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기술자, 15년 이상 고속도로 경력 갖춰야 만점
건설사 ‘사실상 도공 퇴직자 외에는 인력 없어’ 분통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시설물 유지보수공사 참가 자격으로 사실상 자사 퇴직자를 채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시설물유지관리업 면허를 보유한 지역 건설사들은 한국도로공사충청지역본부(이하 도공)의 ‘고속도로 시설물 유지보수공사 유자격자명부 등록’ 심사항목과 기준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 지역건설업계는 한국도로공사충청지역본부가 고속도로 유지보수공사 유자격자 등록제도를 통해 사실상 자사출신자 채용을 강요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도공이 제시한 ‘유자격자 심사항목 배점 및 심사방법’은 현장접근 신속성(30점), 책임기술자 능력(30점), 장비보유(20점), 최근 3년간 평균 시공평가 결과(20점) 등 100점 만점으로 구성, 90점 이상 점수를 얻어야 공사 입찰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이중 건설사들이 문제점을 지적하는 항목은 30점이 배정된 책임기술자 능력으로, 도공이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는 인력은 도공 퇴직자 외에는 사실상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역의 한 업체 대표는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받아야 입찰 기회가 주어지는 만큼 모든 항목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어야 한다”며 “책임기술자의 경우 대형 건설사가 아닌 이상 도공 출신 외에 인력을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공은 지난 19일 이 같은 기준을 적용, 충청지역본부 산하 12개 지사별로 유자격자명부 등록 신청을 공고했으며 오는 2일 심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사실상 도공 출신자 채용 강요” 주장

도공의 유자격자 심사방법은 책임기술자 능력 점수를 ‘30점×(경력계수×연령계수)’로 계산하도록 하고 있다. 책임기술자의 경력과 연령을 1.0만점으로 계수화 해 30점 만점으로 점수화 한다는 것. 예컨대 경력계수가 0.5이고 연령계수가 0.9라면 책임기술자 능력점수는 13.5점이 된다.

문제는 책임기술자의 경력 계수 산정 방식이 지역 중소건설사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도공은 경력계수 1.0만점을 얻기 위해서는 15년 이상 경력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나마 자동차전용도로와 일반국도는 경력의 80%, 기타 도로보수 경력은 경력의 60%만 인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고속도로 유지보수 공사 경력 15년 이상인 기술자는 지역 건설업계에서 찾기 불가능하다. 토목을 주로 하는 대형건설사나 한국도로공사 출신자가 전부다. 결국 자사 출신 인력을 채용하거나 직접 설립한 업체에만 공사 참여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특히 도공충청본부 지사별로 발주되는 유지보수 공사 규모가 보통 4~5억원, 많아야 10억원 안팎의 비교적 작은 공사라는 점에서 건설사들의 불만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건설협회충북도회도 낯간지러운 규정이라며 건설사들을 거들었다.
도회 관계자는 “반드시 도공 출신을 채용하라는 강제규정이 아니기는 하지만 고속도로 유지보수 경력 15년 이상의 인력을 확보하라는 것은 과도한 요구다. 그 만한 경력을 갖춘 인력이라면 최소 특급기술자 이상 기술사 수준이다. 연봉으로 따져도 7000~8000만원 수준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격 이중 제한, ‘법 위의 법’ 지적도 

또한 도공의 ‘유자격자명부 등록’이 실적을 기준으로 참여를 제한하는 일반 관급 공사 입찰방식에 자체 기준까지 더하는 ‘법 위의 법’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건설산업기본법은 건설업면허 별로 등록기준을 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조항도 두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시설물유지관리업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자본금 3억원 이상, 초급이상 기술자 4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설립된 건설업체는 전년도 실적에 따라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공사규모가 정해지며 적격심사를 거쳐 공사를 수주하게 된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발주하는 공사는 대부분 조달청의 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를 통해 입찰이 이뤄진다.

하지만 도공은 입찰 참가 자격을 실적 외에 ‘유자격자명부’라는 또 다른 장치로 제한한 뒤 자체 전자조달시스템을 이용해 별도로 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특히 고속도로 유지보수가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공사가 아닌 것으로 확인돼 도공의 지나친 입찰 참여제한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공 측은 공사 경험이 많은 기술자를 확보해 품질을 높이기 위한 규정이며 도공 출신자 뿐 아니라 일반 기업에도 조건을 충족하는 인력이 있는 만큼 문제될 게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도공 관계자는 “공종은 차선도색과 파손도로 복구 등 고속도로의 특수상황에 따른 안전관리를 제외하면 일반 공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도 “지역의 소규모 업체가 처한 현실에서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품질관리 확보 차원이지 공사 출신 채용을 독려하거나 민간업체를 배제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도공 유자격자 등록 하늘의 별 따기
공사 참여 자격업체 노선 별 20곳도 안 돼

한국도로공사의 까다로운 공사참여 자격 제한으로 고속도로 유지보수 공사 참여 자격자로 등록된 업체는 충청지역본부 지사별로 20곳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공에 따르면 충청지역본부 12개 지사중 천안 13개 업체, 대전 19개, 진천 12개, 영동 18개, 보은 12개 업체 등 충북이 포함된 5곳의 공사참여 유자격업체는 평균 15곳에 불과했다.

시설물유지관리업 면허를 보유한 건설사가 충북에만 166곳인 것을 감안하면 고속도로보수공사 참여 자격을 갖춘 업체는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더욱이 천안과 대전, 영동, 보은지사의 경우 유자격등록 신청업체가 충북뿐 아니라 대전·충남 지역 업체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도내 업체 참여율은 더욱 낮아진다.

한 업체 관계자는 “공사금액이 5억원 안팎이라면 2~3년 정상적으로 실적을 쌓은 업체라면 무난히 입찰이 가능한 규모다. 하지만 지역업체 대부분은 유자격 등록 신청도 해 보지 못했을 정도로 조건이 까다롭다. 공사품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로공사 출신들이 몇몇 업체만 참여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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