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Utopia)’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16세기 초 영국의 인문주의자였던 토마스 모어(Thomas More)입니다. 토마스 모어는 자신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나라의 모습을 ‘유토피아’란 작품을 통해서 그렸습니다. 유토피아란 그리스어의 ‘우(Ou)’와 ‘토포스(Topos)의 합성어인데 영어로는 No, Place, 즉 아무 데도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무가유향(無可有鄕)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란 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향’이라는 뜻이니 이를 뒤집으면 ‘이상향은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16세기 유럽인들은 중앙 아메리카 아마존강유역에 황금의 땅 ‘엘도라도(El Dorado)’가 있다고 믿고 너도나도 그곳을 향해 몰려갔습니다. 그들은 험준한 산을 넘고 호수를 뒤졌지만 어디에도 황금이 쌓여있지는 않았습니다.

중국의 고사에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니, 도원경(桃源境)이니 하는 이상향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꿈속의 세계 아니면 가상의 세계였지 실제 현실세계에 그런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장자’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이상향은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바로 그를 가르치는 글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에는 티베트에 있다는 신비의 도시 ‘샹그릴라’가 나옵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세계인 샹그릴라는 그야 말로 불로 장수의 이상향으로 그려져 있는데 세계적인 호텔 체인의 이름이 돼있을 만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인류가 있은 이래 어느 곳에서건 인간들은 끊임없이 현실 속에서 이상향을 꿈꾸어 왔음을 보게 됩니다. 성경의 천당이나 불교의 극락도 사후세계 이긴 하지만 결국은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전국에서는 때아닌 ‘불법 외국인 노동자사냥’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31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자진 등록한 19만을 뺀 12만3000명이 그 대상입니다. 불법 체류중인 이들은 붙잡혀 강제 출국을 당하지 않으려고 제각기 은신처를 찾아 이리 저리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비상식량을 꾸려 구석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고 수천 명의 조선족 동포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차가운 교회, 성당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세칭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이 땅에 온 노동자들은 꿈을 이루지도 못한 채 내일을 예측 할 수 없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들을 보면서 역지사지로 1900년대 초 우리의 선조 들이 나라를 등지고 이민선에 실려 하와이로 떠났던 일, 1930년대 일제치하, 고향을 버리고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살 곳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로 갔던 과거 우리 민족을 떠 올렸습니다. 노예나 다름없는 모진 고생을 겪은 그들의 후손이 오늘의 재미 교포들이요, 척박한 동토(凍土)를 일궈 목숨을 잇고 풍찬 노숙하던 독립군의 후손들이 발전된 조국이랍시고 어렵사리 찾아 왔다가 쫓기는 몸이 된 것이 조선족 동포들인 것입니다.

1960년대는 어떠했습니까. 대학을 다닌 고학력 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광부로, 간호원으로 서독에 가지 않았습니까. 낯설고 물 설은 이국 땅, 수 백 미터 지하 갱도에서 그 들이 겪었을 고통이 어떠했던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40만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경제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공로는 지대합니다. 그들은 싼 임금, 험한 일을 마다 않고 내국인을 대신해 부족한 노동력을 메워줬습니다. 그런데 이제 불법 체류 자로 쫓기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날씨는 추운데 도망자가 된 그들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유토피아도, 무릉도원도 아닌 그저 야박한 나라일 뿐입니다.

행복을 찾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 다녀 보았지만 그 행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지친 나머지 집으로 돌아 왔을 때에서야 비로소 행복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음을 깨달았다는 통속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 외국인 노동자들의 가슴에 맺혀있을 한스러움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토피아? 이 세상에 그런 곳은 없나 봅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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