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아트팩토리형’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옛 연초제조창·안덕벌을 주목하라

지역경제 중심 옛 연초제조창, 문화의 옷을 입혀라

‘201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는 공간구성을 주목해야 한다. 그간 공예비엔날레의 주 무대는 청주예술의 전당이었다. 매번 예술의전당 광장에 대형천막을 설치하고 뜯는 작업을 반복해왔다. 그렇다보니 행사 끝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지적해 왔다. 시설비 예산 15~17억원 중 대형천막 설치비가 10억원에 달할 정도로 예산은 예산대로 들어갔지만, 임시방편으로 행사 끝나면 거기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옛 청주연초제조창이다.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아트팩토리형 비엔날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트팩토리의 기본개념은 문화를 통한 도심재생이다. 대개 오랫동안 방치돼 있는 대형 공간에 공공디자인을 입혀 새롭게 탈바꿈 시킨다. 외국에는 성공사례가 여러 개 있다. 폐허가 된 화력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바꾼 영국의 테이트모던,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발전시킨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전선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핀란드 카펠리가 자주 인용된다. 그리고 중국 베이징은 1950년대 건설된 군수공장을 세계 최대의 아트마켓인 798 예술구로 태어나게 했다. 또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는 화물을 실어나르던 작은 운하를 관광코스로 개발해 성공했다. 기업체와 금융기관, 창고 등을 개조해 박물관·미술관·각종 상업시설로 바꿔 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이 곳은 이와이 슌지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의 무대로 등장해 한국사람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렇다 할 예가 없다. 우리는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데만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다. 이번 공예비엔날레가 성공한다면 국내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 청주연초제조창은 대농과 지역경제를 견인해 왔던 대표적인 곳이다. 1946년 11월 1일 경성전매국 청주연초공장으로 시작돼 87년에는 한국전매공사 청주연초제조창으로 개편됐다. 전성기에는 1만여명의 직원들이 연간 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할 정도로 큰 담배공장이었다. 도라지·아리랑·태양·장미·솔 등의 담배가 여기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담배가 외면받게 되면서 99년 담배원료공장 폐쇄에 이어 2004년에는 공장가동이 완전 중지된다.

아트팩토리형 비엔날레를 계기로 옛 청주연초제조창이 '장소 마케팅'을 시작한다.

월급날은 모두가 흥겨운 장날·
연초제조창의 총 면적은 청주문화산업진흥재단을 포함해 12만5400여제곱미터이다. 청주시는 KT&G와 오랜 소송끝에 올 1월 350억원에 매입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시는 올해 10억원을 납부하고 내년부터 90억원씩 분납한다는 계획이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조직위는 65년 역사를 간직한 연초제조창을 스토리텔링으로 엮기 위해 옛 추억을 수집했다.

변광섭 기획홍보부장은 “비엔날레 기간 동안 연초제조창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을 따로 만든다. 과거 제조창 안에는 목공소·교회·절·이발소·미장원·목욕탕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월급날에는 시장이 형성돼 잔치분위기 였다고 한다. 작업장이 크고 직원들이 많은 만큼 재미있는 얘깃거리들이 많다. 시민들에게 자료를 수집한 결과 초창기 공장 건설 도면, 담배 제조도구, 당시 월급봉투, 각종 서류, 담배 포장, 작업일지 등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연초제조창 역대 직원들의 모임인 전우회, 손광섭 광진건설 회장, KT&G 본사 측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손 회장은 돌아가신 부친이 마침 연초제조창을 지어 당시 도면과 사진, 건설관련 자료들을 협조했다.

변 부장은 “연초제조창장 방을 만들어 그 당시를 재현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진, 영상물을 수집하고 있다. 또 본사 협조를 얻어 연초제조창 65년 역사를 도록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변 부장과 함께 오랫동안 닫혀있던 한 건물에 들어가자 당시 직원들이 썼던 책상, 주판, 결재서류, 구급통, 지게, 십자가 등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작업성과를 기록해놓은 노트와 이런 저런 서류들도 눈에 띄었다.

연초제조창 활용방안을 강구하라
비엔날레 행사를 옛 연초제조창에서 하는 것과 행사의 주제인 ‘유용지물(Not the new, just the necessary)'은 잘 맞아 떨어진다. 특히 올해 비엔날레가 의미있는 이유는 옛 연초제조창이 향후 어떤 옷을 입느냐와 밀접하기 때문이다. 청주시가 당면한 과제는 비엔날레를 잘 치르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과제는 이 곳을 어떻게 훌륭하게 살려낼 것인가다. 변 부장은 “우리가 보여주는 비엔날레는 완성형이 아니다. 실패할 수도 있다. 이 행사를 통해 이 곳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우리는 이 곳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고 밝혔다.

이동주 청주시 도시관리국장도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보고 갔다. 건축·유통·문화·미디어·인테리어 전문가 등이 관심을 갖고 보았다. 이렇게 넓은 면적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모두들 놀라더라. 앞으로 대기업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창고건물에서 공예비엔날레 행사를 하면서 우선 이 건물의 존재를 알리고 많은 사람들의 여론을 들어볼 생각이다. 장소마케팅을 할 것”이라면서 “넓은 면적을 고려할 때 국제적인 규모의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청주시는 행사가 끝난 뒤 여론을 수집하고 연구용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범덕 청주시장은 이에 대해 건물을 부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할 것, 문화를 주제로 할 것, 경제적 측면을 고려할 것, 미래지향형이어야 할 것 등의 원칙을 제시했다. 김태영 청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옛 연초제조창을 문화예술 및 교육 복합공간으로 용도변경하는 것과 함께 상당로 양끝에 있는 육거리시장과의 연계성을 강조했다. 남측의 육거리시장이 생필품을 거래하는 곳이라면 북측 옛 연초제조창은 문화예술 및 교육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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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잃은 안덕벌···문화예술생태의 거리 돼야
‘안덕벌’. 행정구역상으로는 청주시 내덕2동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안덕벌이라고 부른다. 덕벌의 안쪽이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 오래된 동네로 추억이 많은 곳이다. 그러나 이 곳은 연초제조창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활기를 잃었다. 청주대 예술대가 있으나 대학가라고 부르기에도 안됐을 정도로 대학문화가 없다. 대학가에서 볼 수 있는 서점과 문구점, 분위기있는 카페나 레스토랑 한 개가 없다. 내덕칠거리 쪽에서 청주대 예술대 쪽으로 걸어가다보면 감자탕·족발·순대·삼겹살·치킨·파전·마트·안경점 등이 쭉 늘어서 있다. 하지만 특색없는 가게 일색이다.

대학가에 있으나 대학문화를 찾아볼 수 없는 안덕벌. 특색이 없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몇 년 전부터 대학생들을 바라보고 원룸형 다가구주택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 마저도 비어있는 곳이 많다. 교통발달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대폭 늘어난데다 대학안에 대형 기숙사가 생겼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중국유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중국음식점과 중국식품점 등이 생겼다. 이 정도가 특색이라면 특색.

이 때문에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계기로 오랫동안 잠자고 있는 안덕벌을 문화예술이 흐르는 거리로 변모시키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람들이 이제 안덕벌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조직위는 '스트리트퍼니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안덕벌 일원을 문화예술이 흐르는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일대의 역사·문화·지리·생태적 특성을 반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한편 작가와 지역주민이 함께 하는 공공미술의 장을 열겠다는 것이다.

변광섭 기획홍보부장은 “비엔날레를 청주예술의 전당에서 할 때는 시민동의를 얻지 못했다. 시민과 함께 하는 행사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올해는 주민과 함께 하는 열린 비엔날레를 표방했다. 그래서 안덕벌 주민들과 간담회를 했더니 뭔가 남는 행사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연초제조창이 공장가동을 중단하면서 상권이 죽어 힘들다고 하소연해 주민들에게 도움되는 일을 몇 가지 모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덕벌-청주대-수암골-대성동으로이어지는 곳을 'slow belt로 묶어 문화예술, 문화산업, 생태가 돋보이는 곳으로 변모시키면 좋을 것”이라면서 “이 지역은 ‘낮고 두터운 도시’ ‘깊고 느린도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덕벌 주민 동의 반드시 필요
실제 시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행사는 공허하다. 청주예술의 전당에서 해온 역대 비엔날레를 '우리 행사'라고 생각한 시민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일과성 행사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옛 연초제조창 인근에는 안덕벌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들의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청주시의 몫이다. 공예비엔날레조직위는 지난 99년 제1차 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여기저기 세운 공공미술품들중 일부를 이 일대에 재배치해서 스토리가 있는 공간으로 연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상권 활성화여서 이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 보다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비엔날레 행사 중 하나로 청주대 건축학과가 주관하는 국제건축디자인캠프에서는 다행히 안덕벌의 변화를 모색할 계획이다. 이 캠프는 지난 93년부터 매년 해오고 있다. 올해 주제는 '옛 연초제조창 재생 및 도시문화'. 여기에는 건축·도시계획·디자인 분야의 전문가와 학생, 시민사회가 참여한다.

한편 내덕2동 주민자치센터 관계자는 "이곳의 인구는 96년 2만2000명까지 갔으나 이제는 1만3500명 선으로 줄었다. 공동화가 심각하다. 원주민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청주대 중국유학생들이 채우고 있다. 외지인들이 몰려와 학생용 원룸을 많이 지었으나 비어있는 곳이 많다"면서 "주민들은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는 점과 도로협소 등에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 때 간판이라도 예술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했으나 상가 세입자들이 일부 자부담 경비를 반대해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모 씨는 "청주대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학교주변을 정화하고 문화예술이 흐르는 동네로 변모시키는데 대학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 청주의 대학가는 대학문화가 없다. 청주대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의 옷을 입히는 게 곧 상권 활성화이고, 그 동네가 살아갈 방향이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안덕벌은 달라져야 한다. 주변의 우암산, 상당산성, 수암골 등과 더불어 자연과 환경과 문화가 살아있는 곳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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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것에서 예술작품이 탄생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대표적인 시민참여 프로그램은 ‘동고동락同苦同樂’이다. 시민들이 모여 재활용 녹색공예디자인을 선보이는 것. 현재 총 21개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비엔날레조직위는 녹색수도 청주의 정책을 뒷받침하고 열린 비엔날레, 시민참여형 비엔날레를 실천하는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빈 병을 이용한 유리공예, 헌 도마를 이용한 간이의자 만들기, 신문지로 공예품 만들기, 재활용 자투리 천을 이용해 생활소품 만들기 등이 있다. 또 자연물로 화환 등을 만드는 자연미술 공예, 한지 체험실습, 도자기 체험실습 등도 있다. 실제 시민들은 빈병이 시계로, 신문지가 공예품으로, 헌 도마와 나무가 앙증맞은 의자로 탈바꿈하는 경험을 했다.

빈 병을 활용한 시계만들기.

그 중 ‘공예가 있는 어린이도서관 upcycle’은 여러 측면에서 눈에 띈다. 재활용공예교육 디렉터인 손순옥 충북민미협 회장은 “비엔날레 전시관 안에 재활용품을 이용한 도서관을 만들 것이다. 옛 연초제조창 목공소에 남아 있는 나무를 활용해 책상, 의자, 책꽂이 등을 만들고 나머지도 리폼할 계획으로 있다. 공예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모든 물건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시가 끝난 뒤에는 적당한 공간에 도서관을 그대로 재배치해서 활용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주시민 중 평소 공예를 배우고 활용하는 사람들은 많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한군데로 모여 네트워크화 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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