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리포트>“이들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청주시민 60%, 14만여 세대 공동주택 거주
▶그래도 ‘士’자 붙은 주택관리사가 사는 방법 
▶주민대표를 두 달 만에 사임한 30대의 회고
▶내라니 내지만 뜯어봐도 알 수 없는 관리비

나는 지금 이 기사를 쓰고 있다

아버지는 이사를 할 때마다 정성스럽게 문패를 달았다. 문설주에 걸린 문패는 필통처럼 납작한 직육면체에 검정색 에나멜페인트를 칠하고 자개로 이름 석 자를 박아 넣은 것이었다. 대문에는 주소와 가족들의 이름을 새긴 작은 아크릴판을 붙였다. 카드명세서나 스팸 우편물 말고 편지로 기별을 전하던 시절의 얘기다.

아파트 현관문에 문패를 다는 사람은 없다. 앞집 사람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불과 1m 남짓 거리를 두고 살지만 얼굴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얼굴을 안다고 해도 그저 앞집 남자, 윗집 여자일 뿐이다. 같은 아파트 사람들은 같은 번지수를 쓴다. 그런데 아파트 번지수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청주 정도의 도시에서는 ○○동 △△아파트라고하면 다 통하기 때문이다.

백년설이 부른 ‘번지 없는 주막’이란 노래가 있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내리는 이 밤도 애절 구려~’로 시작되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 시대에 은행에 저당 잡힌 아파트를 부여잡고 살아가는 도시민들의 삶이 꼭 그렇다. 나는 이 기사를 쓰고 있다.

청주시민 10명중 6명은 모여 산다

청주시민 10명 가운데 6명은 아파트에 산다. 청주시의 지난 8월말 기준 인구는 외국인 5423명을 포함해 24만3466세대, 65만4410명이다.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은 지난 6월말 기준으로 14만690세대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흥덕구 사직동 푸르지오캐슬 3599세대와 복대1동 지웰시티 2164세대의 입주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공동주택 세대의 비율은 통계보다 다소 높아졌을 것이다. 청주시의 세대 당 평균 거주자는 2.7명이다. 따라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6월을 기준으로 약 37만9863명이며, 이는 청주시 전체인구의 58%에 이른다. 

공동주택에 산다고 다 똑같은 처지는 아니다. 5층 이상 아파트는 13만3380세대이고 4층 이하 연립주택은 4640세대다. 4층 이하의 공동주택이라고 전부 연립주택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다. 단지 면적이 총 660㎡를 초과하면 연립주택이고 그 이하면 다세대주택이라고 부른다. 청주의 다세대주택은 모두 2670세대다. 그래도 나(박성철·가명)는 아파트 주민이다. 25년 전에 지은 5층짜리 17평 아파트에 산다. 대출 1000만원을 끼고 4500만원에 샀다.

300만원 받는 동료가 부럽지 않다

나(김학수·가명)는 경력 8년 차 아파트 관리소장이다. 사람들은 나를 소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직책이 소장일 뿐 실제 내 직업은 주택관리사(住宅管理士)다. 변호사, 회계사처럼 ‘사(士)’자가 붙는 직업이지만 그만큼 자긍심도 없고 월급도 250만원 선이다.

나는 줄곧 500세대 이하만 관리해 왔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30대 중반에 주택관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3년 동안은 주택관리사보의 자격으로 500세대 이하만 관리해야 한다. ‘보(補)’자를 뗐음에도 작은 아파트를 고집하는 것은 아파트가 클수록 골치가 아픈 일이 많기 때문이다.  

갈등의 대척점은 입주자대표회의다. 입주자 대표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정해져 있다. 했던 사람들이 또 하고 아파트를 옮겨도 또 대표를 맡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선수(?)들은 업자들에게 노출돼 있다. 각종 입찰과 관련해 매수설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래된 아파트는 패를 갈라 싸운다. 전에 일했던 아파트가 있던 동네는 고소·고발 건이 없는 아파트가 없었다. 나는 300만원을 받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동료 소장이 부럽지 않다.

나는 두 달 만에 동대표를 사임했다

5년 전에 아파트 주민대표(동대표)를 맡았다가 두 달 만에 그만둔 전력이 있다. 아파트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있어 대표를 맡았던 것인데, 처음 참석한 입주자대표회의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아파트 화단 등을 없애고 주차장을 만드는 것이 안건이었는데 고함과 욕설 이 난무했다.

입주 10년이 넘는 아파트라 동대표들 간에도 친소관계가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무소속인 나는 더욱 입을 열 수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친 관리소장계와 반 소장계로 나뉘어 싸우는 것이었다. 동대표 모임이 식당에서 있다고 해서 나갔는데 절반만 모여 있었다. 나중에 집에 있는데 반대편 사람이 찾아왔다. 다방에 불려나갔는데 이번에는 아파트 보수공사 낙찰과 관련해 특정업체를 밀어달라는 귓속말을 들어야 했다.

10여명이 넘는 주민대표 가운데 나(정주하·가명)처럼 40대 이하는 두 명뿐이었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몇 있지만 대부분이 정년퇴임한 예비역들이었다. 전직 공무원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사임했다.

관리비 고지서를 처음으로 뜯어보다

8월분 아파트 관리비가 나왔다. 당월 부과액 51만○○○○원.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몇 번이고 눈을 씻고 쳐다봤지만 금액은 틀림이 없었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에 에어컨을 켜고 잔 날이 많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처음으로 고지서를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

전기료, 수도료 등은 쓴 만큼 내는 것이라 따질 것%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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