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과학벨트 백지상태서 검토” 충청권 화약고
대구·경북 밀어주기 포석 의심, 여권 내에서도 비판

▲ 이시종 지사가 지난 1일 과학벨트 충청권 조성이 공약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직후 대통령 공약집을 들춰 보이며 강력히 반박하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백지상태에서 검토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충청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돼 버렸다.

특히 대통령의 말 뒤집기가 과학벨트를 대구·경북으로 몰아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며 충북을 비롯한 충청권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도내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이미 첨단의료복합단지 입지와 관련, 당초 ‘오송’ 단독 선정 예상을 뒤집고 대구에 나눠준 전례를 거론하며 청와대가 또다시 충북을 우롱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시종 지사는 지난 1일 대통령이 신년방송좌담회에 출연해 이같은 발언을 쏟아낸 직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강하게 반발했다. 이 지사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은 공약이기도 하지만 지난 2008년 7월과 2010년 2월 충북도 방문시 충청권에 조성하겠다고 확약한 사항임에도 이를 모두 부정하고 모든 것을 백지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것은 충청도민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납득하기 매우 어려운 사안”이라며 “제2의 세종시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우려되고 충청인을 두 번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더욱이 “‘유세에서 표 얻으려고, 공약집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발언은 어떠한 이유나 해명이 있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방의회와 시민단체들도 힘 모으기에 나섰다.
김형근 도의회의장 등 충청권 3개 시·도의회의장은 지난 7일 오후 대전광역시의회에서 만나 상경투쟁 등 지방의회차원의 과학벨트 충청권입지 백지화 관련 대응책을 모색했다.
도내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세종시충북비상대책위원회도 8일 긴급 대표자회의를 여는 한편 민·관·정 공동 대응방안 마련에 나섰다.

세종시 백지화 논란 때 보다 반발수위 높아

충청권, 특히 충북지역의 대응 수위는 세종시 수정안 논란 당시 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수정, 첨복단지 복수지정 등 잇따라 주요 균형발전 정책에서 충북 배제를 시도했고 경제자유구역 지정, 청주공항활성화 등 주요 현안에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대통령은 ‘표 얻으려고 혼선을 드린 것 같은데 백지에서 하는 것이 맞다. 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라는 망언으로 무식할 정도의 뻔뻔한 대담성을 드러냈다”며 “시민사회단체들은 물론 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정치권 등 총 연대투쟁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시민사회진영 뿐 아니라 지역 정치계도 마찬가지다.
노영민 의원은 이미 지난달 임기철 청와대 비서관의 과학벨트 전국공모 발언이 나오자 “충청권 모든 정당의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시민사회단체, 경제계가 총궐기하고 강력한 연대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변재일 의원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꼼수를 부리지 말고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하고 충청권 입지를 명시해 발의한 과학비지니스벨트법 수정안을 조건없이 수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대통령의 ‘백지상태 검토’, ‘표 얻으려고’, ‘공약집에 있는 것 아니다’라는 발언은 폭발일보직전의 충청권 화약고에 불을 붙인 격이 됐다.
비대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망언은 정치적 이해에 관계없이 충청권이 결집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학벨트 입지 문제 뿐 아니라 MB의 충청권 소외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반대 투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 대통령의 과학벨트 백지 상태 검토 발언에 더욱 반발하는 것은 세종시 수정, 첨복단지 복수 선정 등 정부의 충북 배제 정책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첨복단지 유치 등을 요구하는 도민 궐기대회.
세종시 수정 실패하자 과학벨트 회수

충북을 비롯한 충청권이 더욱더 반발하는 것은 과학벨트가 세종시 원안 백지화를 위한 거짓 공약이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MB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밀어붙였던 세종시 원안 수정 실패와 과학벨트 공약 추진 과정을 되짚어 보면 이같은 의혹은 매우 설득력을 갖는다.
MB는 세종시의 행정중심복합도시 기능을 백지화하고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로 수정을 추진했다. 행정기능을 없애 수도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한편 기업을 유치해 충청권을 달래려는 꼼수를 부린 것.

흔다디 흔한 복합산업단지 수준으로 전락할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충청권의 반발에 대비한 히든카드가 바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였다. 과학벨트는 당초 세종시와 별개로 충청권에 조성될 예정이었지만 세종시 수정안이 추진되며 부족한 자족기능을 보완할 핵심정책으로 거론됐었다. 당시 연기군 남면 고정리가 중이온가속기 설치 위치로 제기되는 등 과학벨트 공약은 구상부터 세종시 백지화를 위한 방편으로 제기되었고 치밀한 계획아래 세종시를 대체하기 위해 준비돼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세종시 수정안이 실패로 돌아갔고 더 이상 과학벨트의 정치적 이용가치도 사라지게 됐다. 과학벨트특별법이 지난해 12월에야 통과되고 예산도 확보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해 온 것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세종시 수정안이 폐기된 직후 대구·경북이 과학벨트 유치에 나섰고 이에 대한 청와대의 측면지원도 노골화 되기 시작했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한 관계자는 “포항의 방사광가속기를 3세대에서 4세대로 업그레이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나 경주의 양성자가속기와 묶어 가속기 클러스터 운운하며 분위기를 띄워온 것도 치밀한 계획의 일부로 보인다. 위치를 명시하지 않은 과학벨트법의 국회통과와 청와대 비서관의 전국공모 발언으로 그 의도가 노골화됐으며 대통령의 망언으로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1차 목표 빼앗기 2차는 쪼개기
과학벨트 첨복단지 입지 선정 전철 밟나

“청와대의 꼼수, 좋게 봐줘도 청와대의 어정쩡한 태도 때문에 미래성장동력이 정치에 놀아나고 있다.”
시민단체 실무자가 과학벨트 입지와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빗대서 한 말이다. ‘정치’라는 말 속에는 2006년 오송과 대구가 공동으로 선정된 첨단의료복합단지의 전철이 되풀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묻어난다. 정부는 당초 한곳을 첨복단지 입지로 선정하겠다는 계획을 슬그머니 바꿔 대구에 나눠줌으로서 정치적 결정이라는 호된 비난을 자초했다.

과학벨트 입지도 첨복단지와 같이 대구·경북지역과 복수로 선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지난해 세종시 수정안이 폐기되자 마자 대구·경북이 과학벨트 유치를 선언하고 대대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청와대의 지원도 노골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벨트 조성의 중심은 기초과학연구원 설립과 중이온가속기 설치다. 만일 우려대로 과학벨트 입지를 복수로 선정할 경우 이 두 시설을 나눠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는 신성장 동력을 만든다는 과학벨트의 정책목표를 정치논리가 왜곡시키고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게 정설이다. 또한 중이온가속기의 비중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또 다른 반발도 불가피하다.

도 관계자는 “주요 거점을 나눠준다면 굳이 과학벨트를 조성할 이유가 없다. 포항 방사광가속기와 경주 양성자가속기처럼 또 하나의 가속기를 설치하고 정부 산하기관을 분리해 내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집적에 따른 시
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 과학발전을 옭죄는 벨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여권내에서 조차 반발기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정가 관계자는 “박성효 한나라당 최고의원을 비롯해 여당내 주요 인사들이 과학벨트 공약 뒤집기에 강력히 반발하는 데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충청권 여론을 의식한 때문이고 두 번째는 과학벨트의 정책목표 훼손에 대한 우려다. 여권 내에서 조차 과학벨트 쪼개기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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