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교육공동체 ‘공룡’, 도서관․카페․교육장 운영
청주 사직동에 터잡고 ‘주민들과 함께 살기’ 실천

'공룡’은 생활교육공동체다. 공룡이란 단어는 소박하게도 ‘공부해서 용되자’의 줄임말이다. 공룡은 최근 사직동 변전소 골목에 터를 잡았다. 사회교육센터 일하는 사람들의 부설기관인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은 박영길, 이혜린, 정종민, 민보선 씨가 합류해 2층 건물 약 132m²에 카페, 작업장, 도서관 등의 공간을 마련했다.

공룡은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고 성장하기를 꿈꾼다. 그래서 공룡의 활동가들은 지역주민으로서 기꺼이 살기를 택했다. 공룡은 반자본주의 방식으로 지역에서 함께 먹고 살기를 실천한다. 활동가들은 농사를 짓고, 맥주를 빚으며 건물도 고친다. 화폐가 아닌 노동으로서 자급자족을 실천한다.

“감정보다 삶․행동의 진보를”

이러한 공룡의 출발은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교육 센터 일하는 사람들 노리울 공부방에서 공동체 미디어 교육을 담당했던 활동가들이 모여 청주에서 지역공동체 활동을 고민하다가 ‘공부모임 공룡’을 만들게 됐고, 오랜 논의 끝에 마을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은 왼쪽부터 정종민, 민보선 이혜린, 박영길 씨가 합류해 2층 건물에 카페, 작업장, 도서관 등의 공간을 마련하고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지역민 운동을 펼친다. / 사진=육성준 기자
지난해 9월부터 마을에서 생활과 교육, 작업을 함께 벌일 수 있는 공동체 구성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본격적인 공사는 3월에 시작됐다. 동네 주민들이 공사 진행을 걱정할 정도로 더디게 진행됐다.

건물외관은 폐잡목을 활용해 꾸미고, 2층은 복층 건물로 지어 도서관과 사무실을 분리했다. 또 카페 탁자를 직접 만들고, 의자는 인근에서 주어왔다. ‘흔들릴 때마다 못을 박았다’는 탁자는 여전히 삐뚤빼뚤하다.

박영길 사무국장은 “삶에 천착하지 않는 시민운동은 언젠가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진보가 향후 10년을 살아남기 위해서 활동가들이 택할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는 지역으로 들어가 스스로 주민이 되는 것이죠. 이제는 이슈를 따라가는 시민운동이 아니라 함께 살면서 공유하는 방식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공룡은 회원을 모집하는 방식도 남다르다. 단순히 회비만 내는 회원이 아니라 회원들과 직접 부딪치며 연계할 수 있도록 묘안을 짠다. 가령 귀농한 사람들의 물품을 공룡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창구를 만들어 준다거나, 회원들의 삶의 문제들을 같이 고민한다는 것이다.

“감정에 있어 진보적인 게 아니라 개인의 삶과 행동에 있어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공룡활동가들의 지론이다. 하지만 이들의 ‘공동체’생활은 생각만큼 무겁지 않고, 사실 유쾌하기 그지없다.

맥주 빚고 농사도 짓고

맥주를 빚어 팔아 공간 임대료를 낼 계획이지만 자체 소비량이 많으면 판매는 곧 예약제로 바뀌고, 청원군에 약 5000㎡의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지어 자체 먹거리를 확보한다. 농약을 뿌리지 않을 계획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유기농이 돼버린다고. 올해는 뒤늦게 씨를 뿌려 감자와 옥수수 등을 심었지만 내년에는 쌀도 지을 생각이다. 또 공룡건물 옥상에서는 도시농업을 실험한다. 우선 카페에서 사용될 허브와 채소류 등을 길러볼 참이다.

현재 공룡에서는 하우스 맥주 1병(1.6L)을 5000원에 판매하고 있으며 60병을 팔면 월세 40만원을 낼 수 있다. 이밖에 건표고, 천마 등을 판매하고 있다.

▲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의 벽면은 아이들이 쓴 톡톡튀는 문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활동가들은 각자의 로망을 ‘공룡’공간을 통해 실현한다. 이혜린 씨는 사직동 공동체 라디오방송국을 열고, 정종민 씨는 일명 ‘자전거 포’와 같은 수리점을 낼 계획이다.

박영길 사무국장은 사회적 노동에 관심을 둔다. 목공, 집수리 등을 소재로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닌 사회에 환원되는 노동의 가치에 주목할 것이라고. 그리고 2층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어린시절 꿈꾸었던 서점주인의 꿈을 이룬다. 6월 4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공룡 오픈식에서는 활동가들이 밴드를 조직해 공연도 펼칠 계획이다.

활동가들이 행복해야 운동도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 이혜린 씨는 “현재는 지역 공부방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공동체 미디어 교육과 인문학 수업을 벌이고 있어요. 공룡의 미디어 수업은 기술적인 측면보다 미디어를 통해 각자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죠. 교육이 제도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학습해 나갈꺼에요”라고 말했다.

자립 가능할까 우려도

이혜린 씨는 2005년부터 사직동에서 공부방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동체 미디어 교육을 펼쳤다. ‘공동체’라는 단어 때문에 늘 고민이 많았다는 그는 “지역 활동가라고 했지만 정작 프로그램만 하고 있는 강사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교육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지역 안으로 파고들어야만 한다고 판단했죠”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공룡의 프로그램은 지원을 거부한다. 시스템 안에서 지원을 받다보면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령 커리쿨럼이나 프로그램은 세련돼질지 몰라도 미디어를 통해 공동체의 이야기는 발견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공룡은 팀블로그(http://blog.jinbo. net/com)를 통해 공사일지 및 진행사항을 올리고 있다. 박영길 사무국장은 “과연 자립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던지는 분들이 많아요. 또 카페를 운영한다고 하니 수익적인 측면을 많이 말하는데 우선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종속돼지 않는데 힘을 기울일 꺼에요. 카페에서는 동네주민들이 가볍게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요리 및 전시도 가능해요. 마을 사랑방인 셈이죠”라고 말했다.

사직동은 재개발 예정지다. 오래된 가옥과 청주시내 최고층 아파트가 공존하고 있다. 공룡은 “우리들로 인해 적어도 이 동네가 심심하지 않고 떠나고 싶지 않은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 공룡의 오픈시간은 오전 10시 쯤. 문 닫는 시간은 따로 없다. 훤히 보이는 유리창 너머 밤늦도록 하우스 맥주를 마시며 반자본주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활동가들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 보는 것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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