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저녁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초청강연회에는 600석 청주교대 대강당이 모자라 일부 시민들은 서서 강의를 들어야 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로 유명한 신영복 교수의 강연에 '길을 묻는' 시민이 몰리는 것은 요즘의 시대상황을 말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언론에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서 몇 자 적습니다.

신영복 교수는 세 가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나는 빨간 과실이 하나 달린 앙상한 나무였고, 하나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 그리고 발이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나무가 세 그루인 숲이었고요.

신 교수는 그 나무의 모습을 지금 우리의 상황이라면서, 석과불식(碩果不食)을 말했습니다. 주역 64괘 중 박괘에 나온다는 이 말은 큰 과실은 먹지 않고 남긴다는 것으로, 자기만의 욕심을 자제하고 뒷사람을 생각하는 나눔의 정신이라고 합니다만, 신 교수는 석과를 씨앗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찬바람이 불고 언제 저 과실이 땅에 떨어질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럴 때는 '잎사귀를 떨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잎사귀는 곧 거품이고 환상이다. 잎사귀를 떨어내고, 우리가 갇혀 있는 '문맥'에서 탈출해야 한다. 잎사귀를 걷어내면 그 몸이 잘 보인다.

그와 같이 거품을 걷어내면 한 사회, 한 개인의 뼈대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떨어진 잎사귀는 그 근본인 뿌리로 내려 앉아 '거름(糞本)'으로 한다. 어려운 시절에 해야 할 일은 이와 같은 것이다.

근본을 거름하는 일은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근대의 '문맥'을 탈출해 '사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중세시대 '마녀'라는 문맥이 있어 수십만, 수백만 명에 이르는 마녀를 처형했다. 당시 스스로 마녀임을 자인한 이도 있었듯 우리도 근대사회를 경과해오는 동안 쌓인 강고한 문맥,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고 자연을 대상화하고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문맥에 갇혀 있다. 문맥을 벗어나는 여정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가는 길고 긴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신영복 교수는, 시냇물이 흘러 강물이 되고 강물이 흘러 바다를 이룬다. 그러나 강물이 여러 종류의 시냇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낮은 자세로 넉넉함이 있었기 때문이며, 바닷물이 여러 종류의 강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더욱 낮은 자세로 더 깊고 더 넓은 넉넉함과 스스로 썩지 않게 소금을 갖고 자기를 정화하는 노력 때문이다.

시민단체든 정치권이든 우리 사회 모두가 여러 종류의 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이 낮은 자세로 넉넉함으로, 우리 사회의 각종 의견과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변화보다는 타인을 계몽하고 가르치려는 자세를 버리고, 창조적 발상을 통하여 자기 스스로 변화하려는 사고와 자세가 필요하다.

깃발을 들고 타인을 흡수하려는 자기 영역의 틀에 갇힌 사고와 자세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우리 시대의 촛불은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하고 있다.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웹1.0의 사고와 영역적 틀을 깨고, 웹2.0의 촛불과 함께 사고하고 함께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함께 걷다 보면 뒤로 길은 만들어진다. 길은 더불어 숲이 되고 숲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창조적 발상과 자기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신 교수의 강연은, 촛불 하나하나 독립된 존재이면서 동시에 시대와 소통하며 숲을 이루는 자아라는 사실을 생각하는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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