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단체장 만의 특권 ‘주민과의 대화’가 곧 선거운동
‘현장의 목소리 청취 장점’ 불구 ‘권위주의 산물’ 지적도

6.2 지방선거를 50일여 앞두고 예비주자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선거구내 주요 행사장을 빠짐없이 찾는가 하면 영향력 있는 주민들을 직접 만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기본이다.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면 선거사무소나 연락사무소 건물 전체를 후보자 사진으로 감싸기도 한다.

정치초년생 등 인지도가 낮은 후보들이 얼굴 알리기에 안간힘을 쓰는 것에 비해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면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선거를 치를 수 있다.

특히 도지사와 시장·군수 등 단체장 선거에서 현직 프리미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기다. 공식적인 단체장 업무를 통해 유권자들을 접하고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도전자들에 비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재출마하는 현직 단체장들은 당연히 이같은 유리한 조건을 십분 활용하려 들며 때로는 ‘단체장 공식 업무’냐 ‘선거운동’이냐는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체장들이 실시한 연두순방이다.

▲ 지방선거를 앞 둔 단체장들의 연두순방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는 가운데 지난달 8일 정우택 지사는 투자유치가 무산된 것을 모른 채 괴산을 방문, 협약을 체결해 선거용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정우택 지사 12개 시·군 순방 마쳐

정우택 지사는 지난 2월 18일 충주와 제천을 시작으로 3월 16일 청주·청원 까지 12개 시·군 순방을 마쳤다. 하루 일정에 1~2개 시군을 묶어 순방한 것을 감안하면 꼬박 7일 이상 연두순방에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연두순방은 해당 시군을 찾아 시(군)정보고를 받고 지역주민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주민과의 대화’에서 주민들은 주로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충북도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고 각종 민원과 정책을 건의 했다.

이 자리에는 기관단체장과 지역의 주요 인사 등 최소 몇 백명 이상이 참석하며 일부 건의는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정 지사는 지역 현안 해결에 적극 노력하겠으며 건의된 사항을 검토해 도정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주로 밝혔다.
정 지사 뿐 아니라 김호복 충주시장, 이향래 보은군수, 이종윤 전 청원군수 권한대행 등도 읍·면 연두순방을 마쳤다.

특히 이향래 보은군수는 읍·면 연두 순방 결과 접수된 79건의 민원에 대한 관리카드를 작성해 군정에 적극 반영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기용 충북도교육감은 지난달 15일부터 2일까지 ‘지역교육청 주요업무 보고회’라는 이름으로 11개 지역교육청을 순방했다. 지역교육청 순회 보고회도 지자체 연두순방과 마찬가지로 현안 문제에 대한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실시됐다.

▲ 정우택 지사의 순방에 따라 단양군이 기관단체와 주요인사들에게 주민과의 대화에 참석해 달라고 발송한 초청장.
연두순방 반복되는 선거용 시비

하지만 단체장들의 연두순방에 대한 주민들의 시각은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지방서거를 코앞에 두고 시·군이나 읍·면을 찾아 업무보고를 받고 주민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 선거용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선거를 앞두고 시군이나 읍면을 찾아 존재감을 과시하고 많게는 수 백명씩 주민들을 모아 접촉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선거운동”이라며 “현재의 선거제도가 현직에 지나치게 유리하게 돼 있다”고 꼬집었다.

송 처장은 하지만 “그렇다고 단체장이 민생현장을 찾아 주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데
연두순방을 무조건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힘들고 또 매년 해 오던 일이기도 하다”며 “업무 공백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출마하려는 현직 단체장들을 조기 사퇴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선거를 앞 둔 단체장들이 연두순방을 통해 누리는 현직 프리미엄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연두순방 자체가 지역의 주요 뉴스거리로 등장해 사진과 함께 연일 보도되고 있으며 주민과의 대화를 위해 기관단체장과 주요인사 수 백명에게 초청장을 발송하는 것도 관건선거 시비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정우택 지사는 지난달 10일 음성군을 연두순방한 자리에서 원남산업단지 조성에 참여하는 계룡건설(주)과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계룡건설의 참여는 이미 2007년 확정돼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생색내기 전시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이보다 앞선 지난 8일 괴산군 연두순방에서 정 지사는 토지 이중매매로 유치가 무산된  것을 모른 채 한 강구조물 업체와 투자협약을 체결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을 연출했다.

▲ 김호복 충주시장은 읍면 순방 일정 외에도 경로당을 방문, 건의사항을 취합해 지나친 행보라는 비난을 샀다.
김호복 충주시장은 지난달 실시한 연두순방에서 공식일정과 함께 각 마을 경로당을 방문해 필요한 비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해 선심성 행정 논란에 휘말렸다. 마을을 순방한 자리에서 경로당을 찾아 건의사항을 취합해 해결을 약속했다는 것. 건의사항은 비품 마련이나 교체가 대부분이었으며 김 시장은 일부 경로당에 텔레비전 등의 지급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기용 교육감이 실시한 지역교육청 순회 보고회도 선거용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이 교육감은 도내 11개 모든 지역교육청을 방문, 업무보고를 받고 학부모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지난해 지역교육청 순방은 청주와 청원 2개 교육청에 그쳤을 뿐 나머지 9개 교육청은 도교육청에서 업무보고를 받는 것으로 대신했다. 물론 방문 보고를 받은 9개 지역은 학부모와의 대화도 진행하지 않았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교육감 선거를 2개월 앞두고 지역교육청을 순방하고 학부모들을 만난 것 자체가 선거운동으로 비쳐질 수 있다. 선거용 시비를 의식했다면 지역순방 일정을 앞당기던지 방법을 달리해야 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우리 지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낮게 나와 지역교육청 업무보고를 간단하게 받는 대신 학교 방문을 늘렸던 것이며 2008년까지는 올 해와 같이 지역교육청을 순방했다. 이번 지역교육청 순회 보고회가 교육감 선거를 의식해 실시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새해 인사 받는 듯한 모양새 부적절
선거 앞 둔 연두순방, 방법·시기 조절 필요

단체장들의 연두순방이 권위주의 산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최소한 선거가 치러지는 해에는 방법과 시기 등을 조절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연두순방이라는 말은 새해를 맞아 순회 방문한다는 뜻인데 권위주의적인 인상이 매우 강하게 느껴진다. 마치 시군이나 읍면에서 새해를 맞아 단체장을 모시고 인사를 드리는 모양새다. 새로 부임한 권력기관장이 처음으로 산하기관 등을 방문하는 초도순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업무보고를 연두순방이라는 이름으로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통신 발달과 화상회의 등 연두순방이 아니더라도 업무보고를 받을 방법은 다양하고 충분하다” 며 “주민과의 대화 또한 수 백명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얼마나 내용 있는 대화가 오고갈 것인가. 이 또한 권위주의와 보여 주기식 행정의 산물이 아닌지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단체장이 현장을 직접 찾는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최소한 선거가 실시되는 해에는 방법을 바꾸거나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남기헌 교수(충청대 행정학과)는 “단체장 본인들은 매년 해 오던 일이고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점에서 발끈하겠지만 선거용이라는 오해의 소지는 충분하다”며 “선거 당해연도에는 연두순방 대신 화상이나 서신 등으로 업무보고를 받는 등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연두순방을 강행하더라도 1월초에 집중해서 마무리 짓는 등 시기도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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