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대표이사

세종시법을 사문화시키려는 여권의 의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임동규 의원이 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법을 수정해 세종시를 ‘녹색성장 첨단복합도시’로 추진하는 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정감사 뒤 제출하기로 했다. 노무현표 ‘지역균형발전’ 도시를 이명박표 ‘저탄소 녹색성장’ 도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정운찬 총리의 ‘세종시 수정론’ 발언이후 수세에 몰렸던 한나라당의 원내대표가 ‘정기국회 원안통과’ 를 거듭 밝혔지만 결국 허구였음이 드러났다. ‘9부 2처 2청 이전’은 백지화되고 공기업이나 민간기업을 유치해 국가선도산업 거점도시로 육성한다고 한다. 세종시에 공기업을 끌어들인다면 전국에서 추진중인 혁신도시 이전 대상 공기업은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결국 혁신도시까지 출생이 불분명한 사생아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세종시법은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법은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국가 운영방향이 담긴 법안을 수정하려면 구체적인 근거와 납득할 만한 대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자족기능 미비론’이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는 현재 대전 제2청사 공무원들의 현지 거주실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세종시의 ‘자족 기능 확대’ 를 위해 과학기술 및 연구개발(R&D) 중심 도시를 대안으로 드는 사람이 많지만, 도시의 자족기능 확보에서 행정기관의 이동이 얼마나 영향력이 강한지 대전의 신도심 개발 사례를 보면 알기 쉽다. 대덕연구단지가 수십 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정부 제2청사가 단기간에 이뤄냈다.

기존 행복도시법 자체가 행정기관 이전에다 도시자족기능 확충이 모두 포함된 개념인데도 여권은 마치 행정기관 이전만이 행복도시법의 골격인 양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또한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 이행 촉구를 충청도민의 집단 민원쯤으로 여기는 오만함도 엿보인다.

결국 비효율성 논리만을 내세워 국토균형개발이라는 취지를 희석시키며 여론몰이를 한 셈이다. 그 결과 ‘세종시 원안추진’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도는 갈수록 떨어져 ‘원안추진’ 반대 여론과 비슷한 비율로 조사되고 있다. 일부 보수신문에서는 ‘지방선거 국민투표론’을 제기하며 수도권-지방간의 국론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세종시 건설은 참여정부에서 결정했지만 이 대통령도 대선 때 ‘원안 추진’을 약속한 사안이다. 세종시는 결코 충청도 민원 해결 차원이 아니다. ‘저탄소 녹색성장’ 거점도시라면 반드시 충청권에만 건설해야 할 이유도 없다. 청와대까지 가세한 세종시 수정 불가피론은 참여정부 흔적 지우기의 일환이라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세종시법 원안을 손끝하나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당초 취지를 보완하는 차원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임동규 의원이 준비중인 발의안은 ‘꿩 대신 닭’이 아니라 ‘꿩 대신 지렁이’인 셈이다. 당초 세종시 설립 취지와 번지수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마치 SF영화와 같은 트랜스폼(변신)이다.

지방선거를 통해 시장·군수가 바뀌면 전임 단체장의 역점사업이 느닷없이 뒤바뀌는 부작용이 여러차례 언론에 보도됐다. 하물며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국정의 주요사업이 탈바꿈을 한다면 그 뒷감당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세종시법에 관한 논점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권의 소모적 분쟁을 방치하지말고 정부안부터 내놓아야 한다. 이명박표 ‘지역균형발전’ 도시라면 충청권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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