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것은 마치 흰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순식간이다(人生天地間 若白駒之過).”

세월이 덧없이 빠르다는 이 말은 사기(史記)’ ‘유후세가(留候世家)’에도 나옵니다 “인생 한 세상은 마치 흰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다.(人生 一世間 如白駒過隙)”고 말입니다.

빠르게 달리는 흰말을 문틈으로 본다는 ‘백구과극(白駒過隙)’은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달리는 말에 비유한 고사로 삼국지 같은 중국의 고전에 자주 등장합니다.

2003년이 덧없이 저물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은 것이 바로 엊그제였던 듯 한데 어느덧 또 한해가 훌쩍 가버렸으니 아닌게 아니라 분류(奔流)와 같은 세월의 흐름이 백구과극 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올 한해도 다사다난했습니다. 어느 해라고 태평한 해가 있었으랴만 올해 역시 이런저런 사건으로 조용한 날이 없었을 만큼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국내적으로는 개혁성향의 새 정권이 들어섰고 나라밖에서는 미국의 이라크침공으로 화약냄새가 메케했던 불안한 한해였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나라에는 새 바람이 불고 국민들도 새로운 기대에 들뜨게 마련이지만 참여정부 10개월 동안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을 만큼 사회적 갈등과 정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여야갈등, 노사갈등, 새만금갈등, 나이스갈등, 핵폐기장갈등, 이라크파병갈등…등등 온갖 대립과 갈등으로 날이 새고 날이 저물었습니다.

여소 야대로 야당의 힘이 무소불위였던 탓도 있었지만 대통령이 취임 몇 달만에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하소연을 할 정도였으니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다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상황이 어떠했건 국정혼란의 책임은 전적으로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에 있느니 만큼 변명의 여지는 없다하겠습니다.

이라크침공으로 드러난 미국의 패권주의는 강대국에 굴종하지 않는 약소국의 운명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것이 동물의 세계일진대 인간의 세계라고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힘센 자의 논리만이 횡행하는 국제사회.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든다는 인류의 소박한 희망은 여전히 아득하기만 합니다.

12월 들어와 도심의 음식점들은 예외 없이 망년회 특수로 붐빕니다. 어젯밤도, 오늘밤도 이 골목 저 골목에서는 우렁찬 “위하여!”소리가 메아리칩니다. 힘겨웠던 한해를 보내면서 가까운 친지들, 직장동료들이 자리를 함께 해 회포를 푸는 모습은 각박한 일상 속의 정겨운 풍경이기도 합니다. 일잔능소만고수(一盞能消萬古愁)라, 한잔 술에 만고의 시름을 씻는다는 옛말도 있는 만큼 글자대로 아픈 상처를 잊을 수만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약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질펀한 술자리에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분위기, 폭음에 2차, 3차,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도를 넘는 망년회라면 아무래도 정겹다고만 할 일은 아닐 듯 합니다. 또한 과음으로 추한 모습을 보이고 몸을 해치는 일마저 없지 않으니 망년회(忘年會)가 망년회(亡年會)가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정, 송년이 아쉽다면 차분히 한 해를 되돌아보는 조촐한 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한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지, 또 잘 한 일은 무엇이었고 잘 못한 일은 무엇이었는지, 나의 기쁨을 위해 남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한 적은 없었는지 두루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그처럼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다짐으로 기대 속에 다가오는 새 해를 맞이하면 좋을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세월은 백구과극입니다. 해는 서산에 지는데 길은 멀고 짐은 무겁다(西山日暮 重任途遠)는 옛 시구가 떠오릅니다. 이것이 필자만의 심정은 아닐 것입니다. 送舊迎新.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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