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소주 매각 과정 ‘진실’ 고백, 150억대 복지재단 연내 발족

미운오리를 백조로 둔갑시킨 탁월한 CEO’에서 ‘향토기업을 포기한 먹튀 CEO’라는 극과 극의 평가가 쏟아졌다. 3월말 기업매각 발표직후에는 지역언론의 부정적 보도와 함께 ‘먹튀’ 논란이 거셌다. 지역 상징성이 높은 자도주, 소주가 대기업에 매각된 사실에 시민들은 서운함 감정을 어쩌지 못했다.

그로부터 50여일이 지난 지금, 롯데의 ㈜충북소주 인수작업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예상보다 빨리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기업결합 승인을 받아 롯데측 실무직원들이 출근을 시작했다.

4월말로 회사 출근을 정리한 충북소주 장덕수 대표(51)를 2일 청주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온 안도의 표정이었지만 ‘먹튀’라는 표현에는 여전히 민감한 반응을 내비쳤다.

“한동안 사람 만나기가 두려웠다. 방송뉴스를 본 아내와 자식들도 밖으로 나가길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20여년 나름 열심히 사업을 해왔는데 이런 가혹한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도민들의 그런 반응은 결국 충북소주에 대한 애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갑작스런 발표로 인해 도민들이 입을 마음에 상처를 미리 헤아려보지 못한 것이 나의 불찰이었다. 지역민의 정서법을 감안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지금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소주시장 공룡싸움, 대안없어 고육지책

롯데와 충북소주의 매각협상은 지난 2월말부터 시작됐다. 주류회사 설립조건이 완화되고 진입장벽도 낮아지게 된 상황에서 메이저사인 ‘진로 참이슬’과 ‘롯데 처음처럼’은 2년전부터 소리없는 전쟁을 벌어왔다. 시장선점을 위해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퍼부었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 지방소주였다.

“2002년 적자회사를 인수해 2008년 순이익 11억원으로 최고기록을 세웠는데 2009, 2010년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다가오는 시장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재투자가 필요한데 2년간 찾아 다녔지만 경영권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했다. 주류 공룡회사인 하이트맥주와 진로소주가 통합영업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손쓸 방법이 없었다. 속이 타는 상황에서 2월중순 롯데측에서 은밀하게 제안이 왔고 20일쯤 뒤 양측이 양도양수 조건에 1차 합의해 급진전 됐다”

이미 알려진대로 매각협상의 걸림돌은 직원 고용승계와 처우 부분이었다. 장 대표는 전원고용에 덧붙여 기존 롯데주류 직원들과 동일한 수준이 처우를 요구했다. 롯데측의 인수합병 담당직원들은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며 의아하게 받아들였다는 것. 회사를 파는 쪽은 협상가격을 높이기 위해 기존 직원의 정리문제까지 떠맡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이트소주를 인수할 당시 깜작 놀란 것이 직원들의 저임금이었다. 당시 적자회사라는 이유로 본사와 다른 이원적 구조로 임금책정을 한 것이다. 그래서 충북소주 전환후 첫 월급을 30% 인상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이후 충북소주가 이룬 모든 성과는 직원들이 99% 해낸 것이다. 회사는 매각하더라도 고용승계는 당연한 것이고 과거처럼 또다시 차별적인 처우를 받는 것은 미리 막아야 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가족공동체 회사, 고용승계 처우개선 당연

장 대표는 기자와 인터뷰 전날에도 회사 생산직 직원들과 마지막 이별주를 나눴다며 하이트소주 인수과정에 대해 덧붙였다. “사실상 하이트소주는 전 주주간의 소송문제로 회사를 완전인수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니 투자를 하기도 어려웠고 점유율은 떨어져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이었다. 되팔려해도 누구도 나서지않아 회사 청산까지 고려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내가 복잡한 주주관계에 해결책을 제시해 3개로 흩어져 있는 회사를 (주)충북소주 하나로 엮어내면서 인수자가 된 것이다”

장 대표가 인수할 때는 무진 애를 먹었던 충북소주가 롯데와의 인수협상이 단기간에 성사될 수 있었던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충북소주의 다양한 제품군이다. 소주도 프리미엄급을 개발했고 산양배양주에 꼬냑까지 무려 9가지의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덩치가 훨씬 큰 지방소주사들도 이 정도 품목을 생산하는 곳이 없다. 더구나 산삼배양주 ‘휘’는 세계 3대 주류 품평대회에서 모두 수상한 저력을 갖고 있다. 롯데의 유통망과 연결될 경우 성장한도를 가늠하기 힘들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투명한 경영방식이다.

장 대표가 제시한 회사의 모든 자료는 정확했고 롯데측의 실사도 짧은 시간에 마무리될 수 있었다. 장 대표의 복지재단 설립 계획을 전해듣고 롯데도 참여여부를 타진할 만큼 무한한 신뢰를 나타내고 있다.

롯데 잘키우면 지역의 효자노릇 할 것

롯데 매각사실을 언론에 발표하던 날, 장대표는 복지재단 설립 계획도 덧붙였다. 60억원을 현금출연하고 부동산을 더해 150억원대 자산의 충북 최대 규모의 복지재단을 만들겠다는 것. 충북소주보다 총매출이나 순이익이 훨씬 큰 지역 기업들도 엄두를 내지 못한 거액이다. 하지만 ‘먹튀’ 논란의 연장선상에서 재단설립이 절세를 위한 편법이라는 비아냥이 들려오기도 했다.

“양도소득세가 어떻고 저떻고…나도 모르는 얘기들이 나오길래, 하도 답답해 회계사에게 직접 물어봤다. 확인해보니 세금을 안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회사가 아닌 개인이 설립하는 재단이기 때문에 절세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재단설립의 진정성마저 의심받는다면 정말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다. 충북소주가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아 성장해왔고 그 과실의 한 부분을 지역에 되돌려주겠다는 소박한 뜻이다. 이마저도 안한다면 먹튀라는 비판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 아닌가?”

도내에는 충북도의 인력양성재단을 비롯한 많은 장학재단이 있기 때문에 장 대표는 사회복지·문화분야의 소외층을 지원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재단 상근인력과 유지비용도 최소화해 한해 5억원 이상을 순수한 지원사업에 배정하겠다고 포부도 밝혔다. 아직 왕성한 경제활동을 할 나이인 장 대표의 향후 사업계획도 궁금했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한 듯 싶었다.

“일년 365일 가운데 저녁약속이 450번 정도일 만큼 바쁘게 살아왔다. 이젠, 내 삶이나 사업에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고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매각발표 직후 논란이 한창일 때는 ‘차라리 청주를 떠나서 사업을 하라’는 주변 충고도 많았다. 하지만 재충전기가 끝나면 고향에서 내 일을 찾을 것이고 재단을 통한 사회환원을 넓혀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대후반 맥주회사(크라운맥주) 월급장이로 입사해 30대에 주류도매상사를 운영하다 40대에 주류회사 CEO로 성장을 거듭해온 장 대표. 마침내 ‘물장사’를 접고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찾고 있는 그에게 못다한 한마디를 주문했다.

“(주)충북소주는 사라지겠지만 도민의 사랑을 직접 받아온 ‘시원소주’는 충북의 물로 충북 사람들이 계속 생산하게 될 것이다. 롯데가 대규모 투자계획을 실행해 나간다면 앞으로 LG, 하이닉스에 버금가는 대표적인 충북의 기업으로 효자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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