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 (露店商):길가나 길바닥에 물건을 벌여 놓고 파는 소규모의 장사. 또는 그런 장사를 하는 사람.

▲ 정월 대보름을 사흘여 앞둔 지난 3일 생계형 노점이 들어선 청주 용암1동 상가지역 은행거리를 찾았다. 손수 뜯어 말린 묵나물을 삶아 노점을 펼친 한 할머니가 취재진에게 건넨 말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장사 못하게 그러시나...나는 오늘 처음 나온거에요." 한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에 풀칠이나 해보겠다고 나온 그들의 알상을 들여다 본다.

▣청주용암1동 상가지역 생계형 노점 탐방

무더위 한파와 싸워 하루 손에 쥐는 돈 2~3만원
동상·혈압·당뇨까지…약값 제하면 남는것 없어
 

토목시장이라 비판받던 민선4기 남상우 청주시장이 재임시절 잘 한 일이라고 칭찬 받았던 일 중에 하나는 바로 생계형 노점상 단속을 삼가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가 좋지 않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계형 노점 보다는 기업형 노점 단속에 치중하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 같은 생계형 노점거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이 있다. 지난 1995년 택지개발로 조성된 청주시 상당구 용암1동 일명 ‘은행거리’이다. 은행거리는 용암1동 농협 사거리에서 망골공원(SSM 홈플러스)까지 100여m 정도 되는 큰 도로변이다.

큰 도로를 사이로 수년째 살기 좋은 아파트로 선정되어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던 현대 아파트를 비롯한 아파트들이 밀집되어 있다. 노점이 늘어선 인도를 경계로 용암1동 상가지역이라고 불리는 미관광장은 술집과 모텔이 즐비해 청주에서 가경동(하복대)과 봉명동에 이어 3대 유흥지역으로 꼽히기도 한다. 특이할 점은 농협을 비롯해 신협,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웬만한 은행들이 모두 들어 서 있어 청주 용암동의 일명 '은행거리'로 통하기도 한다.

바로 이 은행거리에 늘어 선 생계형 노점을 한파가 몰아친 지난 2일과 3일 찾았다. 아침 최저기온 영하 15℃ 안팎을 오르내리던 이날은 한파 때문이지 아직 펼치지 않은 노점이 여러 곳 눈에 띄었다. 늦어도 오전 9시30분이면 노점을 펼치고 밤 10시는 되어야 철수를 한다는 곳이지만 추위에 오가는 손님도 없고 버텨낼 재간이 없어 열지 못한 것이다. 평소 야채를 파는 뜨내기 노점 할머니들까지 합쳐 40여개의 노점을 자랑하던 곳이 한파에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20여개 안팎이 문을 열었다.

적당히 날씨가 추워야 장사가 잘 된다는 떡볶이, 어묵집도 일부 문을 닫았으니 말 다한 것이다. 이곳에 노점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인근 아파트촌에 사는 주부들이 은행 일을 보러 왔다가 가볍게 시장을 봐 가면서 조성됐다. 그래서 은행 문이 닫히는 주말보다 평일에 더 장사가 잘된다. 주말은 가족단위로 차를 끌고 대형마트로 가기 때문에 노점 장사가 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요즘처럼 날씨가 너무 춥거나 더워도 오가는 사람들이 적어 장사가 잘 안 된다.

경기도 이천에서 공기 중에 수증기가 얼어붙는 ‘얼음침’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던 3일에는 정월 대보름을 사흘 여 앞둬서인지 평소보다 많은 노점이 나왔다. 발에 동상이 걸려 보름 만에 노점을 펼쳤다는 생선 장수부터 평소 생선을 팔다가 보름을 앞두고 품목을 바꿔 직접 기르고 뜯어 준비한 묵나물을 파는 아주머니까지. 대목을 놓칠 수 없어 한파도 아랑곳 하지 않고 화롯불에 손을 녹여가며 노점을 펼친 것이다. 추위와 싸우고 하루 벌어 손에 쥐는 돈은 2∼3만원이 고작, 장사가 잘 돼야 7∼12만원을 벌 수 있다.

일정치 않은 수입에 입에 풀칠하기 힘들고 자녀들은 모두 학자금 대출로 공부를 시키고 있다. 학자금도 졸업 후 상환제이기 때문에 빚을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겨울엔 추위와 싸우고 여름에 더위와 싸워야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추위도 더위도 아닌 청주시의 단속이었다. “이른 아침 경찰 순찰차 사이렌 소리만 들려도 단속이 나온 줄 알고 기겁을 한다. 늘 불안한 마음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2∼3000원짜리 양말 사려다가 주정차 위반으로 4만원짜리 범칙금 납부서라도 끊게 되면 손님에게 미안하고 장사가 되겠나.”

생계형 노점상치고 사연 없는 사람 없다더니 추위마저 녹일 정도로 눈물을 훔치며 털어 놓는 사연이 가슴을 적신다. 남편이 두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희귀병에 걸려 수술 후 누워 있거나 뇌경색으로 쓰러져 방구들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까지. 심지어 노점상들 스스로가 손가락 류마티스 관절염부터 동상, 혈압, 당뇨 등 온갖 직업병을 앓고 있다. 그래서 요즘 같은 한파에 장사가 안 되면 물건 값 제하고 하루 2∼3만원으로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산다. 노점상들은 '약값 내고 벌금내면 정말 남는 것이 없다'고 한다.

청주 용암1동 상가지역 노점상 연합회 김우미(54·양말의류 판매상) 회장은 "인천이나 청주 성안길처럼 생계형 노점들이 합법적으로 장사 할 수 있는 노점거리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며 "IMF나 경기불황으로 회사가 부도나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가게 문 닫고 거리로 나 앉은 우리 생계형 노점상들에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 2∼3만원 손에 쥐어 겨우 입에 풀칠하는데 약값에 벌금까지 내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연없는 생계형 노점 없다더니…

"회사부도 후 나이 많아 취업도 안돼"
양말 노점상 최한규씨 '당뇨·혈압 아내 걱정'

최동석 소아과 앞에서 양말을 팔고 있는 최한규(56··상당구 용암동)씨는 매일 아침(오전) 9시30분이면 노점을 펼치고 밤 10시가 되어야 장사를 접는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 장사가 안 될 때는 물건 값 제하고 손에 쥐는 돈이 고작 3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인근에 SSM마트가 들어서면서 장사가 더 안 된다고 한다. 예전에 많이 팔면 10만원까지도 팔았지만 이제 7만원도 벌기 힘들다. 그래서 남매 모두 학자금 대출로 공부를 시키고 있다. 졸업 후 상환제라 아이들에게 빚을 떠 안긴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하루 벌어 입에 풀칠하는 신세에 요 며칠 추워 가게 문을 열지 못하면서 생활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는 혈압과 당뇨로 고생하는 아내가 노점 일을 돕겠다며 나와 있는 것을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엘리베이터(승강기) 업체에 다니다 지난 97년 IMF가 찾아온 해에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실직자가 됐다. 이후 취업을 해 보려 했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써주는데가 없었다. 그래서 이듬해인 98년부터 노점을 시작했다. 잠시 점포를 얻어 장사도 해 봤지만 가게 임대료에 전기세 감당이 안돼 결국 보증금을 잃고 길거리로 나왔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남편대신 생활전선으로..."
과일 노점상 장정순씨 '생계형 노점 봐줬으면'

큰사랑 약국 앞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장정순(56·여·상당구 방서동)씨. 그는 청주 상당고 앞에서 영양탕집을 운영하다가 IMF로 장사가 안 돼 보증금까지 잃고 노점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경기도 좋지 않은데다 영양탕 뷔페집이 난립을 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고 한다. 지난 97년부터 신한은행 앞에서 호두빵을 팔다가 2년 전에 큰사랑 약국 앞 과일 노점을 인수해 과일을 팔고 있다. 전 과일 노점상은 장사가 안 돼 아내에게 맡기고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조차 건강이 좋지 않아 자신에게 과일 노점을 인계했다는 것이다. 장 씨의 남편은 6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이후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보험이라고는 건강보험 하나 들었을 정도로 하루살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잘 벌리면 하루 8만원, 기껏해야 3만원 손에 쥐는 날이 부지기수하다. 학자금 대출로 키운 아들은 결혼까지 해서 잘 사나 싶었는데 며느리가 산후우울증으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어린 딸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 요즘엔 아들 부녀까지 그의 신세를 지고 있어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그는 "청주시가 생계형 노점은 좀 봐 줬으면 한다"며 "임대료를 안 내는 대신 한 번 걸리면 20만원 안팎의 벌금을 내야 하는 신세다"고 전했다.

"눈·비 오면 못하고… 동상에 관절까지"
생선·동태·묵나물 파는 조동심씨 가슴적신 사연

올해로 13년째 신협 앞에서 겨울이면 생선, 여름이면 토마토를 팔고 있는 조동심(48·여·상당구 용암동)씨. 그는 얼마 전 자궁을 드러내는 큰 수술을 했다. 노점으로 아들 형제를 훌륭하게 키워낸 그는 늘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노점으로 학비를 보태기는 했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얼마 전 다리 수술을 받은 큰 아들은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 생활했다. 얼마 전에는 용암동에 여엿한 합기도장을 차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바르게 자라 어머니의 자랑이 됐다. 둘째 아들도 여전히 아르바이트로 대학 공부를 하고 있다. 자신의 앞가림을 해 가는 자식들 얘기를 하면서 조 씨는 참았던 눈물을 끝내 흘리고 말았다. 조 씨의 남편은 17년 전 뼈가 썩어 들어가는 희귀병으로 큰 수술을 받았다. 쇠를 박고 인공뼈로 고정하는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조 씨는 실질적인 한 집의 가장이 되어 아들 형제와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 왔다. 그의 소원도 여전히 마음 놓고 장사를 할 수 있는 생계형 노점 거리가 길가에 생기길 바라고 있었다. 조 씨는 "은행 일을 보러 온 주부들에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시장을 볼 수 있는 기회뿐만 아니라 상가지역에 손님들을 유인하는 역할을 우리가 하고 있다. 불경기에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 수 있도록 시가 도와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은행일 보다 시장봐 편리"
용암동 주민 가정주부 김경섭씨 노점 예찬론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에 사는 가정주부 김경섭(53)씨. 그는 평일 오후에 은행 일을 보러 나올 때면 간혹 노점상을 이용한다. 그날 떠온 물건을 판매하기 때문에 신선한데다 대형마트 못지않게 가격 또한 저렴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이들 양말부터 물 좋은 생선이나 야채, 묵나물까지 웬만한 것은 다 살 수 있는데다 출출할 때에는 떡볶이에 순대까지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세금을 내는 인근 점포들과의 형평성 문제라든지 인도를 왕래하는 불편함, 위생·교통체증 등을 이유로 노점상을 단속하는지 모르겠는데 청주 성안길만 가도 합법적인 노점상 유도구역이 있는 것처럼 필요악이라면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생계형 노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며 "위생이 문제라면 여기서 사다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직 탈났다는 소식을 접한 바 없고 도로변 불법 주정차는 운전자의 의식 문제란 생각이 든다. 업종도 인근 상가들과 겹치지 않으니 문제될 것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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