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현 정치부장

2003년 키워드중의 하나가 ‘얼짱’이다. 주로 청소년들 사이에서 얼굴이 ‘짱’이다라는 뜻으로 통하는 이 신조어는 단순하게 ‘얼굴이 잘 생겼다’는 그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띠고 있다. 며칠전 우연하게도 이 ‘얼짱’을 주제로 한 TV의 기획프로를 보게됐다.

인터넷을 통해 얼짱으로 등극(?)한 남자애들이 처음으로 팬앞에 모습을 내보이는 행사가 소재였다. 이날 나타난 얼짱들은 요즘 잘 나가는 연예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전력도 없지만 10대 소녀팬들의 환호는 엄청났다. 곱상하게 잘 생긴 얼굴, 어찌보면 남자로 세상을 살아 오면서 한번도 험한 꼴을 경험하지 않았을 것 같은 얼짱들은 이날 분명 다중의 추앙을 받는 스타가 되어 있었다.

문제의 얼짱 풍속도는 우리 사회의 변화된 대중문화를 잘 대변하고 있다. 과거의 대중성이 특정인에 대한 다중의 귀의(歸依)나 동화(同和)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지금의 대중성은 오히려 다중 개개인의 추구(追求)와 몰입(沒入)에 의해 형성되는 측면이 강하다. 지난날 대중성을 확보한 스타는 이미 그에 걸맞는 기량과 역량을 갖춘후 다중에게 어필했지만 지금의 스타는 되레 개인의 능력보다는 다중의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70년대 한국의 여대생들을 황홀하게 만든 팝가수 크리프리차드는 이미 미국 뿐 아니라 세계적 스타로 인정받은 다음에 한국에 왔었다. 때문에 남산 야외음악당을 사상 초유의 활홍경으로 몰아 넣은 당시 여대생들의 환호는 어찌보면 스타에 의해 강요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얼짱’들은 철저하게 관중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당연히 얼짱들의 참모습, 소위 기량이나 ‘내성(內性)은 사람들한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요즘의 스타가 어느날 반짝하고 나타났다가 또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는 이유를 바로 이런데서 찾아 봐야 할 것이다. 얼마전 TV에 나타나 환호하는 팬들 앞에서 얼굴이 잔뜩 상기된 얼짱들의 수명이 과연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내적 성숙과는 무관하게 지금 스타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정부의 핵심코드인 강금실장관이 참여정부에 쓴 소리를 했다. 참여정부의 지지도가 낮은 이유는 형식과 내용에서 기량이 떨어지고 전문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런 발언은 그동안 야당이 죽어라고 해코지를 가한 참여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을 일정부분 인정한 꼴이다. 엄밀히 말해 지난 2000년 16대 총선의 386 열풍과 지난해 대선 때의 ‘노짱’ 신드롬은 지금의 얼짱문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유권자들이 386에 환호하고 노짱의 코드에 열광한 것은 당사자들의 내적 ‘정체성’과는 별개로 정치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이 스스로 추구하고 거기에 몰입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들의 실체가, 제 역할을 하지못한 386 국회의원에 대한 실망감이나 집권 1년이 다 되도록 국가적 비전 제시에 애매모호한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다시 도마 위에 올려지는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노무현대통령이 내각과 청와대를 개편하면서 소위 코드인사보다는 전문가를 중용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한 때’ 부동의 노무현지킴이었던 강준만 교수가 ‘영원한’ 노무현지킴이 유시민의원에게 어깃장을 놓은 것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어느 한 쪽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유시민이 초심의 ‘참신함’을 유지하기 위해선 노짱에 대한 계속된 몰입 못지않게 이젠 호흡을 조정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