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태 전 의원, “경선 불복 무소속 출마 이유 있었다”

▲ 한현태 무소속 충북도의원 후보.
경선불복과 거듭되는 낙선으로 방랑 정치인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별칭을 얻은 한현태 전 도의원이 명예회복을 선언하며 도의원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한 전 의원은 1998년 40세에 6.4지방선거 증평선거구(당시 괴산제2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6대 충북도의회 최연소 의원이 됐다.
그는 젊은 패기와 열정으로 활발하게 의정활동을 전개했으며 초선의원으로서 이례적으로 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지역 정가에서 주목받는 인물로 부상했고 그의 정치행보에도 관심의 시선이 모아졌다.

하지만 그는 2002년 6.13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 최재옥 현 의원에게 1200표 차이로 의원직을 내 준 뒤 정치적 방랑의 길로 접어 들었다.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해 2003년 10월 증평군 개청에 따른 초대 군수선거에 출사표를 던지고 유명호 후보(현 군수)와 경선을 치렀지만 62표 차이로 석패해 공천을 받지 못했다.
한 전 의원의 방랑은 경선 불복과 증평군수선거 무소속 출마 선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이에 대해 “같은 기간 동안 지금의 유명호 군수와 입당원서를 받아 당에 제출했다. 나는 250매, 유 군수는 200매를 제출했는데 대의원은 유 군수 측에서 150명이 뽑힌 반면 우리측에서는 100여명 밖에 선출되지 못했다. 공정한 추첨에 의해 대의원을 뽑았다는 한나라당의 말과는 달리 이는 명백하게 불공정 경선이었다. 그래서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돌연 중도 포기해 출마 명분을 스스로 접었다.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도 그는 한나라당 공천을 희망하며 증평군수 출마를 선언했다가 무소속 도의원 출마로 방향을 선회해 오락가락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표 결과 최재옥 후보에 460여표 뒤진4616표를 얻어 역시 낙선. 화려할 것으로 전망했던 제6대 최연소 도의원은 경선불복과 거듭되는 낙선의 이력이 쌓여가고 있었다.
증평장학회 부회장, 대한노인회증평지회 게이트볼 후원회장이라는 직함도 ‘전직’이 됐고 충청북도 핸드볼협회도 부회장 임기를 마치고 고문으로 물러났다.

오는 6.2지방선거 증평제1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충북도의원에 도전장을 냈지만 여전히 갈팡질팡 이미지를 떼어 버리지는 못했다.
이번에도 증평군수 출마를 저울질 하다 도의원으로 선회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군수 출마를 준비한 것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다만 “연만흠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고 주변에서 젊은 나이나 경험 등을 비춰 도의원 출마를 권유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번번히 낙천·낙선하면서도 크지 않은 표 차이를 기록, 아쉬움을 나겼던 그가 이번에는 독하게 마음먹고 명예회복에 나선 것이다.

그는 “2014년 행정구역 조정을 전제로 괴산이 아닌 청주·청원 통합시와의 통합, 이에 따른 도청의 증평 이전, 초·중·고 로컬푸드를 통한 무상급식 등을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겠다. 이번에야 말로 최연소 도의원과 상임위원장을 지낸 한현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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