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주소, 간선도로 중심 정비로 엉뚱한 이름 빈번
주민들 ‘지역 특성 무시’ 市 ‘취지 살리려 불가피’

2012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도로명 주소(새주소)가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혼란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지역의 옛 이름이나 고유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번호를 매기듯이 천편일률적으로 주소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 2012년 새주소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도로명을 부여하는 방식의 새주소가 오히려 주민들의 혼란을 부추긴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심지어 일부 주민들은 새주소가 현재 사용되는 지명 대신 인근 지역 이름으로 부여되고 있다며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후유증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청주시를 비롯한 자치단체들은 최적의 위치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주소체계를 개편한 것인 만큼 다양한 의견을 모두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도로명 주소 현실과 괴리” 불만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일부 주민들은 시가 부여한 새주소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영운천 남쪽은 행정구역상 용암동이지만 도로명 주소체계로 개편되면서 영운남로로 주소가 바뀌어 영운동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주민 윤 모 씨(49)는 “주요도로 이름을 따 새주소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용암동이 영운동으로 둔갑하게 됐다. 새주소가 주민들의 편익과 최적의 위치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인 만큼 혼란을 부추겨서는 안된다. 용암동 뿐 아니라 금천동 일부 지역도 새주소가 영운북로로 부여되는 등 곳곳에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새주소는 도로의 일정구간에 시점과 종점을 설정해 도로명을 부여하고 이 도로명을 따서 연결되는 작은 도로와 건물번호를 매긴다.
영운천변 도로를 각각 영운남로와 영운북로라고 이름을 정하고 여기에서 갈라지는 작은 도로는 ‘영운남(북)로 OO길’이라고 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영운남로에서 갈라지는 용암동 건영아파트 뒤편 상가 등 일부 지역의 새주소가 영운남로 44번길 또는 영운남로 46번길 등 ‘영운동’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윤 씨는 “영운남로라는 도로명도 문제다. 남측의 영운천변로가 정확한 의미지만 이를 줄여 영운남로라고 이름을 붙여 마치 영운동의 남쪽에 있는 길이라는 의미로 곡해되고 있다. 용암동 주민들이 졸지에 영운동 주민이 돼 버리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1000명이 넘는 이 지역 주민들의 서명지를 모아 청주시에 전달, 새주소를 변경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도로명 주소를 따르다 보니 일부 주민들의 불만이 접수되고 있다. 내년 6월 까지 해당 지역 주민들의 5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이의신청이 가능하고 절반이상 주민들이 요구할 경우 주소를 변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 행정구역 무시, 옛 지명도 모두 빠져

일부 용암동 주민들이 주장하는 혼란은 이곳 뿐 아니라 새주소 체계가 정착되기 까지 곳곳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도로이름을 따 새주소를 부여하기 때문에 기존의 행정구역과 다르거나 아예 무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새주소에 사용되는 도로는 ‘대로’와 ‘로’ ‘길’로 구분되며 청주시 ‘대로’급 도로는 흥덕구 복대동 공단입구에서 상당구 상당공원을 잇는 ‘사직대로’와 청주역과 청주대학교를 잇는 ‘직지대로’ 두곳이다. 직지대로의 경우 기존 흥덕대로로 명명할 경우 상당구 지역을 통과하는 구간의 혼란을 우려해 새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직대로가 지나가는 복대·개신·사직·영동 등의 지역은 모두 ‘사직대로 OO번길 OO호’라는 식으로 도로명과 건물번호가 부여돼 기존 행정구역 이름은 배제된다.
청주시청 주소도 기존 ‘상당구 북문로3가 89번지’에서 ‘상당구 상당로 281’로 변경된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사용돼 오던 옛 지명도 새주소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때문에 일부 주민들은 새주소가 지역의 색깔을 없애는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 주민은 “옛 지명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주민들의 정서가 배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편의만 추구해 새주소에 옛 지명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최소한 주소에서 만큼은 지역적 특성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주시는 최적의 위치정보 기능을 제공한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불가피 하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옛 지명도 일제 강점기때 기존 지명을 왜곡하거나 한 글자씩 차용해 새이름을 부여하는 등 유래가 불명확한 것도 있다. 도로이름에 옛 지명이 반영되는 경우도 있는 만큼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특히 새주소는 위치정보와 주민들의 편익을 위한 것인 만큼 이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최적의 체계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며 처음에는 다소 생소하고 혼란스럽겠지만 정착단계에 접어들면 훨씬 편리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바뀐 청주시 새주소 명판 교체만 12억원
시범지구 선정으로 설치한 명판 모두 교체해야

토지지번 중심의 현주소 표시체계는 일제가 근대화된 토지제도를 수립한다는 명목하에 수탈 및 조세징수의 목적으로 탄생됐다.
특히 지번 표기방식은 건물에 주소를 표기하지 않아 각종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어 도로에는 도로명을, 건물에는 건물번호를 부여하는 새주소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새주소에 대한 정부정책의 변화로 청주시는 새주소 부여 사업을 두 번째 되풀이 하고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 교체에만 12억원의 예산을 더 들이게 됐다.
정부는 당초 생활주소 개념으로 새주소 사업을 추진, 1996년 청주시를 시범지구로 선정했으며 이에 따라 시는 2001년 건물번호판, 도로명판 설치를 완료했다.

5년 동안 청주시는 4300여개의 도로마다 이름을 붙이고 5만4000여개의 건물 번호판도 설치하는 한편 이를 적극 홍보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2006년 도로명 주소 표기에 관한 법률을 제정, 이를 법제화 했으며 2007년네는 전국의 시설들이 통일되지 않고 제각각이라며 주요도로 중심의 현 체계로 변경키로 정책을 바꿨다.

결국 청주시는 2001년 완료한 새주소 체계를 전면 수정해야 했으며 결국 이 때 설치한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 상당수를 교체해야 할 형편이다.
두 번에 걸친 새주소 부여 사업에 동원된 행정력과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만 12억원을 낭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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