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 편집국장

“어려운 한 해를 이겨낸 여러분은 모두 승리자 입니다.” 지난해 12월 세밑,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은 말이다. 2009년은 그 만큼 다사다난했다. 이 힘든 시간을 살았다는 것 자체를 ‘이겨냈다’고 표현할 만큼 지난해는 정말 힘들었다. 지역경제는 바닥을 헤맸고, 사회는 불안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졸업한 청년은 곧바로 실업자 대열에 합류했고, 중소상인들은 하나 둘씩 점포를 닫았다. 제법 큰 기업들도 넘어졌는가 하면 이 여파로 많은 가정들이 해체됐다.

그러나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언제 우리가 호경기를 경험한 적이 있었는가. 언제나 불경기였고 어렵다고 했다. 그럼에도 살았고 이겨냈다”고 말했다. 비록 서민들의 삶이 어디에 정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팍팍했지만, 이름을 밝히지 않고 쌀과 연탄을 기증하는 착한 이웃들로 인해 웃을 수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는 표현은 그래서 생겨난 말이다. 우리는 사고가 나 다쳤어도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하고, 새해 첫 날 빙판에 넘어진 사람에게는 ‘액땜 했으니 앞으로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위로한다. 하기사 어려운 세상에 서로의 위로가 없다면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까.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라는 소설이 있다. 이 책에는 난파된 배에서 유일하게 살아난 크루소가 어떻게 무인도에서 살아가는지 흥미진진하게 묘사돼 있다. 크루소는 무인도에서 그냥 산 게 아니고 그야말로 삶을 헤쳐나갔다.

그는 생존을 위해 집을 짓고 옷과 그릇, 각종 도구, 배 등을 손수 만들었으며 밭을 일궈 농사를 지었다. 그는 필요한 모든 것을 자급자족했다. 아무도 없는 섬에 내동댕이쳐진 그는 ‘모든 게 끝났다’며 울부짖었으나 점점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고독을 극복하고 섬의 주인이 돼 다른 사람들의 목숨마저 구해준다. 패배자가 아니라 승자로 살아남은 것이다.

우리가 크루소에게 배워야 할 게 많지만,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생각하는 것은 꼭 본받을 필요가 있다. 외로운 섬에 홀로 표류했고 구출될 희망이 보이지 않음에도 그는 다른 선원들이 모두 빠져 죽었는데 자신은 다행히 살아남았다고 자위했다.

또 세상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외톨이가 돼 세상에서 잊혀졌음에도 굶지 않고 목숨을 영위해 다행이라고 자위했다. 혹시 맹수가 공격해 올 경우 방어수단이나 저항할 방법이 없었음에도 맹수가 들끓는 아프리카 해안에 표류되지 않은 게 큰 다행이라고 자위했다.

크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불행한 상태에 빠진다고 해도 감사해야 할 일이 많다. 자신이 빠진 상황에 대해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서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면 상황을 즐길 여유까지 생긴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금방 죽을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인생도 따지고 보면 신께 감사해야할 일이 있다는 말이. 게다가 상황을 즐길 여유마저 생긴다는 사실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말이다.

올해도 어려울 것이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많은 일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권모술수·이합집산이 판칠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혹한기를 면치 못할 것이다. 돌아올 춘궁기도 무섭다. 충북지역사회도 시끄러울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그 전해, 그 전해도 어렵고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 남았다. 이제 ‘로빈슨 크루소’식 사고방식으로 무장하고 링위에 올라서자. 비록 링 위에서 나가 떨어져도 다시 일어나 싸우자. 그러다보면 우리는 승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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