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의 편집인

몰개념의 도시개발 문제를 다룬 리뷰의 최근 기획기사 ‘도시계획·개발 이대로 좋은갗는 청주시를 비롯해 건설업계 학계의 민감한 반응을 촉발했다. 기자와 가까운 지인들도 “평소 말하고 싶었던 문제” “실생활에 가장 밀접한 문제이면서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아 온 영역”이라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어떤 이는 “주제의 거창함에 비해 기획기사를 일찍 끝낸 것 아니냐” “더 충실히 접근할 수 없었느냐”는 비판도 보내왔다. 기자는 이들의 반응에서 평범한 시민들도 도시의 난개발, 막개발 문제에 얼마나 심각히 동감하고 있는지를 절감했다.

도시는 무릇 사람들이 한 데 몰려 사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사람과 어우러져 생성·발전하는 ‘유기체’다. 아름다운 도시는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과 사랑을 주는 거대한 ‘환경’이다. 따라서 ‘도시는 어떠해야 하는 갗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뻔하다. 다만 도시문제가 우리들 일상에 공기처럼 너무 가까이 있어온 때문인지 이에 대한 우리의 문제의식은 물론 실천적 논의가 제대로 이뤄져 오지 않았던 것뿐이다.

환경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형성되더라도 네거티브적 시각 일색이다. ‘반대’만 있고 반대를 승화시킬 ‘정(正)’의 대안을 찾으려는 변증법적 고민은 찾기 어렵다. 이러니 현대인의 삶을 ‘결정’하는 도시의 생태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담론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점에서 특정 이슈만을 ‘편식’하는 우리 사회의 의제설정 버릇은 차제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이런 사유들로 인해 홀로 감당하기엔 벅찬 주제에 대해 겁없이 도전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도시계획 이대로…’는 당초의 기획의도를 다하지 못했다.

처음엔 시골처럼 ‘바람, 빛, 녹색, 시냇물, 공원, 인본적 건물, 쾌적한 자전거 도로…’ 등 자연과 자연스러움이 녹아 있어 현대인에게 제2의 고향으로 다가갈 수 있는 도시를 가꿔보자고 이야기하려 했다. 40대 이상 장년층이야 고향하면 대부분 농촌을 떠올리지만, 태반이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가야 할 처지인 2세들에게 ‘도시 고향’을 심어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역불급이었다.

도시의 푸른 공간마다 살벌하게도 시멘트 구조물로 채워져 가고 있는 청주를 보고 참을 수 없다며 한 건설인이 토해 낸 열변이 아직 귓가에 쟁쟁하다.
“청주가 인구에 비해 비좁습니까? 용암 2지구만 해도 빈 건물이 허다해요. 그런데도 산남 3지구, 율량지구, 성화지구 등등 빈 공간마다 삽질을 대겠다니… 반면 도심을 보세요. 사직동이나 북문로는 겨울철인 요즘 7시만 넘으면 캄캄합니다. 슬럼화된 지 오래됐어요. 도심 학교들은 취학생이 줄어 비어가고 코딱지만한 신설학교들은 콩나물 시루 아닙니까? 도시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해요. 후대를 위해 개발여력을 남겨두는 여유는 말할 것도 없고요.”

어쩌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생활을 규정하는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문제일 지도 모를 도시문제-도시계획 및 개발정책 철학-에 대한 우리의 접근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 최근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