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리쭝우(李宗吾·1879∼1944)가 쓴 ‘후흑열전(厚黑列傳)’에 보면 “사람이 출세하고 성공하려면 낯가죽이 두꺼워야한다”고 역설하고있습니다. 그는 민중에게는 억압적 이데올로기로 관료들에게는 보신의 처세술이었던 유교이념을 혹평하면서도 ‘후흑학(厚黑學)’이라는 새로운 ‘학문’으로 거짓된 세상을 향해 맹렬한 풍자를 던집니다.

후흑학이란 글자 그대로 ‘낯가죽이 두껍고(厚) 속이 시커먼(黑)’것을 가리키는 것인데 누구든 출세를 하려거든 낯이 두꺼운 후흑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학(儒學)을 위선과 병폐에 물들었다고 통렬히 비판하면서 그것에 충실하라고 하니 아이러니치고는 가히 백미(白眉)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느 땐가 한 대학신문에서 학생들에게 복제(複製)하고픈 인물을 설문 조사한 바 있는데 그 첫 번 째가 백범 김구선생이었다고 합니다.

오늘 날 남아있는 몇 장의 사진들을 보면 백범선생은 시쳇말로 결코 ‘얼짱’(잘 생긴 얼굴)은 아닙니다. 아니, ‘얼짱’은커녕 박복한 촌로(村老)의 상에 그나마 마마자국으로 박박 얽은 모습은 보통에도 못 미치는 그저 그런 얼굴입니다. 그런데도 젊은 학생들은 그를 닮고 싶은 사람 1호로 꼽고있다는 것입니다.

백범선생은 열 일곱 살 때 해주에서 과거시험에 응시했다 낙방의 고배를 마십니다. 부패할 대로 부패해 매관 매직이 성행하던 당시, 실력으로 겨루기보다 정승의 첩에게 뇌물을 바치는 것이 출세의 첩경이었던 상황에서 그가 급제를 하기란 애시당초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벼슬길을 포기한 백범은 ‘마의상서(麻衣相書)’를 앞에 놓고 두문불출, 관상공부를 하면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살펴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이목구비를 뜯어보아도 어느 한구석 길상(吉相)이라곤 찾지 못 합니다.

그런데 그때 실망한 백범에게 번쩍 뜨이는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상호불여신호 신호불여심호). ‘얼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좋음만 못하다’는 뜻의 이 글을 보고 백범은 용기를 얻어 “마음 좋은 사람이 되자”고 결심을 합니다.

뒤에 선생이 “임시정부의 뜰을 쓰는 문파수(門把守)가 되겠다”하고 “나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나라의 독립”이라고 했던 것도 사실은 젊은 날의 그 다짐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몇 마디의 글이 선생의 인생을 달라지게 한 것입니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잘 생긴 얼굴로 태어나기도 하고 못 생긴 얼굴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흔히들 한 평생 사는 동안 열 번 얼굴이 변한다고 합니다. 잘 생긴 얼굴로 태어난 사람도 후천적으로 얼굴을 가꾸지 않으면 추한 얼굴이 되고 못 생긴 얼굴로 태어날지라도 삶을 통해 자신을 가다듬는다면 아름다운 얼굴로 길이 역사에 남기에 하는 말일 듯 싶습니다.

여기서 얼굴을 가다듬는다함은 성형수술이나 피부 미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바른 삶과 수양을 통해 자신의 인격과 품성을 가다듬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얼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면에서 풍기는 체취에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그윽한 향기, 올곧은 삶에 배인 의연함에 그 사람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이 “나이 마흔을 넘긴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한 것은 외관의 아름다움이 아닌 그런 내적 아름다움을 말한 것입니다.

요즘 날이면 날마다 톱뉴스를 장식하고있는 부패한 정치인들의 후안무치한 얼굴들을 보면서 왜, 젊은이들이 하고많은 인물가운데 유독 백범선생을 닮고싶어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도 현실정치에서 실패한 그를 두고 말입니다.

얼굴을 가꾸어야합니다. 좋은 얼굴이든 나쁜 얼굴이든 올바른 삶을 통해 스스로의 인격을 부단히 가다듬을 때 그 사람의 얼굴은 빛이 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얼굴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그가 갖고있는 인격이라는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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