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가부장적 요소로 부부갈등 겪는 여성 많아
이해와 조화 필요…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 배우자

일요일인데다 마침 비까지 내리니 마음이 한가하다. 아들도 오늘은 유치원을 가지 않는 날이라고 맘놓고 게으름을 피운다. 가볍게 요기를 하고 나니, 대구에서 손님이 온다는 전화가 왔다. 예전에 마음공부를 함께 한 분인데 남편과 함께 마실온다는 것이다. 멀리서 벗이 온다고 해서 공방안을 따뜻하게 해놓았다. 한지등에서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불빛과 난로의 온기, 실내를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이 어우러져 오랫만의 만남을 훈훈하게 하였다.


▲ 시골에서는 여자들도 힘을 쓰는 일이 많다. 그리고 참 부지런하다. 마을의 할머니들도 웬만하면 앓아누우시는 법이 없다. 항상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시골의 정취가 느껴지는 장독대(위)와 마늘 등을 보관하는 대문 위.
농촌여성은 힘이 세다
지난 여름에 담가놓은 보리똥 효소차를 뜨겁게 해서 마시며 그간의 근황을 나누니, 사리님은 시골학교로 전근가서 5학년 담임인데 반학생이 5명이란다. 전교생이 18명.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을 포함하여 7명, 운동장이 넓고 대나무와 아름드리 나무가 무성한 아름다운 학교지만 학생이 없어 얼마 안가 폐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셨다.

그러면서 사리님은 "메루님(내 별명)은 예전에는 참 곱더니 이젠 촌부(村婦)의 모습이 많이 나네요. 호호호"하셨다. 칭찬인지 흉인지는 모르겠지만 싫지만은 않다. 외모야 검게 그을리고 수더분해졌지만, 일면 내 자리가 잡혔다는 의미도 있으므로. 산골에 들어와 살면서 환경에 따라 미(美)의 기준도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산골에 와서 남편은 반장댁 아주머니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하며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아주머니는 몸도 마음도 후덕하고 넉넉한 분이었다. 도시에서야 뽀얗고 하얀 피부와 가냘픈 몸매가 아름다워보이지만 이곳에서는 텃밭도 매고 장작도 나르고 무거운 항아리도 번쩍 들어 씻고 옮기려면 다이어트를 생각할 수가 없다.

아무튼 시골에서는 여자들도 힘을 쓰는 일이 많다. 그리고 참 부지런하다. 마을의 할머니들도 웬만하면 앓아누우시는 법이 없다. 항상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손수 농사짓고 수확해서 자식들에게 나눠주시고, 틈틈이 산나물도 뜯어 말리며 부수입을 창출하시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부지런한 편이 못되니, 아직 시골사람이 되기에는 멀었는지도 모른다.

마을의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을 보면서 나는 이분들의 삶이 진정 건강한 노후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언제든 내 일이 있고, 흙냄새 맡으며 씨앗을 뿌리고 생명을 가꾸고 수확을 하고 또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삶이야말로 축복된 삶이 아닐까? 물론 농사를 전업으로 하고 거기에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는 입장에선 너무 감상적인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골에 들어와 살면서부터 난 노후에도 텃밭 정도는 꼭 가꿔 우리 가족 먹을거리는 스스로 해결하리라고 생각한다.

부부갈등에 직면하는 농촌여성들
그런데 얼마전 시골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는 시누이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젊은 농촌여성들의 고충을 알게 되었다. 시누이는 농촌으로 시집가서 마을의 부녀회장도 맡고 있고 이런 저런 봉사도 많이 하면서 사회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 사진 위로부터 난로가 있는 부엌과 부엌 아궁이.
시누이가 살고 있는 시골마을도 신문배달이 잘 안되는 깊은 시골이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마을엔 젊은 사람들이 10명도 넘는다고 한다. 농촌 마을에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산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시골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지, 그리고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꿈꾸지만 막상 실현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대부분 마을에 부모나 친척 등 연고가 있거나 물려받은 땅이 있는 경우였다.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을 하게 된 이유는 다 다르지만 아무튼 농촌에서 새로운 꿈을 찾아온 것이다.

생명가꾸는 힘으로 행복 만들자
그런데 안타깝게도 새로운 삶과 터전에 만족하는 경우는 적은 것 같다. 특히 젊은 주부들이 힘들어했고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주요 요인은 부부간의 갈등으로 농촌에 많이 남아있는 가부장적 환경이 갈등의 큰 요소라고 했다. 산골에 살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나는 그런 갈등의 경험을 '선우야, 바람보러 가자'의 '살며 사랑하며 용서하며'에 썼다. 예전의 어머니들이야 하나의 덕목으로 여기고 그저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살아왔지만, 요즘 현대여성으로서 쉽지 않은 부분이다. 이미 마음속에 남녀평등과 여권신장, 자기 실현등의 생각들이 자리잡힌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갈등문제는 비단 농촌만의 문제도 아니고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했다. 마음공부를 안내하면서 느낀 것은 더욱 친밀한 사이일수록 더 많은 상처를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농촌에서 여성들이 그런 문제를 더 심각하게 경험하는 건 시골은 도시와 달리 가족 단위 또는 마을 단위로 생활의 범위가 좁혀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부부가 함께 일을 하고 많은 일들이 집과 직장의 경계가 없이 일이 지속되는 몸이 고단한 상황에서 남편과도 소통이 어렵다면 그 외로운 마음은 풀 길이 없을 것이다.

나는 농촌의 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삶이 더욱 행복하고 향상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배려도 중요하고 농촌의 여성들이 자기 실현을 할 수 있는 창조적 공간도 필요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는 관계를 부부가, 가족이 함께 연구하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여성 스스로가, 우리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법을 터득해야 할 것 같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항아리를 번쩍 번쩍 안아서 옮기는 그 힘, 흙을 만지며 씨앗을 심고 생명을 가꾸는 그 힘은 자신을 사랑하고 보다듬으면서 스스로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을 만들어가기에 충분하리라.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