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진 세광고 교장

가파른 진입로를 지나 청주 세광고등학교를 올라갈라치면 커다란 플래카드 한 장이 시선을 잡아끈다. 한 해 농사의 결실을 알리는 이 벽보에는 서울대 16·연대 11·고대 17·포항공대 3·일본공대 국비유학생 2·서울소재 대학 108·4년제 대학 350명이라고 씌여 있다.
학교간 성적을 발표하지 않고, 학력난 기재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우리사회의 ‘학력지상주의’를 파괴해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기는 하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소위 일류대학에 몇 명을 합격시켰느냐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잣대가 된다. 언론에 보도만 안됐을뿐이지 어느 학교에서 서울대에 몇 명 보냈다는 이야기는 학부모들 사이에 빠르게 전달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 만큼 입시성적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서울대 최다합격 자리 몇 년 째 고수

세광고등학교 오연진 교장(61)은 이런 점에서 새학기를 맞이하는 기분이 ‘쾌청’일 듯하다. 본인은 굳이 기분좋은 표시를 안냈지만 지난해 17명, 올해는 16명을 서울대에 합격시켜 충청권 고등학교중 서울대 최다합격 자리를 4 년째 지켜오고 있는데다 서울대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일본공대 국비유학생으로 2명을 보내 세광고의 명성을 또 한 번 날렸기 때문이다. 그보다 이 학교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자녀를 가장 보내고 싶어하는 곳으로도 손꼽힌다.
청주시내에서 9명, 시외에서 5명 등 중학교 전체 1등짜리 학생 14명이 올해 세광고로 몰렸다는 소문도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1∼9등급으로 나뉘어 있는 수학능력시험에서 이 학교 인문계 학생들은 5등급, 자연계는 6등급 안에 모두 들어 시험이 더 어려웠던 지난해 오히려 진가를 발휘했다는 이야기도 모두 맞는 말이었다.
최근에는 이 학교 앞으로 6차선의 동부2차 우회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교통이 나쁘다’는 얘기도 이제 옛말이 됐다. 하지만 이 학교도 과거에는 학부모들로부터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다. 오교장은 “89년 12월에 미평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세광고로 배정되면 학부모들이 원망을 많이 했다. 그 때는 학교 오는 길이 비포장도로였다. 학부모들이 학교로 전화를 해서 교통도 나쁘고 학교도 별로 좋지 않아 자녀를 보내기 싫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했다. 그런 전화를 받을 때가 나는 가장 괴로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시련’이 학교를 키웠을까. 고심 끝에 당시 교감이었던 오교장과 교사들은 교실 한 칸을 개조해 군대막사처럼 만들고 학생들을 재워가며 공부를 가르쳤다. 이것이 현재 세광고를 대표하는 ‘한빛학사’의 시작이다. 그러다가 96년 고교평준화 상태에서 선지원제도가 신설되면서 이 학교는 일대 전환을 맞는다.
“학생들이 시험을 보되 원하는 학교를 3지망까지 써낼 수 있도록 한게 선지원제도다. 그런데 이 제도가 생기면 평준화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과거의 명문고가 부활하는게 아니냐며 전직원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방법을 연구하던 중 숙소를 확장해서 한 학년에 40명씩 모집하기로 하고 중3 학생들한테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동문회에 이런 사실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더니 5000만원을 들여 숙소에 보일러와 주방시설을 해주는게 아닌가. 하지만 1지망에 우리 학교를 선택한 아이들은 58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합격권 안에만 들면 지망학교를 추첨으로 결정한 제도 덕분에 세광고는 오히려 다른 학교를 지망했다 떨어진 우수 학생들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 이 때 우수학생들을 중심으로한 학사운영이 탄력을 받으면서 성장의 기틀을 놓았다고 오교장은 말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한빛학사도 여러 차례의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교실을 개조해 사용하던 시설이 한계를 가지면서 학사는 단독건물로 이전을 했다.

세광고를 대표하는 한빛학사 인기 ‘최고’

“세광학원 이사장이면서 제일교회 당회장이었던 이쾌재 목사가 제일교회 옆으로 소방도로가 나면서 받은 보상비 3억2000만원을 들고 ‘꼭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물어와 주저없이 기숙사 건립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보일러를 놓았다고는 하지만 학생들이 감기를 달고 살아 학부모들로부터 불만을 사던 참이었는데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그래서 이 돈으로 건물을 짓고 98년에 이전을 했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영양이 특히 중요한 만큼 같은 메뉴를 두 번 이상 주지 않고 ‘최고’로 해먹이기 위해 신경쓴다는 오교장은 물품구입부터 배식까지 모든 것을 학부모들이 운영한다고 덧붙였다. 시내 인문계 고등학교의 기숙사 모델이 된 한빛학사의 인기는 실로 엄청나다. 이 학사를 들어오기 위해 세광고를 지원했다며 기숙사 입사를 원하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빗발쳐 올해는 1학년 학사 입학생을 7명 늘려 47명을 뽑았다는 것. 토요일 이외에는 집에 갈 수 없고 모든 것을 학교와 기숙사에서 해결하는 다소 ‘빡빡한’ 생활이지만 학부모들이 더 반기고 마음을 놓는다는 것이다. 또 이 학교는 한빛학사 장학금과 총동문회 장학금을 비롯해 서울신용평가정보 윤의권회장, e-미래종합통신 장석봉 대표, 청주제일교회·우암교회, 세광고 중등교원 동문회, 한빛학사 졸업생 어머니회에서 지급하는 장학금 등 장학금의 종류와 액수도 많은 편이다. 지난 2일 입학식에서도 상당히 많은 수의 학생들이 갖가지 장학금을 탄 것으로 알려졌다. 동문과 교직원, 졸업생 어머니 등 이 학교를 아끼는 사람들의 이런 도움이 세광고를 키우는 데도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공주사범대를 졸업하고 지난 65년 세광고 물리교사를 시작으로 교장까지 오른 오교장은 내년에 정년퇴직한다. “나의 남은 역량과 정성을 모두 기울여 현 3학년 학생들에게 쏟겠다”고 밝힌 오교장은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받는 신뢰가 가장 기쁘고 보람있다”고 말했다. 봄방학인 지난 2월에도 이 학교는 방학이 아니었다. 한빛학사는 열기를 내뿜고 있고 교사들은 새학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 홍강희 교육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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