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실 걸어 잠그고 평가 선택권요구 부모모임 외면
도교육청 "민원실 이용해야"…융통성 없는 응대 지적도
지난 6.2지방 선거에서 3선 고지에 오른 이기용(65) 교육감은 제15대 충북도교육감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가진 직원 월례조회에서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한 것도 가장 똑똑한 것도 아니다. 잘 적응하는 것, 변화하는 것만이 살아 남는 것이다. 직원들도 무사안일, 무소신, 이완 등 전형적인 관료주의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했다.
또 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소통이 안 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직원 상하간은 물론 부서 간에 소통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 현장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항상 학생을 교육의 중심에 놓고 나부터 변화하고 창의를 선도하며 교육현장과 늘 소통하자"며 "학생이 행복하고 학부모가 만족하며 교육가족이 보람을 느끼는 행복한 교육 세상이 펼쳐지기를 소망한다"고 전한 바 있다.
이는 유권자의 46.3%라는 절반도 안 되는 지지로 당선된 교육감으로서 "모두를 포용 하겠다"는 얘기로 들렸었다. 하지만 취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 같은 당부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지난 7일 오전, 13·14일 일제히 치러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앞두고 '시험지옥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부모모임(이하 부모모임)'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교육감실을 찾았다.
교육주체 학부모 민원인 취급 구태 여전
부모모임은 "일방적인 교육행정이 아닌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선택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 같은 '부모 1000인의 의견'을 전달 할 수 없었다. 교육감실은 굳게 닫혀 있었고 교육공무원이 가로막고 나섰기 때문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정해진 행정절차에 따라 민원실을 통해 접수하라"는 것이었다.
민선교육감실의 높은 문턱을 실감한 부모들은 분을 참지 못했다. 부모모임은 "교육의 주체는 학생, 학부모, 교사인데 민선교육감이 충북교육을 걱정해 찾은 부모들의 만남을 거부한 것"이라며 "교육감 면담을 요청하고 기자회견을 한 학부형이 민원실로 접수하냐"고 꼬집었다. 한마디로 충북 민선 교육감실은 적어도 이날만큼은 불통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날 이 교육감은 도의회가 열려 부재중이었다.
하지만 비서실이나 부교육감 등이 학부모들을 맞이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또 교육감 비서실에서 의견서를 받은 뒤 민원실로 접수하는 융통성은 발휘할 수 없었을까. 도교육청 관계자는 "선례가 되면 수도 없이 민원인이 찾아오기 때문에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즉 충북교육을 걱정하는 학부모들을 단순 민원인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도교육청의 현실이란 얘기다.
이 교육감은 지난 1일 취임식이후 기자실을 찾았을 때에 3선 달성을 축하하는 기자들의 인사에 의외의 답변을 했다. 그는 "13·14대 때는 마냥 기뻤는데 15대는 그렇지 못하다. 선거후유증 등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항간에는 "이 교육감이 유권자의 절반이상이 충북교육의 변화를 바랐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부담을 갖고 있다"는 해석까지 내 놓고 있다.
변화 바라는 교육감 속내 못읽는 관료
또 임기를 다 채울 경우 재임기간도 8년 8개월여로 가장 길다. 이는 매관매직 등으로 불명예 하차한 김영세 교육감의 8년여를 앞서는 새로운 기록이다. 그만큼 도민들의 기대도 크다는 얘기다. 이 교육감은 지난 2005년 6월20일 김천호 교육감의 갑작스런 유고로 제13대 교육감에 올랐다. 김 교육감이 관사에서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한데는 옥천의 한 여중 교감의 투신자살이란 뒷얘기가 있다.
제34회 전국소년체전 개막식 행사 연주를 맡았던 옥천의 한 여중 관악부를 격려하기 위해 내려갔던 김 교육감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닦을 수건이 걸려 있지 않아 학교장이 손수건을 건넨 것에서 비롯됐다. 나이어린 학교장은 준비소홀에 대해 정년을 1년 앞둔 교감을 채근했고 이것이 언론에 '교육감 과잉영접 논란'으로 보도되면서 경유서와 사실 확인서를 쓰게 된 교감이 끝내 투신자살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교육계는 "뿌리 깊은 권위주의 문화와 교육 당국에 만연한 행정중심주의(관료주의) 행태로 빚어진 갈등이 초래한 노교사의 죽음이 안타깝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리고 4년여 만인 지난해 4월 남달리 체구가 큰 이 교육감은 '대발이 논란'을 빚었다. 이 교육감의 일선학교 순방을 앞두고 도교육청 초등교육과에서 '285㎜ 실내화와 녹차 찻잔세트'를 준비하라고 이메일을 보낸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낮은 득표율 당선됐지만 기회줘야"
더구나 학교장은 2분여 동안 서서 특색사업 위주로 보고를 하고 수업에 지장이 없는 교사들은 영접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충북교육연대는 "실내화 주머니를 든 교육감이 보고 싶다"며 실내화 주머니와 녹차 찻잔을 도교육청에 전달하려다 무위에 그치기도 했다. 당시 충북교육연대는 "교육감이 학교방문 시 사용할 물품들을 일선학교에 준비하도록 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적인 작태이다"며 "막대한 비용은 세금을 낭비하는 처사"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난 현재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부정행위를 한 일부 교사들이 적발되어 징계를 기다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학교 서열화가 부른 부작용이란 것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자는 어느 정도 권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 교육감의 생각이다"며 "온유한 성격에 평소 직원들에게 화를 내는 법이 없는 이 교육감은 직원들의 대소사를 챙길 정도로 권위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또 "6월 한 달 동안은 당선자 신분으로 예고 없이 일선학교를 돌며 격의 없는 대화를 하기도 했다. 이는 일선학교가 교육감 순방을 준비하느라 번거로울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며 "교육감께서도 선거기간 동안에 당비 납부 교사 징계와 교육청 기구개편을 강행한 정부에 적지 않은 실망을 하고 있다. 절반이 안 되는 지지율로 당선된 교육감이라 할지라도 이제 기회를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