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공예 명맥 잇는 9명 한자리에···형편 어렵고 전수자 거의 없어 대책 마련 시급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자세히 보기 <3> 충북도내 장인들

예술가의 영혼이 느껴진다. 오랜시간 공들여 만든 전통공예 작품에서는. 벌써 몇 십년 동안 손에 익은 도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들을 우리는 장인이라 부른다. 아무리 현대적인 공예작품이 마음을 빼앗아도 전통공예를 외면할 수는 없다. 아니 외면해서도 안된다. 공예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2층 페어관에 가면 충북도내 공예 장인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과 이들이 빚어내는 작품을 보러가자.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장에 다녀온 사람들은 충북도내에 이렇게 다양한 장인들이 있는가 새삼 놀란다. 평소 눈여겨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자리 아니고서는 장인들을 한자리에서 보기도 힘들다. 여기에는 옻칠명장 김성호·궁시장 양태현·한지장 안치용·배첩장 홍종진·낙화장 김영조·악기장 조준석·옹기장 박재환씨, 그리고 붓 제작하는 유필무 씨와 삼베짜는 최문자 씨 등 모두 9명이 있다.

이 중 옻칠명장 김성호 씨는 국가지정 명장이고, 유필무씨와 최문자 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충북도지정 무형문화재다. 이들은 대부분 10대 때부터 공예를 익혔고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또 이 기술을 물려받으려는 제자들이 없어 고민이다. 이 세가지가 공통점이다.

옻칠명장 김성호 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옻칠장인이다. 한국의 옻칠은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다. 기술도 세계최고를 자랑했다. 그러나 일제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있다. 김 씨는 나전칠기 등을 만든다. 어렸을 때 웬만한 집 안방에는 나전칠기 자개장이 있었다. 요즘에는 현대적인 재료와 디자인이 대세라 아쉽게도 이런 것을 보기 힘들다. 나전칠기는 나무로 짠 가구나 기물위에 옻칠을 한 뒤 전복이나 조개껍질을 갈아 문양을 오려 붙여 작품을 만든다.

궁시장 양태현 씨는 드라마 ‘왕의 남자’ 영화 ‘최종병기 활’에 사용되는 화살을 만든 게 알려져 이목이 집중됐다. 지난 2009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체험행사장에 참여한 게 계기가 돼서 드라마와 영화제작자들 눈에 띄었다는 후문이다. 그는 16세에 전통화살을 만들기 시작해 45년 동안 외길을 걸어왔다.

 전통화살은 곧고 가벼우면서도 강하고 항구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한 개의 화살을 만들기 위해서는 화살대인 대나무를 고르고, 손질하고, 불에 굽고, 사포질을 해야 한다. 그런 후에는 날개를 심고 화살촉을 끼운다.

그리고 유필무 씨는 붓쟁이로 유명하다. 약 40년 동안 붓 제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작업실은 증평군 도안면에 있다. 그는 동물의 털로 붓을 만드는 기술과 태모필 작업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 왔다. 볏짚이나 칡뿌리 등 천연소재를 활용한 초필작업에서도 남다른 실력을 인정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필은 사람의 손으로 1만5000번을 두드려야 붓의 총이 만들어진다고. 한 자루의 초필을 만드는 데는 3개월이나 걸린다. 공예비엔날레조직위 관계자는 “화살과 붓이 비교적 간편하고 장식 기능이 있어 상대적으로 잘 팔린다”고 말했다.

“장인들 손 놓으면 맥 끊길 것”
‘숨쉬는 그릇’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바로 옹기장 박재환 씨가 빚는 옹기를 말한다. 작은 알갱이가 섞여 있는 점토로 그릇을 만들면 가마에서 소성될 때 점토가 녹으면서 미세한 구멍이 생긴다. 이 곳으로 공기나 미생물, 효모 등이 드나들어 숨쉬는 그릇으로 불린다.

청원군 강외면 봉산리 작업장, 200년이 넘은 가마에서 그는 아직도 손으로 만든 그릇들을 구워낸다. 박 씨는 벌써 7대째 옹기장이로 살아가고, 아들이 대물림 하면서 8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박 씨의 작업장이 있는 곳이 오송 개발권역에 포함되면서 헐릴 위기에 놓여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다.

배첩장 홍종진 씨는 직지축제 때 많이 나와 낯익은 얼굴이다. 유네스코에서 시상하는 직지상의 두루마리형 직지상장도 그가 만든 작품이다. 배첩은 서화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들어 미적·실용적 가치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표구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들여온 용어. 홍 씨는 너덜너덜해진 책을 자신만의 기술로 아름다움과 실용성, 그리고 뛰어난 보존성까지 입혀 내놓는다. 그의 손만 닿으면 훌륭한 책으로 거듭난다. 16세 때 시작해 35년간 한 길을 걷고 있다. 얼마전에는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스승인 김표영 씨와 ‘한국의 장황 특별전’을 열었다.

또 악기장 조준석 씨는 영동 난계국악기제작촌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광주에서 오랫동안 국악사를 운영하다 영동군에서 부르는 바람에 이 곳에 정착했다. 국악의 고장 영동군으로 오게 된 것은 어쨌든 잘된 일이다. 그는 가야금·거문고·해금 등 현악기를 만든다. 17세 되던 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게 악기제조 였다고. 우리나라 전통악기는 서양악기와 달리 심금을 울리는 깊은 맛이 있다. 조 씨도 이런 맛에 빠져 벌써 30년 넘게 이 일을 해오고 있다.

혹시 낙화(烙畵)라는 것을 아는가. 종이·나무·가죽·비단 등의 표면에 불에 달군 인두로 글씨·그림·문양을 새겨 넣는 것을 말한다. 낙화장 김영조 씨는 국내유일 낙화장이다. 보은군에서 작업을 하는 김 씨는 인두·화로·숯만 있으면 어떤 그림이든 그린다. 다만 한 번 실수하면 안되기 때문에 집중력을 요한다고. 아울러 한지장 안치용 씨는 질좋은 한지를 만든다. 괴산군 연풍면에서 신풍한지를 운영하는 그는 전통기법을 고수하고 있다. 요즘 한지는 벽지, 메모지, 포장지 등 생활 속에서 많이 쓰인다. 국산 한지는 닥나무를 사용해 특히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최근들어 삼베 만드는 사람을 본 적 없는데 최문자 씨가 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재배한 삼베를 수확해서 풀을 먹인 뒤 베틀로 짜는 번거로운 과정을 반복한다. 최 씨는 베개·발·보자기·도포 같은 것을 만들어낸다.

한편 변광섭 공예비엔날레조직위 기획홍보부장은 “충북이 공예 불모지가 아니라는 사실과 공예의 뿌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전수자가 별로 없어 장인들이 손 놓으면 단절되는 게 현실”이라며 “도내 장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예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충북도내에는 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24건 있다. 이들에게는 매월 전승지원금 80만원과 연 1회 공개행사비 300~500만원이 지원된다. 그러나 여전히 어려운 형편속에 살고 있어 특별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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