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재미있게 만든 ‘승부의 달인’들

마을 이장부터 대통령 까지 선거를 치르고 나면 갖가지 진기록이 나온다. 지난 2일 실시된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눈에 띄는 기록과 화제의 당선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선 도지사에 뽑힌 민주당 이시종 당선자는 선거불패의 신화를 이어갔다. 이 당선자는 1971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생활을 하다 지난 1995년 충주시장에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3차례 선거를 통해 시장직을 이어갔다. 국회의원에 출사표를 던진 뒤에도 17·18대 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당선됐으며 이번 도지사 선거까지 6번 출마해 단 한번도 실패하지 않은 기록을 세웠다.

특히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장이 유력했던 현역 의원 신분을 버리고 모험에 가까운 도전을 감행했으며 선거운동 기간 내내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정우택 후보에 밀리다 막판 연전극을 이끌어 ‘역시 이시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시장·군수 중에도 화제를 모은 이색당선자들이 다수 배출됐다.
괴산군 임각수 당선자는 무소속 출마를 고수, 60%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고 정상혁 보은군수 당선자는 출마 직전 미래연합에서 자유선진당으로 당을 갈아타는 무리수에 가까운 행보에도 승리해 이 지역 맹주 이용희 의원의 건재를 과시했다.

예상을 뒤엎은 당선자들로 나왔다.
민주당 우건도 충주시장 당선자와 홍성열 증평군수 당선자는 당에서 조차 열세지역으로 분류했지만 막판 반 한나라당 바람이 불며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특히 충주시장 선거의 경우 현직 시장과 전직 부시장의 대결이라는 점, 두 후보간 껄끄러운 인연이 회자되면서 결과에 이목이 모아지며 도내 최대 관심 지역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각종 기록과 이색 당선자들은 단체장 보다 지방의회 선거에서 더 많이 쏟아졌다.

시·군의회 의원 선거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당선자가 도내에서 배출됐는가 하면 형제 당선자도 두 집안에서 나왔다. 할머니와 주부들 만으로 선거운동을 벌여 당선된 후보와 여성끼리 맞붙어 화제를 모은 선거구도 있었다.

연철흠 당선자, 전국 최다득표율 영예

▲ 전국 시·군의회 선거 최고 지지율을 기록하며 3선에 성공한 민주당 연철흠 당선자.
연철흠 청주시의회 부의장은 청주시자선거구에 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해 당선, 3선에 성공했다.

연 당선자가 얻은 표는 1만4615표로 투표에 참가한 2만5132명 중 58.15%가 지지, 기초의원중 전국 최다득표왕이 됐다. 이는 2위로 당선된 한나라당 서명희 당선자가 얻은 6666표의 두배가 훨씬 넘는 것으로 지난 8년간 확실하게 텃밭을 일궜음을 입증했다.

연 당선자는 충북지역 민주화 운동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사람이다. 청주대학교 지역개발학과(현 도시계획학 전공) 재학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졸업 후에도 청주민청, 통일시대충북연대 등 왕성하게 사회단체 활동을 전개했다.

2002년 지방선거를 통해 청주시의원에 당선된 뒤에도 (사)남북누리 나눔이사, 청주다문화지원센터 운영위원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범위를 넓히며 생활정치인으로 자리를 굳혔다.

연 당선자는 “시·군의원 최다득표율의 지지를 보내주신 주민들께 감사드린다. 하지만 기쁨과 함께 더욱 일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연철흠 개인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청주시의회에서부터 집권여당의 독주를 막아달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자만하지 않고 초선의원의 심정으로 돌아가 더욱 분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충북도의회 선거에서는 청주제7선거구의 민주당 임헌경 후보가 전체 투표 2만2698표 중 1만4563표를 얻어 도내 최고인 64.15% 지지율로 당선됐다. 2위 한나라당 남동우 후보는 8135표를 얻어 35.84%의 지지를 얻는데 그쳤다.

2명을 뽑는 증평군의원 선거에서는 증평나 선거구 무소속 박석규 후보가 단 456표를 얻어 전국 최소득표로 당선됐다. 6명의 후보가 출마한 이 지역 총 투표수는 2920표로 1121표를 얻은 민주당 연종석 후보에 이어 박 후보가 당선된 것. 또 박 당선자와 3위 연규현 후보의 표 차는 36표에 불과했다.

‘가문의 영광’ 형제 당선자들

▲ 형제가 나란히 당선돼 화제가 된 장천배(증평군의원)·선배(충북도의원), 박상필(충북도교육의원)·상인(청주시의원) 당선자 형제들.
한 집안에서 동시에 두 명의 지방의원이 탄생했다면 분명히 가문의 영광이다. 지역주민들이 한 표 한 표 던져 선택한 것인 만큼 그 의미도 훨씬 크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도내에서는 두 집안의 형제가 나란히 당선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증평군의원에 당선된 민주당 장천배(51) 후보와 충북도의원에 당선된 같은 당 장선배(48) 후보다.

장천배 당선자는 김종률 전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동생 장선배 당선자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가 정치와 인연을 맺은 것도 동생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청주기계공고와 충주대를 졸업한 뒤 고향 증평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환경단체 활동도 활발히 펼쳐왔다. (사)그린훼밀리환경운동연합 증평군지회장으로 환경정화활동과 야생동물 먹이주기, 청소년 캠프 등 환경교육 등을 진행해 왔다.

그러다 동생 장선배 당선자가 김종률 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발탁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지난해 10월 치러진 이 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동생을 대신해 선거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동생 장선배 당선자는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내기 전 이미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노조위원장으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다. 그가 노조활동을 하던 90년대 초중반은 전국적인 모범사례로 꼽힐 만큼 충청일보 노조의 전성기로 통했다.
그러다 보좌관을 맡아 청주 신흥고 동창 김종률 전 의원을 돕게 되면서 본인이 직접 출마까지 하게 된 것이다.

8남매의 맏이와 막내인 충북도 교육의원 박상필(63) 후보와 청주시의원 박상인(47) 후보 형제도 나란히 당선돼 ‘가문의 영광’ 대열에 합류했다.
박상필 당선자는 그동안 정치와는 무관하게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 강서초·남평초 교장 등 줄곧 교육현장에서 일해 왔으며 지난 2월 퇴임 직전에는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을 지냈다.

이에 반해 동생 박상인 당선자는 청주시의회 재선 의원으로 일찌감치 생활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박 당선자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서청주새마을금고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또한 충북도양궁협회 부회장, 한국지적장애인협회 충북지회 자문위원, (사)책사랑운동본부법인 이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형님(박상필 당선자)과는 지역문제나 정치 현안에 대해 가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번에 형님이 교육의원에 당선되신 만큼 청주시 의정활동과 연계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연구하고 노력할 계획이다. 오랜 공직생활을 마치고 교육의원으로 새출발 하시는 형님께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할머니 파워 앞세운 윤송현 당선자

▲ 노인 일자리 창출을 상징하듯 할머니들을 대거 선거운동으로 참여시켜 당선된 윤송현 청주시의원 당선자.
민주당 공천을 받아 청주시의회 다선거구에서 당선된 윤송현(48) 후보는 이색적인 선거운동이 화제가 됐다. 선거운동 대부분을 할머니들에게 의존했던 것.

당초 선거사무장까지 할머니나 혹은 할아버지에게 맡길 생각이었지만 여의치 않아 부인 오혜자씨가 맡았을 뿐 나머지 선거사무원은 모두 할머니 일색이었다.
윤 당선자가 선거운동을 할머니들이에게 의존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노인들의 일자리 창출이고 또 본인 스스로도 이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 당선자의 현재 공식직업은 용암동 건영아파트 뒤편 상가의 ‘손 큰 할매만두’ 대표. 이곳은 여느 만두집과 달리 일흔을 넘긴 20여명의 할머니들이 직접 빚은 만두를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윤씨가 오래전부터 계획해 오던 할머니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오전과 오후로 나눠 할머니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할머니들이 빚은 만두를 판매하는 방식인 것.

그는 선거운동에도 이런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했다. 선거운동은 후보 본인과 선거사무원으로 구분해 진행하는 게 보통이다. 후보는 일일이 상가를 방문한다던지 명함을 돌리고 선거사무원은 출퇴근 시간 등 길거리 인사에 동원된다. 이 때 로고송에 맞춰 율동을 선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윤 당선자 선거운동원들은 모두 환갑을 넘긴 할머니들이다 보니 선거운동도 차별화해야 했다. 발랄한 율동을 기대하기 힘들었고 하루종일 활동하는 것도 버거웠던 것이다.
윤 당선자는 과감히 율동을 없애고 선거운동원들의 활동시간도 출근길 인사 2시간, 퇴근길 3시간 등 5시간으로 대폭 줄였다.

하지만 대신 다른 곳에서 그 이상의 효과가 나타났다는 게 윤 당선자의 설명이다.
그는 “할머니들은 낯을 가리지 않는다. 마지 못해 동원됐다는 느낌 없이 골목골목 누비며 후보를 홍보하는데 발을 벗고 나섰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하루 5시간 활동에 그쳤지만 할머니들은 24시간 후보를 알리고 선거운동에 몰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인들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뜻에서 할머니들을 선거사무원으로 활용했다. 또 이것이 관심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노인 일자리 창출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믿었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민주당 ‘나’번 기호를 받았지만 20%가 넘는 지지율로 3명을 뽑는 선거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윤 당선자는 이색적인 선거운동 뿐 아니라 특이한 이력도 화제가 됐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화려한 학력과 달리 만두집 사장이라는 직업이 결코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 여기에 부인과 함께 어린이들을 상대로 초롱이네 도서관을 운영하며 스스로 ‘총대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하고 있는 점도 이색적이다.

몇 해 전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됐던 생활정보지 화제신문 근무 당시 청주시 생활지도를 자체 제작해 큰 반향을 얻는 등 주변에서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맨으로도 통한다.

참패 한나라당의 값진 의석

▲ 황영호 청주시의원 당선자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참패라는 분석에 이의를 달 수 없을 정도로 갖고 있던 의석 대부분을 민주당 등 야당에게 내줬다.
충북도의회와 청주시의회 원구성에서 의장 등 요직을 민주당에 양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오는 7월 개원하는 제9대 충북도의회의 경우 교육의원을 제외한 31개의 의석중에 한나라당은 고작 4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지역구에서 임현(66·영동), 김종필(46·진천), 김봉희(60·증평) 후보 등 3명이 당선됐고 비례대표로 김양희(55) 후보가 당선됐을 뿐이다.

특히 이들중 재선의원은 임현 당선자가 유일해 31석중 29석을 석권했던 제8대에 비해 한나라당의 영향력은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게 됐다.

청주시의회는 사정이 좀 낫지만 위축된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23명의 지역구 의원중 김명수·박상인·이대성·황영호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고 비례대표였던 서명희 의원도 지역구에 도전해 성공했다. 여기에 도의회에서 시의회로 갈아탄 최광옥 당선자와 처음 의회 뱃지를 달게된 김성균·이관우 당선자, 비례대표 오수희 당선자 까지 합쳐도 9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로서 한나라당은 원구성에서부터 크게 밀리게 됐다. 지금껏 다수당으로서 석권해 오던 의장 자리도 내줄 가능성이 높으며 상임위원장 배정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힘들 전망이다.
청주시의회 한나라당 소속 당선자들은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같은 상임위에 들어가 한목소리를 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나라당 소속 당선자들은 지방의회의 경우 정당이나 정치이슈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며 의정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황영호 청주시의원 당선자는 “원구성에서 다수당이 아니기 때문에 영향력이 줄어들 가능성은 있지만 의정활동 자체만 놓고 본다면 소속 정당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집행부 견제와 감시, 입법활동 등 의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걸(女傑)의 대결 승리한 최미애 당선자

▲ 현역 여성 충북도의원 끼리 맞붙은 청주 제9선거구에서 여성운동가 출신 민주당 최미애 의원이 당선됐다.
여성운동가와 여성경제인이 만나면 누가 이길까. 친화력을 앞세운 재선의원과 철학과 원칙으로 무장한 현역의원이 만나면 누가 이길까.
충북도의원 선거 청주제9선거구에서 만난 한나라당 정윤숙 후보와 민주당 최미애 후보를 두고 한 말이다.

두 후보 모두 지역 여성계에서 내노라하는 인물이며 정치적 성향과 성격, 이력까지 극명하게 대비되는 터라 그 결과에 관심이 집중됐던 것. 정 후보는 여성 벤처기업인으로 여성경제계 대표주자 격이고 최 후보는 여성민우회 상임대표를 역임하는 등 지역의 대표 여성운동가다.

결과는 민주당 최미애 후보의 승리. 최 후보는 2만5239표중 1만2250표로 48.53%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정 후보와의 표 차이는 4813표로 당초 박빙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비교적 많은 표 차를 기록했다.

최 후보 측은 반한나라당 정서와 초중생 무상급식 등 실질적인 공약과 정책이 유권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 후보 측 인사는 “여성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게 승리의 한 원인이라고 본다. 실제 대부분의 선거사무를 여성들이 맡아 진행했으며 주민들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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