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옥구슬처럼 구른다’고 해서 붙여진 수옥폭포 ‘장관’
주막거리, 보부상의 애환 담긴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무대

▲ 깎아지른 절벽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와 울창한 숲이 장관인 수옥폭포.
충북 괴산과 충주, 경북 문경이 만나는 지점은 몹시 험하다. 우리 국토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이 도 경계를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역은 자연스럽게 고갯길이 발달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뚫린 하늘재(계립령), 새재, 이화령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조선시대 새롭게 뚫린 새재다. 새재는 문경과 괴산에 걸쳐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문경 쪽만 둘러본다. 문경 구간은 흙길이지만, 괴산 쪽은 포장도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산 쪽에도 숨은 볼거리가 많고, 조령산자연휴양림 숲길을 이용하면 걷기도 좋다.

TV 드라마 단골 촬영지

괴산 쪽 새재 걷기코스는 수옥폭포를 들머리로 새재 고갯마루의 주흘관(조령3관문)까지 올랐다가, 조령산자연휴양림을 거쳐 내려오는 길이다. 거리는 약 7㎞, 2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수옥폭포는 큰 도로와 가까워 별로 기대하지 않지만, 일단 폭포 앞에 서면 입이 쩍 벌어지는 절경이 펼쳐진다.

높이 20m의 깎아지른 암벽이 병풍처럼 두르고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있다. 풍부한 물줄기가 크고 작은 바위에서 부서지면서 천둥소리를 내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수옥(水玉)이란 물이 옥구슬처럼 구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하다 수옥폭포에 들렀다가 그 비경에 반해 한참 머물렀다고 전해지고, 근래에는 TV 드라마 <다모>, <선덕여왕> 등을 여기서 촬영했다. 폭포 아래에는 큰 소가 자리 잡아 물놀이하기에 좋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까지 이른 더위에 물속에 들어가 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늘에 앉아 발을 담그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수옥폭포를 지나면 저수지를 끼고 돈다. 모퉁이를 돌자 둑방 뒤로 수려한 신선봉 암봉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문경 새재 입구에서 펼쳐진 주흘산의 산세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신선봉 꼭대기와 눈을 맞추고 길을 나서면 몽골 천막들이 들어선 내몽고민속촌을 만난다. 괴산군이 의욕적으로 한·중 합작으로 추진한 문화 관광지인데, 지금은 식당으로 전락했다. 흥천사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새재길에 오른다. 비록 도로는 포장됐지만, 울창한 숲길이 그윽하다.

▲ 새재 고갯마루 주흘관에서 본 드넓은 하늘과 조령산.
▲ 문경에서 주흘관으로 들어서는 탐방객들.
나는 새도 쉬어 넘는 고개라는 뜻인 새재는 조선 태종 때에 새로 뚫린 길이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려면 새재 외에도 죽령과 추풍령, 계립령(하늘재) 등을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은 유독 문경새재를 선호했다. 죽령은 너무 멀었고, 추풍령은 과거시험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남의 선비들조차 멀고 먼 이 길을 휘휘 돌아갔다고 하니, 새재는 곧 소망의 길이란 믿음이 조선 팔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모양이다.

숲길 옆으로 식당들이 자리 잡은 마을은 고사리다. 이곳은 예로부터 보부상, 과거시험 후 돌아가는 선비 등이 머물던 주막거리였다. 떠돌이 보부상들의 애환을 질퍽하게 풀어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가 첫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여기서 시작한 소설의 무대는 서울은 물론, 남으로 경주·하동·군산·강경, 북으로 평양·원산에 이르기까지 혈관처럼 뻗어 있는 이 땅의 크고 작은 길들로 이어진다.

과거 낙방 후 돌아가는 선비의 발걸음

고사리를 지나면 호젓한 오솔길이 나온다. 옛 새재길이 조금 남은 것이다. 호젓한 흙길로 들어서니 발바닥이 좋아하지만, 곧 도로를 만나 아쉽다. 옛길을 최대한 복원한다면 새재 옛길이 본연의 모습을 찾고, 괴산 쪽으로도 많은 사람이 찾을 것이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 앞으로 듬직한 주흘관이 버티고 섰다. 그 앞에 ‘문경새재 과거 길’이란 돌비석이 보인다. 과거에 급제한 선비는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이 문을 통과했을 것이고, 낙방한 선비는 축 처져 비실비실 넘어갔으리라.

눈을 밟고 얼음 잡으며 조령관에 올라
관문 위에서 가물가물 고향을 바라보네
아득히 먼 구름 한 점 놓인 저 먼 곳에
노모께서 문에 기대어 날 바래고 계시리
- 김성탁(1684~1747)

이 시를 썼을 당시 김성탁은 과거에 낙방했던 모양이다. 노모 걱정에 쉬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효심이 가득하면 뜻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김성탁은 훗날 과거에 급제해 어사화를 쓰고 주흘관을 넘었다.

새재 고갯마루는 백두대간 조령산에서 마패봉으로 중간쯤의 평평한 안부다. 성문과 숲이 어우러진 드넓은 평지는 평화롭다. 예전에 마셨던 조령약수 물맛이 기억나 약수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약수는 말라 있었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고원의 평화를 만끽하고 슬슬 온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주흘관을 나오면 조령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서는 길이 보인다. 걷기 좋은 휴양림 비포장 숲길을 한동안 따르면 다시 고사리 마을에 도착한다.  / 진우석 프리랜서 여행작가

-가는 길과 맛집
수옥폭포에 가려면 수안보를 기점으로 한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수안보행 버스는 06:40~19:40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수안보에서 괴산행 버스(07:50 09:10 11:10 12:25 14:30 16:00 17:40 19:20)를 타고 수옥정 입구에서 내린다. 청주터미널에서는 괴산행 버스(15:01 16:30 18:10)를 타고 수옥정 입구에서 내린다. 고사리에서 가까운 수안보의 투가리식당(043-846-0575)은 올갱이국밥이 소문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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