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 편집위원

식당, 마트, 꽃집 등을 지나면 옷가게, 철물점, 약국, 전자담배 가게가 나온다. 특색은 없다. 그저 그렇고 그런 작은 가게들이 즐비한 구도로일 뿐이다. 그러나 도보로 10분 거리에 불과한 거리를 걸으면서 수많은 장애물과 만난다. 횟집에서는 풍선형 대형 광고탑을 인도에 내놓고, 꽃집은 크고 작은 화분들을 인도에 깔았다. 그리고 마트에서는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에 각종 상품들을 쌓아 놓았다.

이런 길을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걷다 보면 공사현장이 나온다. 지난해 겨울부터 도로확장 공사를 하는 곳이다. 출근시간이든 아니든 포크레인은 큰 입을 쩍쩍 벌리며 일을 한다.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공사를 중지하면 좋을텐데 이런 배려를 받아본 적이 없다. 혹여 돌이라도 날아올라 조심하면서 걷는다. 왕복 2차선 도로라 출근 길은 항상 붐빈다.

여기저기서 빵 빵 거리는 소리에 깜짝 깜짝 놀라기 일쑤다. 드디어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으니 그나마 살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인도가 없다. 한쪽 길에는 차들이 일렬로 주차돼 있다. 이 차들 옆으로 걸으면서 반대방향에서 차가 오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내가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가면서 겪는 풍경이다. 도보로 금천동에서 회사가 있는 문화동까지는 불과 20~2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길은 이렇게 재미가 없다. 한마디로 걷기 싫은 길이다. 걷는 사람이 배려를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다.

청주시내 구도로는 인도없는 길이 많고, 신도로는 널찍하나 자동차가 다니기 좋은 길이다. 인도가 있어도 인근 상가에서 내놓은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운동삼아 걸어서 출퇴근 하고 싶지만 이렇게 운치없는 길은 이런 마음을 싹 잘라 버린다.

최근 선진국들은 걷기좋은 거리를 넘어 유모차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거리 만들기에 나섰다. 유아, 장애인, 노인 등 보행 약자들까지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어야 사람을 위한 도시라는 생각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청주시는 아직도 자동차를 위한 도시다. 자전거타기 좋은 도시도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싶어도 자전거도로가 제대로 돼있지 않아 탈 수 없다. 구간 구간 자전거도로가 있지만, 연결되지 않아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큰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도시를 구경하려거든 걸으라는 말이 있다. 그럼 청주시는 어디를 걸어야 할까. 성안길? 무심천변? 가로수길?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인문학자 정수복 씨는 도시산책기 ‘파리를 생각한다’라는 책을 썼다. 벌써 14년째 파리에 살면서 파리 구석 구석을 걸어다닌 뒤 쓴 책이다. 구간별로 특징이 있어 거기 사는 사람들의 성향이 다르고, 거기서 발견되는 모습이 달라 걸을 때마다 새롭다는 게 정 씨 말이다.

 파리는 인문학자가 오랫동안 걸은 뒤 책으로 엮어낼 만큼 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골목마다 스토리가 숨어 있다고 한다. 이 책을 보면 파리지앵들에게는 왜 산책이 중요한 일과인가를 알 수 있다. 도시가 시민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도 걷고 싶다. 청주시민들도 우리가 아끼는 이 도시를 걷고 싶다. 걸으면서 청주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싶다. 그러면서 청주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싶다.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며 거기 숨겨진 이야기에 감동받고, 걷다가 공원이나 광장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싶다.

그러나 지금 청주의 도로는 재미없고, 멋도 없고, 시끄럽다. 도시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걷기열풍으로 걷는 시민들은 날로 늘어나지만, 대체 어디를 걸어야 한다는 말인가. 걷고 싶은 도시 청주, 꿈만 꾸다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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