다고 해서 이고 오던 길이였지.” 수동 수암골에 살고 있는 장인숙(71)씨는 11년 전 자신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보고 얼굴이 환해졌다. 그날 공사장 일이 일찍 끝나서 텔레비전을 갖고 왔다고. 지금 그 때의 텔레비전은 없다. 얼마 있다 바로 고장 났다. 안방에는 30인치 텔레비전이 놓여있다. 이것도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다.

그는 8년 동안 짊어진 질통을 벗고 약사보살이 돼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살기 힘들었지. 지금은 좀 나아졌어. 우리 할아버지(성관도사) 때문에 그냥 저냥 살아. 그래도 할아버지가 고맙지. 늙어서 질통 지기 힘들잖아.” 고집이 세서 버티다 신을 뒤늦게 받았다고 한다. 어느 날 눈이 어두워져서 그 길로 보살이 됐다고. 그렇다고 손님이 많은 건 아니다. 수암골 관광객들이 자주 점을 치냐고 묻자 “아니”라고 짧게 말했다. “사람들 많이 오는 거랑 우리들은 아무 상관없어. 동네 사람들 점이나 쳐 주고 그래. 그런데 요즘은 다 살기가 힘드니까 점 보러 못 오는 거 같아.”

▲ 낡은 텔레비전을 머리에 이고 갔던 장인숙씨는 약사보살이 됐다. 사진/육성준 기자

23살 전남 고흥에서 시집을 와 한 번도 수동을 떠나지 못했다. 남편은 한량이었다고. 생계는 오롯이 장 할머니 몫이었다.

그는 “여기 살기 참 좋은 동네였어. 동네사람들은 먹을 거 있으면 죄다 나눠먹고, 시내는 문 못 잠그면 못 다니잖아. 여기는 안 그래. 관광지가 돼 발전이 되면 좋긴 한데…”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실 온 전유삼(63)씨는 “뭐가 살기 좋아. 밤에 구두 다닥다닥 소리 때문에 시끄럽고, 돈 많은 서울 사람들 오면 인심만 고약해지지. 토박이 사람들이 인심이 좋지. 이제 동네 사람들이 장사를 하게 되니까 커피 한잔도 맘 놓고 못 마셔. 장사하는 집에서 막 먹을 수 있나. 눈치 봐야지”라며 말을 가로챘다.

심지어 수암골과 우암동 경계에 있는 영산홍 얘기를 꺼낸다. 전씨는 “영산홍을 우암동에 심었는지 수동에서 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암골 영산홍은 활짝 피었고, 우암동 경계에 있는 영산홍은 물을 안줘 다 말라 죽었어”라고 말했다. 수암골만 신경 쓰는 청주시를 꼬집듯 그는 영산홍이 불쌍하다고 했다. 그는 인근에 한옥마을이 조성되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전씨는 “3년전쯤 수동 사람들은 평당 70만원을 주고 서둘러 땅을 샀지. 남의 땅 살던 사람들은 나갔고, 당시 제 집이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땅을 샀어”라고 회고했다. 그래도 “집값과 땅 값이 좀 오르지 않았느냐”고 묻자 “우리는 그런 것 모른다”고 말했다. 전씨는 “저 사람들은 땅 투기꾼들이라 그런 가 본데 우리는 여기가 살집인데 뭔 상관이 있어”라고 푸념했다.

화장실 확충, 몇 년 째 답 없어

삼충상회 주인인 박만영(77)씨는 누구보다 마을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수암골번영회장이자 수암골 초입에 가게를 운영하면서 한류관광객들을 제일 먼저 맞이하고, 동네 사람들의 입장을 시에 대변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청주시가 마을안내도우미로 지정한 4명 가운데 한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 수암골 터줏대감인 박만영씨는 관광지인만큼 편의시설이 확충돼야 한다고 했다. 사진/육성준 기자

11년 전 사진에서 박씨는 삼충상회 창고에서 꺼낸 긴 톱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정작 그는 무섭게 나왔다며 이 사진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젊은 시절 벌목으로 돈을 벌었던 그는 “대한민국 가로수는 다 내가 벴지”라고 농을 쳤다.

수암골에 산지는 37년째다. 마을이 관광지가 된 것에 대해 그는 “관광지가 아니라 우범지대가 돼버렸어. 관광객들이 밤에 소란스럽고, 술 먹고 싸우는 사람이 많아”라고 답했다.

또 공중화장실이 한군데 있지만 부족해 3~4년 전부터 화장실 설치를 시에 건의했지만 아직까지 해결이 되지 않는 것도 답답하다. “우리들은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화장실도 관광객 위해 만들어 달라는 것이지. 드라마 찍어서 동네가 발전하는 것도 고맙고 좋아. 늙은이들만 있는 동네에 젊은 사람들 오는 것도 반갑고, 그런데 관광지라면 뭔가 편의시설을 만들어놓아야 하는 것 아냐.”

그는 평일에는 100~200명, 주말에는 400~500명이 온다고 했다. 외국인은 중국인, 일본인, 대만인 순으로 많다고. 하지만 주차장도 비좁고, 쉴 수 있는 큰 공원도 없다는 게 안타깝다.

인근에 한옥마을이 조성되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에둘러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 동네에 부자들이 들어오면 가난한 사람들이 치여. 없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끼리 살아야 편해. 이 동네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수암골 번영회는 독립법인으로 현재 생활문화공동체 ‘마실’을 운영하면서 빼지를 비롯한 관광상품과 파전, 막걸리, 국수 등 먹을거리를 팔고 있다. 부녀회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장사가 시원치 않다. 인근에 커피숍, 식당 등이 속속 생기고 있어 경쟁력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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