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검이 청사 내에 시민의 소리함과 직원의 소리함을 설치해 민원인과 직원들로부터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여론을 가감없이 듣기로 했다. 1주일에 한 번씩 검사장이 문제의 소리함을 직접 열어 내용을 취합한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김수남 지검장은 취임하자 마자 직원들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먹고 등산도 같이 하며 스스럼없는 대화를 즐기는가 하면, 틈만 나면 지역사회의 곳곳을 찾아 현장의 소리를 경청함으로써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을 탔다. 얼마 전엔 한 기업체의 노조를 불쑥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꼭 비교되는 것은 아니지만 홍동표 흥덕경찰서장의 얘기도 요즘 사석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홍 서장은 자신이 직접 순찰차를 몰고 다니며 관내의 방범상황을 말 그대로 현지 점검한 지가 오래됐다. 그가 사건 현장이나 우범지역 그리고 경로당, 주택가 등에 순찰차를 몰고 예고없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즉석에서 대화의 장이 펼쳐진다고 한다. 물론 직원들이야 조직의 수장이 언제, 어느 곳에서 뜰지 몰라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지만 길거리에서 혹은 사업장에서 그와 맞닥뜨리는 시민들의 느낌은 새롭기만 하다.

이들 두 사람의 운신이 얘깃거리가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직책의 당사자가, 심하게 말해 구중심처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권위가 물씬 풍겨나는 그들이 스스로 문지방을 걷어내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때문이다.

유형은 다소 달랐지만 예부터 이러한 직접적인 소통의 기법은 통치자나 각종 리더로부터 종종 구사돼 왔다. 무슨 신문고니 직소제(直訴制)니 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면서 그 당사자들은 소위 권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도했던 것이다. 실제로 김수남 청주지검장과 홍동표 흥덕경찰서장은 지금까지의 고정관념과는 사뭇 다른 '권위문화'를 시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그들이 상대하는 주민과 시민들의 달라진 의식, 더 나아가 시대적 추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노력의 일환일 수도 있다.

뻔한 얘기이지만 권위는 사회구성원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중에 하나다. 이러한 권위는 자기 능력과 지위를 정당하게 획득함으로써 얻어지고, 이것이 곧 조직이나 주변을 이끌어 가는 힘이 된다. 당연히 이러한 권위에 대해선 존경과 신뢰, 인정이 따르게 마련이고 그것이 권위의 기저(基底)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능력없는 사람이 부당하게 그 지위에 올라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정당하게 지위에 올랐더라도 그 자리에 취해 일방적으로 권력을 남용할 때 생긴다.

공교롭게도 이는 일찍이 막스 베버가 경계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는 권위를 인격적 권위와 몰인격적 권위로 구분하며 인격적 권위는 카리스마와 인품을 가진 자에게 부여되지만, 몰인격적 권위는 사회제도 안의 지위에 의해 주어진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로 흐르는 건 시민에게 서비스하라고 부여된 몰인격적 권위를 마치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맘대로 전횡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곰곰 음미하다 보면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어쩌면 저렇듯 정확하게 예단했을까를 되뇌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사회가 권위의 붕괴에 직면했다는 심각한 우려감, 예를 들어 가장과 자식간의 관계가 위협받고 있고 교사와 학생간의 전통적 사제관이 무너지는가 하면,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간 조직의 의리가 실종됐다는 등등의 위기감은 사실 과거 주종적 관계나 특정 지위가 만들어내던 일종의 '강요된 권위'에 집착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인격적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청주지검장과 흥덕경찰서장의 일련의 행동에 대해 우리는 탈(脫)권위가 아닌, 탈권위주의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으로 보려 한다. 그리하여 이들이 몰인격적 권위를 털어내고 새롭게 만들어 낼 인격적 권위가 기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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