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혁 규 (청주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형형색색의 광고 글귀로 무장하여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는 수많은 학원 차량들은 이제 우리의 낯익은 일상이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 차들을 이리저리 갈아타며 학원의 숲을 옮겨다닌다. 무엇을 배우러 다니는 것도 다니는 것이지만 저 행렬 속에 끼지 못하면 놀 친구조차 구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런 시대의 대세를 파악한 평범한 엄마들은 노동의 현장에 뛰어들어 교육비를 벌기 위한 고단한 투쟁을 한다. 다시 수많은 학원들은 양육해줄 보호자조차 잃어 버린 아이들의 빈 시간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이것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교육비 지출을 자랑하는 21세기 대한민국 교육의 한 단면이다.

한국 교육을 참여 관찰한 외국의 교육학자들이 우리의 교육열에 대해서 광(狂)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미친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 초등학교를 갓 들어간 아이에게 5∼6개의 학원을 강요하는 우리가 어디 제 정신인가? 그런데 좀 미치면 어떤가? 교육이란 원래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을 자녀에게 베풀기 위해서 좀 오버하면 어떤가? 문제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활동이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 높은 교육열을 통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 자녀를 아래에서 묘사하는 학교에보낼 수 있는지를 물음으로써 스스로 답해 보라.

진짜로 전인교육을 실시하려고 노력하는 학교가 있다고 해 보자. 예컨대, 학교의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학교, 학생을 친자식처럼 돌보면서 촌지 따위는 일절 받지 않는 사랑으로 무장한 선생님들, 지적 능력과 함께 정서적이고 신체적인 발달을 균형 있게 도모하는 교육과정, 고루한 문제 풀이 대신에 창조적 문제 제기를 언제나 허용하는 수업 풍토, 약자에 대한 배려의 정신이 기풍으로 정착되어 왕따 문제는 도무지 발생하지 않는 급우 관계, 아이들이 숨막히는 경쟁에 내몰리지 않으면서 자기의 적성을 찾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그런 학교…. 필자의 상상력이 부족해서 더 자세히 기술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은가?

그런데 만약 이 학교를 3 년 동안 행복하게 다닌 학생이 학습의 기쁨도 체험하지 못한 채 인권을 저당 잡히고 스파르타 식으로 교육을 받은 다른 학교 학생들에 비해서 대학입시에서 낮은 성적을 받는다면? 그 하락의 정도가 약간이 아니라 상당하다면? 당신은 그래도 이 학교에 당신의 자녀를 믿음을 가지고 보낼 수 있는가?

단언컨대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이 질문에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하지 못할 것을 필자는 직감한다. 기존 학교를 등지고 대안교육을 찾아 헤매는 그 많은 방랑자들이 추구하는 진짜 목적은 전인교육이 아니다. 아니 전인교육인지 아닌지는 안중에 없다. 대입 전쟁에서의 성공이라는 사회적 결과로 변환되지 않으면 그 모든 아름다운 과정들은 의미를 상실한다. 여기에 교육열이 망국병인 이유가 숨어 있다. 소 팔고 논 팔고 다 팔아서 잘 키워 낸 내 자식이 엄혹(嚴酷)한 학력 사회의 승자가 되어 개선가를 울리며, 그 전쟁의 승리로 모든 것을 독식하기를 염원하면서 천문학적 교육비를 투자하는 사회에서 교육은 이미 선이 아니라 악이다. 계몽이 아니라 몽매를 재생산하는 행위일 뿐이다.

열심히 교육을 시키면 시킬수록 사회의 도덕적 수준이 평균적으로 저하되는 현상이 생기고 학교의 모진 훈련을 모범적으로 통과한 학생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거리가 먼 타락한 상층부를 형성하는 사회의 교육이란 위교(僞敎)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이상 과열된 교육열을 냉각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왜 자녀 교육에 이토록 목을 매는지를?! 그리고, 그 목마름으로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를?!

우리의 남다른 희생을 통해 길러진 우리의 2세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정금 같이 다듬어낸 지적 능력들을 사회적 연대와 공공성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세계적인 교육열은 수치가 아닌 자랑스러움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교육에 대한 우리들의 내밀한 동기를 점검하고 대안 교육에 대한 사색을 급진화함으로써 이 우울한 교육 전쟁의 종지부를 찍어보자. 이것이야말로 진짜 필요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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