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암저수지 둑높이기사업 막아낸 진옥경 前 교육위원

진옥경 전 교육위원
보은 쌍암저수지 둑높이기 사업이 전격 취소됐다. 정부는 전체 113개 지구중 주민반대가 심한 지역의 사업을 백지화했다. 아직도 이 사업이 안정적인 농업용수 확보와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가. 또 100억원의 사업자금이 지역주민들에게 골고루 뿌려질 것이라고 보는가. 그런 사람들은 아마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왜 그렇게 주민들이 반대하는가를. 그러나 이는 정부가 4대강 사업추진을 위한 ‘홍보용’으로 포장한 말일 뿐이다. 실제 농업용수가 부족해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이 많은 자금이 주민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전국 113개 저수지 농업용수가 부족하고 못 쓰게 될리도 없다.

정부는 둑 높이기 사업을 받아들이면 보은 쌍암리에 마을진입로 확장과 주차장 신설, 수변공원 조성 등을 ‘당근’으로 제시했으나 이 또한 혈세를 써버리고 마는 사업밖에 되지 못한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주차장과 공원이 들어설 필요 또한 없다. 저수지 둑높이기와 이런 당근책은 아름다운 시골에 덕지덕지 시멘트만 발라놓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전 충북도 교육위원인 진옥경(53)씨는 쌍암저수지 둑높이기 사업을 백지화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진 씨는 지난 2002~2006년에 활동했던 교육위원 중 유일한 야당성향을 지닌 홍일점 위원으로 ‘싸움닭’이라 불렸다. 잘못된 교육정책을 눈감고 못 넘어가 붙은 별명이었다. 이후 조용히 지내던 진 씨는 이번에 주민운동가가 되어 나타났다. 남편인 노경희 충북대 중문과 교수는 ‘쌍암저수지 둑높이기사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위원장, 진 씨는 총무를 맡아 사실상 두 부부가 사업저지운동을 이끌었다. 그 마을에 누가 사느냐에 따라 세상 일은 이렇게 달라진다.

지난 3일 진 씨를 만나기 위해 보은군 회인면 쌍암리를 찾았다. 진 씨 집에 가는 도중 쌍암1리에 저수지가 있었다. 나무로 둘러싸인 저수지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물도 무척 맑고 깨끗했다. 저수지를 두고 한바탕 전쟁을 치른 저간의 사정에 아랑곳없이 자연은 그렇게 순진무구한 얼굴로 서 있었다. 진 씨는 언젠가 바람쐬러 왔다가 저수지와 산이 아름다워 훗날 이 곳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이후 2004년 쌍암2리에 집을 짓고 둥지를 틀었다.

보은군 회인면 쌍암리 쌍암저수지의 아름다운 전경

- 저수지 둑높이기 사업에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이것이 4대강 사업과 관련있는 것인가 아닌가 궁금했다. 여러 사람들의 말과 자료를 종합해볼 때 4대강 사업이라는 확신이 섰다. 농어촌공사에서는 이 사업이 농업용수 확보와 노후된 저수지 보수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돈만 쓰고 마는 꼴이 될 것이다. 물이 부족하니 저수지 용량을 키워달라는 곳은 제외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곳은 4대강과 연결된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지역에 포함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동네 저수지는 용량이 충분하고 노후되지도 않았다. 이제까지 저수지 일대에서 농업용수 부족과 관련해 발생한 민원이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런 사실을 보은군청에서 확인했다. 지난 84년 쌍암저수지가 건설된 후 주민들은 저수지로 인한 냉해와 안개로 과실농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저수지의 규모가 확대되면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모든 사업은 주민들의 동의하에 진행돼야 한다. 농어촌공사가 뭐길래 남의 동네를 파헤치는가.”

그러면서 진 씨는 “남편과 경북 예천 회룡포에서 있었던 4대강반대 교수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회룡포의 모래사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깜짝 놀랐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 그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모두 없어진다고 하더라. 정말 가슴이 많이 아팠다”며 이 곳을 다녀와서 그런지 4대강 사업 얘기만 들어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 말 끝에 노경희 위원장은 “4대강 사업은 돈을 쓰기 위해 강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절대 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분개했다.

- 결국 쌍암리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정부가 손을 들었다. 그동안 어떤 방법으로 반대운동을 해왔는지 궁금하다.
“7월 초순 농어촌공사에서 사전환경성 평가설명회가 있었다. 이후 8월에 마을회의를 열어 둑높이기 사업에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성명서와 탄원서를 작성해 언론에 알리고 대책위를 결성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대책회의를 하고 8월 26일에는 보은장터 집회와 농어촌공사보은지사 규탄대회를 열었다. 서명운동, 농어촌공사 주최 주민설명회 저지, 오마이뉴스에 기사 게재, 군수면담, 충북생명평화회의와 공동 기자회견 등등··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반대운동을 했다.”

- 이런 운동을 할 때 대개 官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주민들을 이간질하거나, 앞장서서 주민여론과 반대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게 가장 힘들었다. 회의석상에서 농어촌공사의 논리를 펴면서 100억짜리 공사가 다른 마을로 가니 우리 마을에서 잡아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민들간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약 80명에 달하는 쌍암리 주민들이 똘똘뭉쳐 반대를 결의했다. 이것이 사업 취소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됐다. 주민들의 일치된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대책위가 지난달 28일 사업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다음날 쌍암저수지 하류 10개 마을 이장들은 둑 높이기 사업을 찬성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쌍암리 주민들이 아니고, 이들이 내건 찬성추진위원회도 급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람들 때문에 언론들은 쌍암리 주민들이 찬반갈등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쌍암리1~3리 주민들은 전원 반대를 결의했다는 게 진 씨 말이다.

- 이제 둑 높이기 반대운동이 마무리됐다. 혹시 다른 주민운동을 계획하고 있는가.
“주변에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더 이상 농사짓기가 어려운 어르신들만 남아 있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그래서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고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우리 마을 주민들은 단호박·고구마·상추·옥수수·호두 등의 농사를 짓는다. 농산물 판로확보를 위해 인터넷을 통한 도농교류사업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중간상인들에게 맡기면 싼 값으로 가져가 주민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쌍암저수지 둑높이기사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쌍암리발전위원회’로 바꿔 마을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권력을 갖는 일보다 주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게 더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시골생활 6년만에 시골사람이 다 돼있었다. 이제 비로소 보은사람이 된 것 같다며 웃는다. 그는 또 “농민들에게서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신념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 신념을 좋은 방향으로 끌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농촌으로 들어와야 한다. 말 그대로 농촌이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주로 돌아오는 길, 가을햇살에 빛나는 쌍암저수지를 보며 아름다운 모습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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