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의 편집인

지난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 본 월드텔레콤 홍용성 회장은 천성이 수줍은 인상이었다. 노조결성 이후 첨예한 노사대립을 벌이던 이 회사를 취재하기 위해 마주한 첫 대면에서 갖게 인상은 그가 일종의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세운 CEO답지 않은 그의 모습은 의외였다. 

하긴 그는 정통 엔지니어 출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인터뷰 내내 줄담배를 피워가며 “창업 후 앞만 보고 일에만 몰두해 왔다”거나 “재산은 청주에 있는 아파트 한 채 뿐”이라는 그의 토로는 그가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거친 비즈니스 세계의 비정함을 제대로 겪어보지 않았으며 그래서 엔지니어들이 갖는 순진성을 여전히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으로 들렸다. 그런 그가 최근 경영위기에 봉착해 5개월 째 귀국도 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장기체류하며 전전긍긍하는 상황은 연민의 정을 자아내게 한다.

월드텔레콤은 잘나가던 회사였다. 한때 종업원 수가 1200명에 달하고 연 매출액이 1000억 원을 넘을 정도로 충북을 대표하는 벤처기업이었다. 하지만 월드텔레콤은 뛰어난 기술력에 걸맞지 않는 후진적 경영 시스템의 덫을 거둬내지 못했다. 과거 우수기업에 선정되는 등 명성을 날린 회사는 창업초기 끌어들인 엄청난 금융부채와 삼성전기라는 단선적 납품선의 한계를 뚫지 못했다.

구멍가게 같은 가족경영 행태가 인재 육성을 막았고, 1000억원대가 넘는 금융부채에 대한 상환 스케줄 등 향후 경영계획 전반에 대한 허심탄회한 공개와 이를 통한 회사방침에 대한 근로자의 목표동일화를 구하지 않은 회사운영 태도는 강성 노조의 출현을 가져왔다. 회사는 노조에 대한 피해의식을 키워갔고 노조는 회사의 불투명함에 불신의 벽을 켜켜이 쌓아갔다.

이런 가운데 청주지방노동사무소장에게 주식을 뇌물로 공여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재판과정에서 법정 구속되는 파란을 겪으며 그는 극심한 노조 기피증 등 피해의식에 더욱 빠져든 게 틀림없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갈수록 깊은 나락으로 추락한 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점에서 그가 최근 민주노총 간부와 월드텔레콤 지회장을 홍콩에서 전격적으로 만나 2박 3일간 마라톤 대화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를 면담하고 돌아온 노조의 전언대로라면 회사 임원들과 주요 거래업체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있던 홍 회장으로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회사의 운명 앞에 절대적 고독감과 사고무친의 절박한 심정에 빠져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은 그로선 평상시 같았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노조’를 대화상대로 선택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노조 앞에서 세 번이나 대성통곡한 사실이 잘 설명되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도 회사를 살리려 한다”는 노조의 고백 역시 주목대상이 아닐 수 없다. 노조 스스로 밝혔듯 임금 문제 같은 한가하고 부수적인 이슈가 아닌, 침몰하는 월드텔레콤을 우선 건져내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보다 근원적인 상황인식을 갖고 있다는 반증 때문이다. 뒤늦었지만 월드텔레콤 노-사가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의 공유를 통해 현 위기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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